피르미니Firminy는 프랑스 리옹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여행 중에 내가 이곳에 가게 된 것은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에서 홈스테이를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여기에 갈 때 까지도나는 이작은도시에 대해알고 있는 것이전혀 없었지만,이곳에서 본 꼬르뷔지에의 건물들은 다른 곳들보다 인상적이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쉽게 말해 '아파트의 기원이 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시대를 연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기능과 효율을 중시한 설계가 특징인 건물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유럽 곳곳에 지어졌는데, 최초에 1952년 마르세유에 지어진 이후 피르미니나 베를린 등 여러 도시들에도 들어섰다.
마르세유에 지어졌던 최초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주거공간 외에도 학교나 상점 등의 여러 시설들이 계획된 건물이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의도는 하나의 건물이 도시의 여러 기능들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현재 모습
이곳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코르뷔지에의 역사적인 건물인데도 관리상태가 좋지 않아 곳곳에 낙서들이 있었고 건물의 전반적인 유지 보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버려진 건물의 느낌이 났다. 주민들이 많이 오가는 것을 보아 실제로 건물 자체는 잘 이용되고 있는 듯했으나, 주변 동네들에 비해 우범지역 같은 분위기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 건물의 분위기가 딱 2000년대이후 세운상가의 느낌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찍었던 사진들. 문화유산 표시 옆에 떡하니 낙서가 있는 것이 이곳의 분위기를 요약해준다.
Rue(Street)라고 부르는 복도, 건물의 최상층은 학교가 위치해 있다. 학교와 옥상은 개방되어있지 않았다.
피르미니의 건물은 마르세유에서는 있었던 상점가(Mall)는 없고 주거와 학교의 기능만 가지고 있었다. 다만 건물이 워낙 낡고 관리가 안돼서 아무리 봐도 현재 학교의 기능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주거모듈을 옆에서 바라본 단면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주거 모듈들의 형태가 인상적인데, 복층의 주거 모듈이 복도를 기준으로 하나는 복도가 있는 층과 위층을, 다른 하나는 복도가 있는 층과 아래층을 쓰는 형식으로 붙어있다. ㄱ자 블록과 ㄴ자 블록이 붙어있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구조는 모든 층마다 통로를 둘 필요가 없어 공간 효율면에서 이점이 있다.
세대 현관. 위로 올라가는 구조인지, 내려가는 구조인지가 그림으로 표현되어있다.
세대 내부
거실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우선 다행히도 홈스테이 했던 집의 내부는 건물의 외관과 달리 포근한 분위기였다. 홈스테이를 위해 집안을 꾸미고 보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물이 샌 듯한 흔적들이 있었다.
이런 점들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 이 집의 구조 자체는 쾌적하고 공간도 생각보다 꽤 컸다. 1층의 방 1개, 거실, 주방이 베란다를 가지는 일종의 3 베이 형식이었다. 홈스테이로 사용되는 집은 흔히 알려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1 베이 형태의 좁고 긴 모듈에서 2 베이가 추가된 형태였다. 이런 식으로 이 건물은 종류에 따라 1 베이만 사용하는 세대들과 2,3 베이를 사용하는 세대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3 베이를 쓰는 이 집은 방들의 넓이도 한국의 30평대 아파트들보다도 훨씬 넓어 보였다. 아마 1 베이를 사용하는 모듈이었다면 4인 가족이 살기에는 확실히 좁을 것 같다.
2층의 방과 주방, 거실
복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층 높이의 거실 공간과 2층 높이의 넓은 창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방들은 각각의 발코니를 가지고 있었고 2층의 한 방은 발코니 대신에 1층의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어 답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높은 천장고의 넓은 발코니도 꽤 특별한 점이었다. 다만 오래전에 지어져서 그런지 발코니는 실내랑 30cm 정도 단차가 있었다.
발코니에서 바라본 피르미니 시내. 르 코르뷔지에의 생트 피에르 성당과 문화센터가 보인다.
동, 서향의 건물 배치
이 건물의 특이한 점 중 하나가 거의 정확히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남향이 이른바 국룰인 한국에서는 보기 매우 드문 일이고, 아마 유럽에서도 그렇게 흔하진 않은 것 같다. 르 코르뷔지에는 하루 중 햇빛이 동쪽과 서쪽 면에 모두 전해지도록 이런 배치를 했다고 한다. 나는 이에 대해 혹시 다른 이유를 감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피르미니 외에 다른 유니테 다비타시옹 건물들의 배치도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모두 거의 정확히 동, 서향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스케치가 그려진 콘크리트 비석
나는 여름에 이곳에 방문했기 때문에 르 코르뷔지에의 이런 의도대로 양쪽 면에 햇빛이 골고루 도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해가 긴 여름에는 이런 설계가 매우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과연 해가 짧은 겨울에는 이런 배치가 문제없을는지 그 점을 잘 모르겠다.
계산을 해보면 햇빛이 하루에 9시간밖에 들지 않는 이곳에서, 한겨울에는 하루 4시간 반 정도만 햇빛을 쬘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햇빛의 각도가 베란다에 막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향집처럼 겨울에 햇빛의 따뜻함을 즐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피르미니의 한겨울 일사량인데, 노란 선에서 해가 뜨로 진다. www.suncalc.org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모더니즘의 실패인가?
이 건물을 처음 보고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가 떠올랐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일종의 아파트 단지로 처음에는 많은 주목을 받으며 지어졌으나 이후 슬럼화 되어 결국 철거된 건물이다. 프루이트 아이고의 철거는 모더니즘 건축의 실패 사례를 넘어서, 모더니즘의 끝난 순간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모더니즘의 문제점들을 잘 보여준 아이코닉한 사건이었다. 프루이트 아이고의 심각했던 상태에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곳도 처음 계획할 때에 기대한 역할에 비해 현재는 매우 낙후되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건물의 기본적인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도난이나 마약 등의 범죄 문제가 발생한다는 리뷰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지어지기 전 피르미니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의 주거 공간은 수도나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위생 설비도 없어서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급용 주택으로 코르뷔지에가 제안한 것이 유니테 다비타시옹이었다. 이 점만을 생각할 때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초기 목표는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빈민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한쪽에 그들을 위한 건물을 짓고 거기에 빈민들을 모아두는 것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쉽고 편한 해결책은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이 거대한 건물은 그 자체로도 도시와 조화롭지 못한다. 하나의 계층이 모여 살게 되면서 이곳의 분위기마저 도시와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만의 공간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프루이트 아이고. 사진 위키백과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한국의 아파트들보다 나은 점들
이렇게 건물은 도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문제가 있었지만, 설계에 있어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들도 많았다. 효율을 중시해 디자인된 건물임에도 오히려 지금의 아파트들보다 생활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지상층의 넓은 필로티공간
르 코르뷔지에는 지상층의 필로티를 높게 만들고 그 사이로 시선을 통하게 기둥들을 배치했다. 때문에 지상층에서 시각적으로 동쪽과 서쪽의 외부공간이 건물에 의해 막히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파트 두층 정도가 들어갈 수도 있을 만한 공간을 과감히 비우면서 건물이 대지를 가로막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다.
복층의 내부구조
일반적인 아파트에선 사용하지 않는 복층의 구조는 높은 천장 고를 통한 개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넓은 세대의 경우 이것보다도 이를 통해 1층과 2층 사용자 간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기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동, 서향 양쪽의 넓은 발코니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넓은 발코니를 건물의 양쪽면 모두에서 즐길 수 있었다. 하나의 세대에 거실에 있는 가족 공동의 발코니가 있고, 반대편에는 각각의 방들이 발코니를 가지게 된다. 한국의 복도형 아파트들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인데, 중복도식을 쓰면서도 복층식구조를 사용했기에 가능한 구조이다.
세운상가와의 유사점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건물을 볼 때마다 세운상가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대에 같은 설계사상으로 지어졌기도 하고, 또한 이후에 슬럼화 된 모습까지도 닮아 있었다. 실제로 세운상가는 설계 당시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한다.
둘 다 거대한 스케일로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다. 요즘의 세운상가는 주변에 워낙 큰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 그 느낌은 덜하지만, 그 일대에 예전부터 있었던 건물들에비해 매우 큰 스케일로 도시 미관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도 역시 주변 맥락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완공당시 세운상가 건물군의 모습. 사진 서울시
마침
피르미니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모더니즘 시대에 추구했던 이상을 잘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한계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건축적인 문제를 넘어서 도시적 관점에서 주거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떤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한 작업을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도시는 이제 과거보다 정밀하고 섬세한 작업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작업들은 건축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되고,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