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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5 미래건축 프로젝트

건축학과 프로젝트 이야기

by 김재현

주제는 간단했다. 2075년 미래의 주거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주최 측의 설명과 예시로 보여준 이미지들을 보면 상당히 공상적인 제안도 환영하는 느낌이 있었고, 나를 포함해 함께 준비하는 친구들도 소위 '재밌는'무언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여러 아이디어들을 뽑아보고자 했다.


문제의식

먼저 우리가 설정한 문제의식은 기후변화나 재난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주의 문제였다. 미래 환경의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상황을 떠올렸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이다.


2023은 우리가 보기에 온난화나 기후위기가 조금씩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현재 많은 국가정부들이 환경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런 노력들이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장 닥치지 않은 위협에 대해 대비하자고, 확률이 낮은 재난에 대비하자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외면당해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래의 환경을 좋게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그게 인간사회의 한계인 것도 같다. 사람들은 내 주변 사람이 다치고, 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가 되어서야 문제를 깨닫는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너무 늦은 걸까. 냉소적이고 수동적인 사람들이 다수인 우리의 세상은 작고 시급한 문제에 대비할 힘은 있어도, 크고 장기적인 문제들에는 대비할 힘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건축이 어떻게 하면 환경에 악영향을 덜 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면, 언젠가는 정말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를 위한 건물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오게 것으로 보인다. 생존을 위한 건물.


현재의 세계 기후위기 지역

처음에는 장소에 주목했다. 태평양 한가운데나 극지방, 사막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건물이라면 미래의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달이나 화성에 기지를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런 곳에서 발생하게 될 기후난민과도 같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생각했다.


그리고 건물은 여러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후재난이라는 환경자체가 몇 년 만에 예상치 못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고, 또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후난민의 숫자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메타볼리즘 건물처럼 모듈을 교체한다던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식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들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들은 이미 1960년대의 오래된 아이디어이고, 이미 시험이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공모전을 하면 모듈러로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흔한 장르처럼 되어버렸고, 나는 조금 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기요노리 기쿠다케의 마린시티 (1963) © Kiyonori Kikutake

아이디어

고민을 하다가 친구 승욱이랑 이 공모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요즘 건축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승욱이는 요즘은 하나의 공간이 10년도 가지 않고 쉽게 바뀌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들이 100년씩 유지되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건물을 아예 쉽게 부술 수 있게 지어서 금방금방 새로 지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어딘가 참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이런 식으로 얘기들을 하다가 승욱이가 문득 이런 얘기를 했다. 아예 건물을 위에서 지으면서 동시에 아래에서 부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좋은 아이디어였다. 어쩌면 이런 시스템을 제안하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승욱이에게 이 아이디어를 받아서 이를 구체화시켜 보기로 했다.


설계개념

내 생각은 이랬다. 색연필의 심처럼 건물을 생각하는 것이다. 3d프린터를 이용해 건물을 위에서는 쌓아 올리고, 밑에서는 해체 장비를 이용해 철거한다. 건물은 중력을 받고 아래로 내려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건물을 부수는 만큼, 위에서는 새로운 건물을 쌓아 올려 과거의 공간들을 밀어낼 수 있다.

따라서 건물은 변화할 수 있다. 3d프린터로 쌓아 올리는 방식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채광, 통풍이 잘 되는 일반적인 주택이 될 수도 있고, 단열을 위한 공기층을 두고 직사광을 막는 폐쇄적인 디자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방식이 무엇보다도 기존 메타볼리즘건축, 모듈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메타볼리즘 건물은 완성품의 모듈을 붙이고 떼어내면서 내부의 공간들을 바꾸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고안한 방식은 공간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이 공간이 정해진 모듈의 형태와 규격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건물의 내부공간들을 표현한 다이어그램


다행히 팀원들도 이런 생각들이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방향성을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 생각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였다.


설계과정

학생공모전에서 나오는 건물들은 대체로 종합적인 설계라기보단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기 위한 기호처럼 이용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학생공모전은 종합적인 설계가 아니라 건축으로 하는 스포츠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이 미래건축 프로젝트를 할 때는 그런 방법을 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장 고민한 것은 건물에 만들어지는 공간들의 형태와 크기가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막상 모델링을 하려니 막막했다. 자칫 이 설계가 '너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답하는 것처럼 성의 없는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이 건물의 구축방식을 어느 정도 설정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생성되는 공간들은 모두 마시멜로 같은 실린더 형태로 설정했다. 이런 공간들은 구조적으로 기존건물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컸다. 3d 프린터의 시대에는 각진 구조보다 원통형의 구조가 더 튼튼할 수 있고, 사용자들에 맞게 평면을 커스텀할 수 있다면 굳이 사각이 아니더라도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각각의 실들은 물풍선이나 모래주머니를 쌓듯 보였으면 했다. 아래층의 구조와 상관없이 공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간들은 조금씩 비틀어 배치했다.

공간들의 건물의 생성과 소멸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처음에는 이런 구조를 라이노의 그래스호퍼를 이용해서 정말 랜덤 하게 만들려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3d프린트로 만드는 건물은 곡면을 쓰는 데에 대해 어려움이 없고, 조인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포인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스호퍼로 만드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생각하는 부드러운 면들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렉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래서 결국 손으로 한 땀 한 땀 곡면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라이노 모델링 과정

건물의 고정된 축이 되는 철골구조물에는 층들이 미리 만들어져 있었고, 생성되는 공간의 덩어리는 그 층들을 한 층씩 내려올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거대한 건물덩어리가 자이로드롭처럼 수직으로 내려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색연필심처럼 경사를 따라 돌면서 내려가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코어의 프레임 자체를 나선으로 만들고, 이 나선의 프레임의 레일에 건물이 매달려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한 구축과 철거를 담당하는 기계팔들도 이 프레임을 따라 오르내리면 간단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의 상부와 하부


아래쪽에서는 유압그래플이 장착된 로봇팔이 오래된 공간들을 부수고, 그 잔해들을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이렇게 되면 그 잔해들이 떨어지면서 지상층에 쌓이고, 누가 맞을 위험도 있다. 그리고 또 이 폐기물은 언제 치우냐, 환경오염은 어떻게 하냐 등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극단적인 환경을 가정한 만큼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레이저 등으로 정교하게 철거를 한다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메인이미지

공모전 특성상 전략적으로는 메인이미지에 많은 공을 들였고, 이 하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어필하고자 했다. 메인이미지에서는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이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어떤 나라의 연안으로 보였으면 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살기 힘든 황폐한 지역에서, 대안적인 주거인 이곳으로 사람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건물의 평면과 단면


내부공간을 보여주는 평면과 단면에서는 이 건물이 주거용 공간들을 넘어서 다양한 성격의 공간들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기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처럼, 이 건물도 외부와의 교류가 없더라도 이 안에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기

이렇게 미래를 공상하는 프로젝트는 한번 해보고 싶은 종류의 프로젝트였다. 사실 기존의 현실적인 설계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고, 어쩌면 시나리오를 쓰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재밌는 일이긴 하지만, 또 어딘가 공허하고 허술하게도 느껴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젝트를 하고나서부터는 정말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쩌면 정말 그런 일들을 하려면 학교를 벗어나 사무소에 취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공모전

영광스럽게도 이 프로젝트는 공모전에서 2등으로 뽑혔다. 결과를 듣고 우리들 모두 너무나 기뻐하면서도, 1등과 3등 수상작품들이 우리가 예상한 분위기와 많이 달라서 놀랐었던 것이 기억난다. 함께해 준 신명관, 서현겸, 그리고 중요한 아이디어를 줬던 채승욱에게 고맙고 언제나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https://www.361bit.com/competitions/intuiture/wi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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