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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Patchwork

건축학과 프로젝트 이야기

by 김재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고, 사회의 규칙들을 내재화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누군가 스스로를 지켜보는 것처럼 행동하고, 인간집단의 가치들에 자신의 생각을 잠식당한다. 그래서 편으로는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였을 때보다 오히려 내면적으로 자유롭지 못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순수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다. 나는 2,30대 청년도 70대 노인들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이로서의 본성과, 그때 만들어지는 특성들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그런 아이들을 꺼내주고 싶다. 마치 집에서 혼자 있을 때처럼, 사람들의 꾸밈없는 마음이 드러날 때 우리는 정말로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몇 년 전 전시를 다녀왔던 것이 생각난다. 테이프를 이용해 마치 공중에 매달린 누에고치 같은 구조물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안을 기어 다니도록 하는 전시다. 그 안에 들어가면 누구나 기어 다니고, 뒹굴거리게 된다. 그 공간이 주는 이상한 편안함에 사람들은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탐험하게 된다.

2023년 테이프 서울 전시. 흔한 테이프 하나로 이런 놀라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이런 장면들이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본성 같은 것이 깨어나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휴식을 위한 파빌리온을 만들면서, 사람들한테서 잠시나마 그런 어린아이 같은 자유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어디든 앉을 수 있고 드러누울 수 있고, 뒹굴거릴 수 있다면 어떨까. 세상만사에 냉소적인 이들에게 잠시나마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면 어떨까. 주어진 형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공간을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공모전

이번에 참여한 공모전은 Velux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으로 빛과 관련된 파빌리온이나 장치등을 설계하는 국제학생공모전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친구 승현이와 함께 2인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이후에 세종대 김태혁교수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각 팀마다 담당 교수가 한 명씩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아이디어

우리가 만드는 파빌리온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승현이는 사람이 움직이면 그 움직임에 따라 천장이나 지붕 같은 것이 변화하면서 들어오는 빛이 변화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좋은 생각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요즘 내가 생각하던 것들과 연결시켜서 디자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와는 다른 다양한 자세로 몸을 움직이고, 변화하는 공간과 빛을 인식하게 된다면, 어른이 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각을 깨우고 리프레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승현이의 아이디어를 듣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장치를 생각해 봤다. 테이프서울, 프라이 오토의 구조물 같은 막구조에 꽂혀있던 그때 나는 파빌리온에서 사람들이 유연한 막들 사이에서 뒹굴거릴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막구조가 인상적인 테이프 서울과 뮌헨의 올림피아파르크



설계개념

사람들이 이 파빌리온에 들어가면 그들이 위치한 곳에 천장이 들어 올려지면서 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생각했다. 사람이 어딘가에 위치하면 그 사람의 무게로 바닥이 눌리고, 그 힘만큼 천장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이 복잡한 센서나 모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도르래를 이용한 단순한 구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의하며 그렸던 스케치

기계장치를 위한 준비물은 천과 같은 두 개의 막과, 기둥, 도르래와 밧줄이다. 바닥이 되는 막과 천장이 되는 막에 줄을 연결하고, 기둥의 도르래에 연결하면, 사람들이 이 막 사이에서 바닥을 밟고 있는 만큼, 무게에 의해서 천장이 들어 올려진다. 회의를 하면서 이 메커니즘을 모형으로 간단하게 만들어 테스트했다.


굴러다니는 재료들로 만든 간이모형.



사람들이 위치한 곳에 공간이 생기는 만큼, 그곳에 자연광이 들도록 하는 것도 고민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auxetic 패턴들이었다.(이걸 한국말로는 대체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auxetic구조는 약간의 탄성이 있는 재료들이라면, 종이 같은 막으로 만들었을 때 이것이 3d로 구부러지고 다시 펴질 수 있는 성질을 가진다. 섬유로 이루어지진 않더라도 직물과 같은 성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패턴은 늘어날 때에 패턴 사이에 넓은 빈 공간들을 만들 수 있어서 유연하게 입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어떤 막구조가 늘어나게 되었을 때에 그 부분만 자연광을 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패턴들의 종류와 크기를 테스트해봤다.

종이에 레이져커팅으로 여러 패턴들을 테스트했다.



모형테스트

auxetic 패턴을 레이저 커팅한 종이를 나무봉에 끼우고 위와 아래의 종이를 실로 연결했다. 테스트모형은 1/10 사이즈로 파빌리온의 일부분으로 만들었다. 설계에서는 1.5m 간격으로 기둥을 설치하고, 이 기둥의 위쪽에 도르래를 설치해 와이어로 두 겹의 막이 연결되도록 했는데, 모형에서는 간단하게 나무 막대에 홈을 파고, 거기에 실을 걸어서 구현했다.

모형사진들. 아래의 사진들은 패턴을 보여주기 위해 바닥쪽에 조명을 놓고찍었다.

상상했던 대로 모형에서도 바닥을 누르니 천장이 들어 올려지면서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종이의 패턴 사이가 벌어지면서 빛이 들어올 틈이 생겼다. 이번에는 음부터 모형을 제대로 만들어서 아예 제출하는 공모전 패널에 모형이미지를 쓰고자 했다.


모형에서는 지붕이 되는 막과 바닥이 되는 막을 모두 패턴이 들어간 종이로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바닥의 재료는 신축성이 있는 고무나 비닐종류의 막으로 제작해야 내구성이 나오고 사람들이 누워있기에 편할 것 같다. 소소한 부분이지만 바닥에 파이프들을 고정하는 기초는 원래 공사장에서 쓰이는 간이베이스 같은 것을 써서 설치해체를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모형으로 표현하긴 어려워서 몰탈을 굳혀서 통으로 만들었다.


요런 느낌의 베이스. Nicrobase


3d 모델링 과정

3d 모델링은 라이노를 이용해서 했고, 3d 곡면의 auxetic 패턴을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패턴은 그래스호퍼로 비슷한 것을 만드는 예제가 있어서 가져와 적용해서 만들었다. 실제 모형에서와 같은 정확한 패턴으로는 어려웠지만, 단순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 이 패턴을 표현할 수 있었다.

모델링과정에서의 사진들. 캡쳐라도 깔끔하게 해둘걸 그랬다.


특정한 사이트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광장과 같은 장소에 설치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35 m×35m 정도의 큰 파빌리온으로 구상했다.

옆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보일 것이다.

사람이 들어가 있는 공간들은 마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부풀어서 공간이 생긴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혹은 무거울수록 더 큰 공간이 생기고, 이동을 하게 되면 이 사람이 만드는 공간도 같이 움직인다.

모델링을 이용해 만들었던 이미지



사이트 선정

이 프로젝트는 시작할 때 사이트를 정해두지 않았었다.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의 광장정도로만 설정을 해 두고 파빌리온을 디자인했었다. 이후에 교수님의 크리틱을 듣고 전략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지역성을 담는 과정을 거쳤다.


생각한 몇 가지 장소들 중에 이런 쉼터가 꼭 필요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재료적인 면에서 영감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곳은 서울의 창신동이었다.


창신동을 고른 이유는 이곳에 위치한 봉제산업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전에 처음 창신동에 갔을 때 내가 본 봉제산업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일반적인 주택정도로 보이는 건물들의 반지하 같은 공간들에서 사람들이 재봉틀을 돌리며 일을 한다. 그렇게 낡고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오토바이들이 다니면서 이곳의 봉제산업은 돌아가고 있었다. 21세기 한국의 산업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열악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오는 수많은 원단 폐기물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재활용되기 힘든 원단 폐기물들을 어떻게 처리한다면 이 파빌리온의 바닥과 천장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선정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를 공모전에 맞게 패키징 했다. 열악한 실내공간에서 허리를 굽힌 채 일하는 모습과, 이들이 잠시나마 자연광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대비되길 바랐다. 정확한 지점을 선택하진 않았지만, 이 파빌리온의 위치는 창신동의 봉제거리옆 어딘가의 공터로 설정했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원래 변화하는 형태에 맞춰서 Light Topograpy 라 지었는데, 좀 더 창신동의 지역성과 연결하고자 Light Patchwork 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국제공모전이라 프로젝트의 설명글을 영어로 써야 했었는데, 우리가 썼던 문장들을 좀 더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표현법으로 어필할 수 있도록 알려주셨다.


여기까지가 이 프로젝트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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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젝트 패널에 넣었던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적어본다.

창신동 봉제거리의 환경

창신동은 서울의 구도심 중 하나로, 낡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동네이다. 차도 들어가기 힘든 좁은 골목길엔 10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작업장들이 밀집된 봉제거리가 있다.

좁은 길들 옆으로 건물들이 늘어서서, 이 공장들은 햇빛이 잘 들지 않으며 바깥 풍경을 보기도 어렵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령의 작업자들은 하루종일 재봉틀을 돌리며 옷을 만든다. 잠깐의 휴식시간에는 바깥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는 것이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전부다.


그들에게 빛은 부족하지 않다. 형광등 덕분에 그들은 과도하게 '밝은' 작업환경 안에서 밤/낮 구분 없이 극도의 작업효율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빛을 인식하고 이웃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밤낮 구분 없이 작업대 만을 내려다보며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잠시 하늘을 보고, 자연광을 느끼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원단폐기물들을 재활용하자

사이트인 창신동에서는 하루에만 22톤의 원단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원단들은 대부분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넘치는 폐기물들을 쉼터의 천장과 바닥의 재료의 기회로 인식하여 작업자들에게 빛을 돌려주는 방법을 제안한다.


제안하는 파빌리온의 내부공간


<빛의 재인식>
건축 기술과 조명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 채광이 없는 사무실과 아파트에서 보내게 되었다. 고도로 시스템화된 도시에서 우리는 자연광조차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밝고 편안한 공간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빛의 순간을 느끼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파빌리온에서의 경험

반대로, 적극적인 방식으로 우리 몸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바꾸고, 빛을 다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제 상상해 보자 당신은 부드러운 흙속에 들어가 계속해서 꿈틀대는 지렁이가 되고 빛은 새어 들어와 내 움직임을 따라서 파동 한다.




파빌리온의 이용모습을 상상한 분해도


<공간>
이곳에서는 활동에 제한이 없도록 했다. 지정된 좌석이나 테이블이 있지 않다. 이곳에 들어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나만의 공간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아이가 되어 땅바닥에 눕고, 뒹굴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자며 오로지 자연광을 느낀다. 혼자라면 나만을 위한 작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여럿이 함께 앉으면 그룹을 위한 넓은 공간이 생겨난다.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물리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빛의 지형을 만들어낸다.

파빌리온의 단면도와 하늘에서 본 모습


작동과정과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상세도

<재료와 구조>

1 봉제공장에서 나오는 원단 폐기물들을 모은다

2 원단 폐기물들을 엮는다

3 이런 직물들을 압축해 하나의 원단으로 만든다.

4. Auxetic패턴으로 커팅한다.

5. 도르래 구조에 설치한다.

6. 바닥을 밟을 때, 동시에 천장이 들어 올려진다.

7. 천장에 생겨난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모형사진



Light patchwork


<1. Site>

Changsin, a neighbourhood in Seoul etched with age, hums with a relentless energy. Weathered buildings huddle close, their shadows swallowed by a bustling street. Here in this bustling street, cramped quarters with small factories, a constant flow of workers coursing through the narrow space. This is Sewing Street, the lifeblood of Changsin's exhaustive commerce.


The street feels like a tunnel, its sky barely a sliver. Sunlight struggles to reach the ground, replaced by the harsh glare of fluorescent lights. The relentless white light keeps weary eyes open, a constant prod towards efficiency that disregards the natural rhythm of day and night. Time seems to lose its meaning within these walls, replaced by a singular focus on the task at hand. The workers become part of the machinery, absorbed by the relentless hum of the sewing machines.

Inside the street of clothing factories, a symphony of clatter fills the air. Rows of workers, etched with the lines of long hours, bend over their sewing tables. Breaks are snatched between shifts, a stolen moment for rest amidst the cacophony. Yet, their eyes, perpetually fixed downward, yearn for a different kind of light, a respite from the relentless glare. There is no space for peace, where the only sound is the steady rhythm of sewing machines, harsh demands of Sewing Street. Workers need space for intermission.


<2. Re-recognition of Daylight>

Since the invention of lighting, it has flourished our daily life. However, it also has unintentionally distanced us from nature's light source: the sun. We spend our days in offices and apartments bathed in artificial beams, often high-Kelvin systems that prioritize intensity over warmth. But true comfort doesn't come from bright white light. We crave spaces that allow us to feel the natural rhythm of daylight, the subtle changes that mark the passage of time.

Our proposal imagines a space that transforms with your movement. As you interact with the environment, light filters in differently, revealing the true essence of natural light. Think of a worm burrowing through soft earth, its body shaping the path as sunlight filters through. Here, it's the people who dictate the light, not the other way around. By actively engaging with the space, we can rediscover the power of natural illumination and reshape our perception of light itself.


<3. Space description>

In our proposal, there is no restriction on what people do here, there are no rigid seats or fixed tables. Our design encourages freedom. Here, warm light welcomes you to create your own space. Imagine people sprawled on the floor, lost in books, or simply napping peacefully. The space adapts to your needs. A single person can find a cozy nook, while a group can collaborate in a larger area.

The beauty lies in the dynamic interaction. As people move and engage with the environment, they define the space's "topography of light." Light becomes a living element, responding to your presence and shaping itself to your activities.


<4. Fabric wastes as an opportunity>

Large amount of fabric waste is incinerated and landfilled. According to Korean government, 1,239 tons of fabric waste and 2,700 tons of plastic waste is generated per day. While 69% of plastic waste is recycled, only 0.02% of fabric waste is recycled. In other words, The amount of fabric waste is larger than plastic waste produced in Seoul per day.

Instead of ending up in landfills, we see this abundance of fabric waste as an opportunity. Our proposal envisions using these very scraps to create the ceilings and floors of the space. By incorporating recycled fabric into the space's structure, we can transform this waste into a source of warmth and wellbeing for the workers.

<5. details and production>

1 Visit the sewing street and collect fabric waste.

2 Weave fabric wastes.

3 Compress fabric wastes into one piece.

4 Cut it into an auxetic pattern.

5 Combine with the pulley structure.

6 Step on, the gravity on the floor lifts the ceiling.

7 Lights come through the 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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