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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Feb 02. 2021

세운상가 답사기 2

2부 잘못 지어진 건물은 골칫거리가 된다

세운상가의 현재

이제부터 지금의 세운상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현재 이곳은 '다시세운 프로젝트'라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세운상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창작을 위한 공간들이 생겼고, 이곳 기술자들을 창업자들에게 연결시키는 등의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생겼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이 곳이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곳을 작년과 올해 여러 번 갔었다. 이제 그 사진들을 보면서 그 변화들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종묘 쪽에서 바라본 현재의 세운상가 모습



옥상정원

이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옥상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였다. 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옥상정원이 새롭게 생긴 것이다. 최근엔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로 옥상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사진은 지난 10월의 것을 가져왔다.


시민들이 옥상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엘리베이터이다. 타고 올라가면 종묘가 보인다. 높이가 꽤 높아서 무섭기도 하다.
지난 10월 옥상정원의 모습

옥상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쉬거나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이곳 높이가 꽤 높고, 주변 건물들이 낮아서 전망이 꽤 좋았다. 그래서 서울 풍경들을 찍고 있던 와중에, 나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커플이 이곳에 테이크아웃 음료를 가지고 올라왔는데, 곧 이곳에서 나가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전혀 안되게 통제하고 있던 것이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엘리베이터와 게시판에 옥상정원에서 음식물 섭취를 금지한다는 표시가 붙어있었다. 나는 이곳이 공공시설인 줄 알았는데, 아파트 소유의 공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아파트에서 이런 통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 공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넓은 옥상 공간에 앉기 좋게 많은 벤치들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잠시 경치 보는 것 외에 할 게 없어 보인다. 출입 가능한 시간도 10시부터 22시까지로 제한이 되어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통제를 해야 하나 싶었다. (최근엔 10시부터 17시까지로 바뀌었다)


방문자들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서 갔더니, 약간은 속은 느낌이고, 아파트 주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소유의 공간을 (허가를 했겠지만) 내주는 것이니 서로 불편한 것이다.




아파트 층인 5층에서 내리면 이런 문구들이 붙어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갈등을 볼 수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아파트의 첫 층인 5층에서 내릴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거기서 잠시 내려보면, 입주민들이 구경 오는 외부인들 때문에 몸살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로에 외부인 출입금지 표시들이 몹시 배타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옥상 사용에 대한 내용, 아파트 출입금지에 대한 내용 등 이런 표시들은 정말 곳곳에 다양하게 붙어있었다.


얼마 전 촬영한 사진들


나는 이것들이 세운상가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방문자들과 입주민의 동선이 분리가 안되어서 생겨난 불편들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일반적인 주상복합들도 이런 면에서 불편함이 있는데, 지금의 세운상가는 상업, 주거, 공공시설이 햄버거처럼 쌓여있어서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건물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아파트 주민들만의 입구를 따로 만든다던지 하는 설계가 포함되었어야 한다고 생각이 된다.


참고로 아파트 복도는 이렇다. 아트리움이 상당히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사진은 세운상가가 보수되기 이전에 찍은 것이다.



보행데크


기존의 3층 보행데크 위에는 이렇게 새로운 공간들이 생겼다. 그리고 나머지 상점들은 거의 그대로 유지가 되는 듯했고, 가끔씩 못 보던 카페나 갤러리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 초기라 그런 건지 새로 생긴 공간들이 그렇게 활성화된 것 같진 않았다. 이곳에 여러 번 갔지만, 데크에 새로 생긴 공간들은 거의 닫혀있었다.


하지만 나름 이곳에 데이트를 하러 온 사람이나 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기는 해 보였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어딜 가도 전보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직 이 도시재생사업이 흥했다 아니다를 평하긴 일러 보인다. 기계부품들을 취급하는 상가에서 분주히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데크를 걷는 방문자들이 대비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곳이 일종의 거리로서 흥하게 된다면, 여기 있는 기존의 공구상가들은 상당히 불편을 겪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도청장비를 판다는 등의 간판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만큼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건물 내부는 이전과 완전히 똑같아서 아직도 전투함 같은 느낌 그대로다.

 

복도중간에 무심한듯 철제로 만들어진 계단은 정말 전투함의 계단과 비슷한 느낌이다.




보행데크 밑에 생긴 보행데크


기존 보행데크 밑에 설치된 데크. 좁고 긴공간에 화장실이나 창고가있고 갤러리로쓰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번에 생긴 변화 중에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기존 보행데크 아래에 새로운 데크를 하나를 더 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작은 부스들이 생겼다. 좁은 데크이기 때문에 새로 생긴 실내공간들은 면적이 얼마 되지는 않는다. 기존의 3층 데크 위에 새로운 시설들이 생긴 만큼, 추가로 필요해진 화장실이나 창고, 관리실 같은 공간들을 이곳에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남는 공간들은 작은 임대공간들로 계획한 것 같다.


2층 데크 안내도



나는 세운상가가 보수되기 전부터 보행데크 아래의 공간이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어둡고, 길에 쌓여있는 물건들로 정신이 없으면서 차와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 공간에 또 하나의 보행데크가 설치되다니. 그래서 충격이었다. 상가 벽에 걸린 실외기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분명한 야외 공간이다. 이곳은 마치 외부공간의 단점들과 내부 공간의 답답한 느낌, 둘 다를 안고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나는 무엇보다도 차량들에서 나오는 매연이 가장 걱정된다. 이곳은 개조된 오토바이들이 물건을 나르기 위해 자주 움직이는 길이다. 한쪽면이 뚫려있기는 해도 이곳은 터널이나 지하주차장과 비슷한 공간이다. 지상층 환기를 위한 고려가 건물 보수과정에서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층 보행데크가 설치되기 전 2010년 사진과 2021년 현재의 사진. 왼쪽 사진-서울시



공중 보도의 연장

삼풍상가, 풍전호텔 쪽은 새로운 공중 보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어진지 54년 만에 김수근의 원래 계획처럼 다시 이 건물들을 모두 이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삼풍상가와 풍전호텔은 처음에 있었던 보행데크를 철거한 상태여서 따로 보행데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이 생각해보면 좀 웃기긴 하다.

 

세운상가 건물 및 보도 현황

그래도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 오래된 건물들을 따라 공중으로 길이 이어진다는 것 자체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어쩌면 볼거리가 더 풍부하고, 주변 카페나 음식점들로의 접근성이 좋아서 서울로 7017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갔을 때는 이미 프레임이 거의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설계 당선안과 현재 공사중인 모습. 사진-서울시




상인들의 반대

2020년 10월 촬영

진양상가 쪽을 걷고 있을 때 나는 벽에 붙은 벽보들을 발견했다. 길에 서서 이 벽보를 읽고 사진을 찍으니 어떤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2020년 10월의 일이다) 그 사람은 이곳의 상인이었는데, 이 공중 보도 설치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나한테 해왔다. 그 사람이 그 건물 상인들 회의의 대표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내가 기자나 학생이라면 자신들의 말을 어딘가에 실어주기를 바람에 나에게 이야기 걸은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상가 상인들이나 아파트 입주민들 대부분이 이 공중 보행로 설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는 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반대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이 사업에 반대를 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었다. 위의 사진에 있는 내용들인데, 그 사람이 말한 것 중 기억 남는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공중 보행로가 생기면 건물 화재 시에 사다리차를 전개할 수가 없어서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이미 오래되어 철거가 머지않은 건물과 보행데크인데, 이곳에 또 다른 보행데크를 추가하는 것은 낭비이다.

그리고 이런 시설을 설치하게 되면 이후 기존의 구조물을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입주민들의 주거환경에 있어서 해가 된다.


공사가 진행중인 신성, 진양상가 모습



평가

이제부터 지금까지 살펴본 세운상가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훗날 이 건물을 비판할 때 관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설계는 좋았으나 실현되지 못한 경우

2. 기본 설계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나는 2번이라고 본다. 김수근의 바람대로 건물이 지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


녹지의 문제

유니테 다비타시옹처럼 건물에 모든 도시기능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살고 싶을 것 같지 않다. 부지와 주변에 빈 공간은 전혀 없고, 온통 콘크리트뿐이다. 도시에 퍼져있는 여러 기능들을 한 건물에 흡수했음에도 녹지는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건물이 밀집해 답답한 종로에서 더 답답한 건물이 생겼으니 굳이 이곳에서 살고 싶을까.


지금 와서 소용없는 이야기이지만, 1967년 이곳에 건물이 지어질 것이 아니라 공원이 생겼다면 더 가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땅에 선형의 공원이 들어서면 공원을 따라 상권이 활성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과밀화된 서울에서, 그것도 사대문 안쪽에 새로운 공원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보행데크의 문제

세운상가의 지상층들은 보행데크 때문에 빛이 들지 않아 어둡고, 오토바이들의 매연과 소음만이 가득하다. 이게 중요한 문제인데, 보행데크를 만들어 공중 보도와 그 옆의 상가를 활성화시키는 대신, 지상층의 환경을 포기한다면, 이게 보행데크가 없는 상태보다 뭐가 나은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보행데크 밑으로는 자동차만 지나가고, 사람은 그 위로만 다닌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수근의 여의도 설계 계획안에서도 등장했던 보행데크를 이용한 보차도 분리계획. 사진 the korean pavilion


주상복합의 문제

주상복합인 건물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앞에서 보았듯 거주자들과 상인, 방문객들의 동선이 정리가 안되어 서로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의 도시재생사업에서 오히려 더 커지는 문제다. 애초에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건물을 계획했다거나 완전히 아파트 단지로 계획이 되었다면 미래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평가

내가 상상했던 깔끔하고 신박한 도시재생사업과는 달리 이 건물은 뭔가 깔끔하지 않고 어색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이 건물의 문제들은 재생사업 이후에도 해결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예산이나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 건물의 바꾸기 힘든 특성들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제는 세운상가를 철거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다.


도시재생이 언제나 옳은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세운상가를 다녀오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잘못 지어진 건물은 오랫동안 골칫거리로 남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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