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그러데이션(gradation)

인간관계를 넘어가는

by 생각의 틈

‘너는 착하니까’란 어떤 말일까요?


착하게 굴어, 그래야 내가 편해.

나는 네가 착할 때가 좋아,

그러면 너에게 남는 떡도 줄 수 있어.

더 착하게 굴면 사랑해 줄 수도 있겠고.

네가 착할 때만 나는 네 편이야.

착하지 않다면 나에게 네가 아닌 거지

너에게 다른 면은 절대 용납 못 해.

넌 내가 만든 틀에만 있어야 해.


그래서 묻습니다.

그럼, 너는 나에게 뭔데?

나?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지!

넌 나에게 질문할 수 없어.


♠♤♠


우리가 가까워지거나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벌어지는

너와 나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익숙한 안이함으로 기울면,

우린 이렇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착하다’라는 국어사전의 풀이는 ‘ 마음이 곱고 어질다 ’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마음에는 물론 착한 마음도 살지만, 독사가 살기도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와서 독사보다 더 오래 머물기도 합니다.

욕심에 눈이 멀었을 때는 보이지도 않아 분간도 못 하는데

어찌 착하기만 할 수 있을까요?

어쩜 착하기만 한 것도 하나의 틀에 갇힌 것이니

막힌 어두움 속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데이션(gradation)이란

색조, 명암, 질감을 단계적으로 다른 색조, 명암, 질감으로 바꾸는 예술 기법입니다.

그러데이션을 통해 공간, 거리, 분위기, 부피, 곡선, 곡면 등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그러데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날 때는 그저 투명한 무채색이겠지요.

만남이 이어질수록 그러데이션의 농도가 바뀌겠고요.

애정의 관계로 진전된다면 핑크의 색조가 첨가되겠지요.

서로를 싫어하게 되어간다면 핏빛이 되거나 회색빛에서 점점 어두워지는

검은색으로 변할 수도 있겠고요.

관계가 식어가면서 농도와 색조가 옅어져서 차가운 색으로 바뀌거나

점차 흰색으로 그러다 투명한 색으로 변하기도 하겠지요.

위험한 관계는 옅은 붉은색에서 점점 진해져 핏빛이 되기도 하겠고요.


이처럼 우리의 인간관계는 다양한 것들이 교차합니다.

딱 꼬집어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애매한 색과 농도겠지요.

물감의 특성처럼 다양한 색이 모여 어두운 색조를 나타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둡다고 두려움의 검은색이라고 단정해서는

관계 속의 다양함을 볼 수 없을 겁니다.


♠♤♠


인간관계에서 서로 예의를 갖추며 존중할 수 있는 그러데이션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우리는 어떤 농도에서, 어떤 색깔이나 밝기에서,

서로의 거리를 재서 위치시킬 수 있을까요?

모두에게 적용되는 답은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 삼각편대로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은 과학 기사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새들이 함께 날면서 부딪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과학적 용어인 초음파 같은 작용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서로의 ‘간격 유지’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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