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혼자인 당신에게

by 월하

오랜 기간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얼마 안 있어 이직과 동시에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벌써 일 년도 더 지난 일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 년의 삶은 나를 완전히 뒤바꾼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내 안에 자리 잡았던 낡은 습관과 의미 없어진 것들을 버리고 낯선 환경에 속에서 새로운 경험들과 가치들로 나를 채워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노력보다는 그것은 하나의 큰 흐름으로 내게 흘러들어왔다. 진짜 나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나는 내 안을 막 헤집으며 해부하기 시작했다. 이 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관계를 통해서 반드시 무언가 배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관계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 인연을 통해서 너는 너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거야.” 하고 일러주듯 내 영혼은 내가 감당하기 꽤 어려운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나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헤어지며 상실을 배웠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수용을 배웠다. 상대는 나의 어둠을 드러내었고 나는 애써 숨겨둔 나의 결핍과 마주해야 했다. 그 결핍조차 문제가 아닌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안아준 순간 거짓말처럼 나는 평온해졌다. 나의 아픔을 악하게 이용하지 않았고, 그 사람 또한 다시 평온을 찾고 행복하길 기도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평온을 바라는 건 내가 잘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사람이 조금 덜 아프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고통이라 불러온 과거의 시간들이 성장과 배움으로 탈바꿈한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판 위를 걷듯이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마음이 남아 있는 입장에서 그 마음을 다하지 못한 채 관계의 단절을 통보받는 일은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고, 한동안 멀쩡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우연히 그 잔흔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가슴이 아려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한편으론 그런 불안정한 생활들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했기에 억지로라도 긍정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 일을 겪으면서 나는 메타인지와 회복탄력성이 꽤 준수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이미 잘 살 거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 없이 살아온 세월이 이를 방증한다.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내는 동안 나는 나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봤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그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와 내 안을 시끄럽게 뒤집어 놓기라도 하면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언제나 항복했다. 사실 이 감정은 시끄럽다기보다 나를 조용히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 감정(대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나를 흔들어 놓는지 가만히 그것들을 지켜보고 느껴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 감정은 힘을 잃고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다. 나는 그저 그 감정이 내가 아님을 알기에 그것을 나와 분리시키고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것을 알아차린 뒤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었다. 이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나를 자극하는 상황이 오면 미리 준비를 하기도 한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면 나는 한 발치 물러나 관찰하는 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말해 과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상황을 접하더라도 내 의식은 그것과 거리를 두고 가만히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본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따로 이름 붙이거나 해석할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 마음은 판단하거나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나면 우리 마음은 그것을 판단하고 해석한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홀로 고립된 상황에서 누군가는 외로운 감정을 느끼고 대게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빼앗긴 에너지를 회복하는데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고립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부정적인 상황인 것이다. 결국 고립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우리 마음에 달린 것이다.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마주해 준 뒤로 이 녀석은 예전만큼 나를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타인을 통해 나의 결핍을 채우려 하지 않기에 이별이 무섭고 유독 힘들었던 과거의 패턴 또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서로의 성장을 돕는 진정한 파트너십이 가능해진 것이다. 누군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길 바라는 대신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을 만큼 혼자서도 충만하다. 내가 내 곁을 지키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견고한 안전기지가 되었기에 앞으로 마주할 사랑은 생존을 위한 결합이 아닌 행복을 위한 선택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고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매일이 이렇게 평온한 것은 아니다. 에고(ego)는 자꾸 예전의 낮은 에너지로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 예전의 익숙한 불안과 결핍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는 과거의 낮은 에너지에 갇힌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나는 나의 자아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니 이제 새로운 환경에 네가 적응하고 협조해 줘."사실 에고는 개인적 자아이자 우리가 속한 사회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사회적 자아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배운 가치를 자양분 삼아 형성되기에 우리의 에고는 남들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이제는 시야를 돌려 결핍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며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한 발짝 빠져나와 그것들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길러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 그 느낌을 온전히 가졌을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누군가는 부모의 헌신에서, 누군가는 연인의 눈빛에서 사랑을 읽듯 나의 경험에서 배운 사랑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는 마음이다. 존재 자체를 오롯이 바라봐 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답하지 못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타인에게 베풀었던 그 너그러운 사랑을 나 자신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일이다. 어떤 모습 일지라도 비교하지 않고, 판단 없이 그저 품어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내 안에 옮겨 심지 못했던 이 마음을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묻고 답하며 비로소 깨우쳤다. 내게 홀로 보내는 시간은 고립이 아니라 흩어져 잊고 있었던 나를 다시 주워 담는 여정이다. 내 영혼의 계획대로 나는 삶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나누어야 하는지 몸소 배워왔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의 유일한 한계라면 나는 기꺼이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 처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지혜를 구하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일들은 삶의 흐름에 온전히 내맡기기로 했다. 내 안이 아닌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음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은 지금 무엇을 경험하며,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여전히 혼자인 스스로에게 의문이 든다면 멈춰 서서 묻고 답해보길 바란다. 그 시간엔 반드시 이유가 숨어있다. 나는 세상과 싸우기보다 내 삶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고, 마침내 기울어진 세상으로부터 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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