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인지하는 것과 진리가 되는 것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서양 정원은 기하학적인 문양의 화단과 화려한 색감의 꽃들, 중간중간 신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상, 그리고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 등이다. 이를 단순화시키면 자수화단은 식물, 조각상은 돌, 분수는 물을 사용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정원의 주 재료인 식물, 돌, 물을 동양에서는 어떻게 사용했는지 살펴보면 동서양을 효과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서양 정원이 기하학적으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수화단 때문이다. 정원의 용도를 '장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방식은 없을 것이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식물을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가꾸어 문양으로 만들면 통제된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 있다. 자수화단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실 정원을 걸어가며 옆에서 바라보는 자수화단은 어떠한 형태를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수화단은 중심건물의 테라스에서 정원을 내려다봤을 때에 비로소 어떤 문양인지 알 수 있다. 자수화단은 엄청난 규모의 건축과 정원을 소유한 사람의 권력을 드높이기 위해 탄생하였다.
다른 관목과 교목을 배치할 때도 정확한 위치에 배치하였다. 숨 막힐 듯 규칙적으로 열 지어 심긴 나무들은 전체 공간의 축을 형성하며 마치 주인에게 충성하는 군대 같아 보인다.
동양의 분재나 전정 문화는 어디까지나 식물 본연의 모습을 변형시키지 않는 한도에서였다. 동양에서 식물은 살아있는 존재였다. 식물뿐 아니라 돌과 물, 모두 살아있는 자연물로 이들의 이치 속에서 우주 만물의 원리를 깨닫고자 했다. 특히 식물은 좋은 친구, 반가운 손님으로 여기며 가깝게 하였고, 어떤 나무는 신성시되기도 했다. 집터에서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사시사철 변치 않는 나무로부터 지조와 절개를 배우고자 했다. 열매를 많이 맺는 식물은 다산을 상징하였으며, 집 안에 큰 나무를 심으면 주인이 병들어 죽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식물을 의인화하여 귀한 벗이니, 요염한 벗이니 이름 짓는 것은 하나의 놀이이다.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신성시하는 것, 사랑채 앞에 석류를 심으면 많은 자손을 낳을 거라 기대하는 것, 대문 앞에 학자수를 심으면 집안 누군가 높은 관직에 오를 거라는 것 등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미신이지만, 집 밖을 나다니며 놀던 아이가 나무를 보며 자라 관직에 오를 꿈을 품고 학문에 정진하게 되는 계기로 삼게 된다면 미신이라기보다는 어떠한 기대를 식물에 투영하여 표현하는 하나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무가 사람을 죽게 한다는 말은 어처구니없게 들린다. 하지만 집 안의 큰 나무는 햇빛을 차단하여 집을 습하게 만들고 나무의 벌레가 집안으로 들어와 주인을 병들기 쉬운 환경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신성한 존재를 돌로 조각하는 문화는 동서양이 같지만 정원을 장식할 때 돌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돌 역시 식물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는 인위적으로 깎는다면 동양에서는 돌 고유의 형태를 최고로 여겼다. 서양에서는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이나 그리스 신화를 상징하는 것들을 돌로 조각하여 정원을 장식하였는데 동양에서도 돌을 조각하는 정교한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이를 정원에서 사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을 조각하기보다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기이한 형태의 돌을 자연에서 찾아내 정원 중심에 배치하였다. 괴석을 떠받친 석함을 보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충분히 아름다운 조각을 정원에 배치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다. 동양 정원의 주목적은 아름다움에만 있진 않았다.
괴석의 시작은 기원전 200년 경, 진시황제로부터다. 모든 것을 소유한 황제는 불멸하고 싶었다. 해동의 삼신산에 있는 불로초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은 황제는 해동의 삼신산으로 신하를 보낸다. 중국의 해동은 한반도이고, 삼신산은 바로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이었다. 그중 한라산의 불로초를 캐다가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를 서귀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신하가 가져온 것은 불로초가 아닌 영지버섯이었고, 불멸의 꿈을 이루지 못한 황제는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삼신산 같은 괴이한 돌을 후원에 두기 시작하였다. 괴석이 상징하는 바는 불로장생, 신선이 사는 이상세계이다.
정원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고 다양하게 사용되는 요소는 물이다. 물은 잔잔히 고여 있을 때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배를 띄워 즐길 수도 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정겨운 기분이 들게 하고, 힘찬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는 시원하게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분수를 통해 물이 솟구쳐 올라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물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모습은 마음을 웅장하게 해 주고, 동시에 강한 권력을 느끼게 한다. 분수만큼 권력을 드높이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 정원 요소도 없다.
동서양 모두 권력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도구로 정원을 사용했다. 서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섭리를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게 하는 방식으로 힘을 과시했다면 동양은 물을 담는 수반水畔의 규모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만드는 것으로 대신했다. 중국 원명원의 복해나 서태후의 곤명호는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양 정원은 물의 규모보다는 수반의 형태와 물의 흐르는 과정에 눈이 간다.
신라의 동궁과 월지는 주변에서 물을 끌어들여와 거북이 형태의 수반을 지나서 폭포로 떨어지며 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폭포는 큰 섬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물줄기 또한 섬에 부딪혀 파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건물에서 바라보는 정원은 그 형태의 끝이 노출되지 않아 마치 계속해서 물길이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원 본래의 크기보다 더 깊고 그윽하게 느껴지는 설계이다.
동서양 철학의 차이는 정원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이어졌다. 서양은 진리가 존재한다고 여겼고, 예술에서 진리는 객관적인 아름다움이었으며 그렇게 서양의 정원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동양의 진리는 나와 분리되지 않았다. 진리란 완벽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내가 도달해야 될 어떠한 경지였다. 그렇기에 동양의 정원은 자연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서양의 방식이라면, 동양은 진리가 되고자 했다. '진리를 인지하는 것'과 '진리가 되고자 하는 것', 이것이 동서양 정원의 근본적인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