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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랑 Mar 01. 2024

내가 생각하는 한국 정원의 정체성

동서양 정원의 특징 3편


우리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불과 4,50년 전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 우리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같은 정원 특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경제와 문화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시사한다. 문화는 창조국과 소비국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문화소비국이었다. 자체문화가 있었지만 많은 부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화이다. 일본도 문화소비국이었지만 전국시대 이후인 16~17세기 경제가 발전하고 서양 문물과 교류하면서 일본 문화가 서양으로 전해졌다. 문화창조국이 주변 국가에 영향을 주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본은 서양으로 전파되었다. 가레산수이かれさんすい라고도 불리는 고산수枯山水정원과 다정茶庭(露地)은 전국시기 이후 경제적 성장과 함께 정립되었다. 경제력이 정원에 미치는 영향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절대적이다.


한국만의 정원 디자인 특징을 말하고 싶겠지만 경제력도 갖추지 못했었고, 문화소비국이었던 우리에게 이렇다 할 정원 디자인 특성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도정원, 러시아정원, 멕시코 정원이 쉽게 떠오르지 않고, 심지어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하다고 하는 북유럽 국가나 독일의 정원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양식’이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할 만한 한국 정원 디자인 특징은 없다. 나라를 대표하는 정원 디자인 특징을 갖기 위해선 강대국의 경제력과 문화창조국이라는 배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16세기 유럽의 정원 문화를 주도했던 이탈리아 정원에 대한 책인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Italian Villas and Their Gardens)'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이탈리아 정원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옛 이탈리아 정원을 거닐며 누군가 나에게 자기 집 마당 뜰에 옛 정원의 마법을 옮겨놓는 방법을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부서진 조각상이나 깨진 부조, 혹은 특정 유형의 파편적 효과가 아닌, 오직 이탈리아 정원의 정신만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 정원가의 목적에 대한 이해, 정원의 용도에 대한 이해 말이다.”  

이디스 워턴의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 / 글항아리 / 김동훈 옮김 / 2023 / 본문 일부 수정


화려한 디자인 양식과 스타일이 있는 이탈리아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디스 워턴'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정신'이다. 경제력으로 갖출 수 있는 장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정원에 담긴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전에 말한 중국의 조경가 계성 역시 ‘원야園冶'에서 같은 뜻을 전하고 있다. 기술이 뛰어난 장인보다 정원 조성의 목적과 용도를 결정하는 주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정원에 눈에 띄는 디자인과 양식은 없더라도 '정원의 정신'은 있다.






한국 정원의 특징을 규명하기 위해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던 환경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것은 어쩌면 한국 정원의 특징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정원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수준 높고 아름다우며 웅장한 정원들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 역시 서양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원이 있었다. 왕이 조성한 조선의 궁과 후원의 정원은 굉장히 정형적이다. 사각 혹은 원형으로 못과 섬을 조성하였고, 건축물도 전체 공간에서 남북 중심축에 위치하거나 대칭적이다. 사대부 주택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지성인이자 정치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집에 조성된 정원 요소들은 모두 위계 있는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 정원의 특징은 별서에 있다. 중앙정치에서 쓴맛을 보고 자연으로 들어가는 선비들에게는 과시해야 할 부와 권력은 없었다. 정원을 조성하는 목적 중에 가장 흔하고 강력한 ‘권력 과시'가 조선의 별서에서는 제외되었다. 중국 소주의 정원들도 중앙권력에서 낙담한 이들이 조성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도심에 지어졌으며 소주에 사는 것만으로 권력 있는 가문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일본의 정원들은 사찰 정원이다. 다이묘 소유로 자신의 세계관을 지지받는 것이자 권력을 드높이기 위한 용도로 만든 사찰들은 불교의 정신은 이어가되 주인의 위상을 해쳐서는 안 됐다. 이 모든 것에서부터 한국의 별서는 자유로웠다. 철저히 개인적인 정원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정원을 나열해 보자면, 청암정, 소쇄원, 독락당, 초간정, 서석지, 부용동 원림, 명옥헌, 남간정사, 명재고택, 무기연당, 운조루, 다산초당, 성북동 별서이다. 이 중에서 독락당, 명재고택 그리고 운조루는 주택이지만 개인의 개성을 담아 일반적이지 않은 주택을 조성하였기에 포함하였다.


이 정원들의 공통된 특성을 이야기하자면 정원을 조성한 주인의 목소리가 날 것 그대로 담겼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정원은 본인이 즐기는 것보다 누군가 왔을 때 선보이기 위한 역할이 더 컸다. 조선 별서는 낙향하였거나 은거하고자 조성한 정원이기에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보다 나 자신을 위한 공간인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한국의 정원은 개인으로서의 나와 사회적 자아 사이에서 전자에 더 밀접한 정원을 조성하게 된다.


개인에게 밀접한 정원의 설계언어는 사적私的이다. 소쇄원은 ‘기다림', 독락당은 ‘자책', 부용동 원림은 ‘외침', 명옥헌은 ‘사색', 운조루는 ‘배려'라는 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설계되었다. 한국 정원의 감동은 여기에서 온다. 정원 자체의 화려함과 압도적인 스케일로 인한 감동이 아닌, 주인이 가진 인생에 대한 태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제작 규모가 큰 뮤지컬이나 영화가 아닌, 소극장에서 연주되는 공연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느끼는 감동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인적 특징이 없다고 했지만 한국 정원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 거대한 자연 암석의 활용이다. 거석을 사용해서 정원을 만든 것이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 정원의 특징이다. 중국과 일본은 인위적으로 자연을 창조한 반면, 한국은 자연 속에 들어가 정원을 만들었다. 이것을 자본이 부족해서라고도 볼 수 있고, 원래 자연 암석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성정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한국이 거대한 암석을 정원에 사용한 것은 고조선 때부터 자리 잡은 우리의 자연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은 한국 문학에 있어서 인간의 자연관을 투영하는 대상이며 정신적인 관조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또한 명상과 교양과 지혜·초탈·안주·무욕의 온갖 의미를 깨닫게 하는 수양적인 거울의 근거가 되는 동시에, 자연과의 융합을 구하는 가장 구체적인 공간이요, 예술적인 미적 공간의 대상이기도 하다. 산은 삶의 일부로서 세속 속의 혼탁해진 정신을 정화시켜 주는 위안의 구실을 하기도 하며 경외의 대상으로 경건성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김윤선 /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산 이미지 연구 /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2008 / p83


어딜 둘러봐도 눈에 담기는 산의 이미지는 한국인의 자연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거대한 암석들이 주는 힘은 자연에서 정원을 조성하고자 하는 이에게 매력적인 디자인 요소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거석이 있는 곳에 정원이 생겼고, 정원 속의 거석들은 주요 디자인 요소였다.



성북동 별서 / 동궁과 월지 / 서석지 / 초간정 / 보길도 세연정(출처: 조경신문) / 청암정 / 옥류천 / 다산초당


한국 정원의 두 번째 디자인 특징은 '자연 계류의 증폭'이다. 자연 계류를 증폭시키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실제 자연 계류가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해당 계류의 자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방법이다. 자연 계류의 돌을 확장하거나 조정하여 물길이 더욱 세차고 시원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독락당의 자계, 소쇄원의 고목으로 들어가는 부분, 그리고 옥류천의 소요암이다. 두 번째, 자연계류형의 물길에 인위적인 부분을 결합시키는 방법이다. 자연계류와 달리 자연계류형의 물길은 인위적으로 만든 자연계류를 말한다. 동궁과 월지가 대표적인 예로 북, 동쪽의 지당의 형태는 남해와 같이 자연스러운 호안이고 남, 서쪽은 직선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호안을 만든 일본과 비교해 봤을 때 확연히 차이가 난다.


좌: 경주의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 우: 교토의 서방사西芳寺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자연계류 옆에 일부러 인위적인 지당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인위적인 지당과 비교하여 자연 계류를 더 부각하려는 듯 보인다. 물론 지당의 목적이 단순히 자연계류를 부각하기 위해서만 조성된 것이 아니다. 각자의 기능이 분명히 있는 인공 지당이 자연 계류 바로 옆에 조성된 이유는 자연계류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대표적인 예로 소쇄원 계류 옆의 두 개의 방지, 옥호정의 계류 옆 두 개의 석조, 세연정의 계류 옆 방지 등이 있다.



자본이 부족해서, 혹은 자연 속에서 은거하기 위해, 혹은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고유의 성정이 있어서든 이유가 무엇이건 한국은 자연 속에, 자연을 활용하여 정원을 만들었다. 자연 속에 정원을 만들려면 자연과 다르다는 것을 오히려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계류에서만 자연과 인공을 서로 대조하였던 것이 아니다. 차경借景의 방식에서도 한국은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한국, 중국, 일본은 모두 자연을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차경의 방식을 취한다고 한다. 하지만 세 나라의 차경 방식은 다르다. 한국은 본래의 자연과 인위적 정원을 대조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자연 속에 만든 정원이기에 오히려 인공적으로 조성한 부분은 인공적인 것임을 분명히 하고자 노력하였다. 만들어진 정원이 자연인 것처럼 하면서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도록 한 것은 일본의 방식이다. 일본은 인공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이 구분이 안되도록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차경한다.


교토의 무린암無隣庵은 나무의 형태를 처음과 똑같이 유지하여 멀리 있는 산이 정원의 스카이라인과 연결되도록 함


반면 한국은 자연과 인공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극적인 예로 경복궁 근정전의 처마선과 연결되는 두 산이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의 산세가 근정문과 근정전 처마와 겹쳐지며 보이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는 한국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또 다른 예로는 안동 병산서원의 만월대와 영주 부석사 안양루가 있다. 이렇게 극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모든 건축 공간은 인공의 공간에 자연이 함께하도록 한다. 자연인 '척'하지 않고 자연이 아닌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다.


흥례문과 근정전


중국의 대표적인 정원들은 소주에 있다. 강남은 산세가 없이 평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중국은 담장 안에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자연을 만들어 과장시켰다. 자본이 풍부하고, 정원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경지는 자연이기에 이를 모방하는 노선을 취하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인위성을 동원한다.




정원은 세 단계를 거친다. 주인이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단계, 구상하는 단계, 시공하는 단계. 눈에 띄는 것은 시공하는 단계에서 세 가지 재료(물, 돌, 식물)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동서양 정원의 차이를 재료 활용법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었고, 한중일의 차이 역시 이를 비교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낳는 것은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주인의 심미안이 달라서다. 눈에 띄는 특징은 재료의 차이겠지만 주인이 어떤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는지에 따라 정말 달라지는 것은 정원의 '골격'이다. 중국의 정원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를 거쳐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많이 변형되었지만 골격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디스 워턴Edith Wharton 역시 많이 변해버린 이탈리아의 보볼리 정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정원 디자이너가 처음 의도한 것보다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덜 인상적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정원의 구조는 주의 깊게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중략)... 이는 식재와 장식상의 변경은 꽤 있었지만 구성의 변화는 덜 심했던 덕이다.


정원의 '골격' 혹은  ‘정원의 구조’는 정원의 시퀀스sequence를 결정한다. 어떠한 기승전결로 정원을 감상하게 할 것인지,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떤 효과로 전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원의 골격이다. 한국 정원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며, 원하는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재료이다.


아름다운 정원은 무엇인가? 정원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취미로서의 정원이 아닌 예술로서의 정원은 무엇인가? 정원에서 추구하는 '미'와 '예술'의 정의가 동서양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이 있고 없고, 장식의 수준이 높고 낮고로 보았을 때 한없이 초라해지는 한국 정원을 다른 관점, 정원이 가지고 있는 깊이로 느껴보길 바란다. 정원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어떤 구성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지 느껴보자. 그런 한국 정원의 감동을 전하고자 '한국 정원을 거닐다'라는 글을 쓰고 있다.


명절의 차 안에서 졸음이 더 쏟아질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달이 지나도록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나를 견뎌준 남편에게 고맙다. 덕분에 학부 때부터 끝없이 질문했던 '한국 정원의 정체성'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공감과 비난을 받을지 알 수 없지만 한국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더 많아지길 바라며 남은 정원 이야기들을 이어가고자 한다.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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