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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랑 Feb 23. 2024

그래서 한국 정원에 특징이 없다고?

동서양 정원의 특징 2편

한국 정원이라고 하면 ‘터잡기’가 중요하다거나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다.'라고 표현한다. 한국 정원의 특징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말로 ‘차경借景'이 있다. ‘화계花階’와 ‘방지원도方池圓島’가 한국 정원을 대표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쇼몽 Chaumont 정원 박람회에 조성된 한국 정원의 방지원도와 화계


대부분의 지형이 평지인 나라는 어디에 건물을 짓고 정원을 만들던지 주변 자연환경과 크게 연관이 없겠지만, 산지가 많고 지형의 변화가 큰 나라는 어디에 건물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미기후가 달라진다. 또한 어디로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경관이 달라진다면 어디에 입지 하느냐, 즉 '터잡기'가 건축 배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화계가 있듯, 이탈리아에 노단露段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지형의 변화가 커서 건축물을 조성할 때 어려움이 따르지만 장점도 크다. 지형을 잘 이용하면 겨울에는 찬 바람을 막고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그만큼 물을 다이내믹하게 사용할 수 있고 돌도 많아 정원을 풍성하게 조성할 수 있다.



한국의 화계와 이탈리아의 노단



‘터잡기', ‘차경', ‘화계'는 표현만 다를 뿐 우리나라와 지형이 비슷한 이탈리아 정원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방지원도'는 조선시대의 공적 공간인 궁이나 사찰, 서원에 주로 만들어졌던 유교적 상징, 즉 심벌symbol과 같은 것이다. 공적 공간의 정원이 당대의 사상을 반영한 예는 어느 문화권이든 존재한다.


동궐도 부용지의 방지원도


유럽 중세의 수도원에는 ‘사분원司分園(four gardens)'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의미의 사분원은 네모난 화단 중앙에 둥근 수반을 두었다. 이처럼 엄격한 공간에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상징하는 바를 표현할 때 방형과 원형을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방지원도' 역시 한국을 상징하는 정원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생 미셀 드 쿠샤 수도원의 '클로이스터 정원' (출처: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탈리아와 한국의 정원은 분명 다르다. 물의 사용을 보더라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지형을 가졌기에 낙차를 활용하여 분수를 만드는 것은 우리도 가능했다. 하지만 동양 어디에서도 물이 위로 솟구치는 분수를 찾아볼 수 없다. 돌의 쓰임도 다르다. 서양은 유려한 기술로 조각한 석상을 곳곳에 배치해 장식한 반면 동양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괴이한 형태의 돌을 가져와 중심공간에 배치하였다. 식물 역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하기 위해 다듬었던 서양과 달리 동양의 수목은 원래 모습 그대로다.


 Villa d'Este (Tivoli) / Laokoon (출처: Wikimedia commons) / Topiary (geograph.org.uk)


알아낸 진리를 예술로 표현한 것이 서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아름다움을 미술과 조각 그리고 건축과 정원에 표현했고, 물과 돌 그리고 식물은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여겼다. 반면 진리가 되고자 했던 동양에서는 정원의 재료들이 자연의 모습 그대로이길 바랐다. 그중에서도 괴석은 자연의 돌 가운데 가장 기이한 모습을 최상으로 여겼다. 아름다운 돌이 아닌, 기이한 돌을 최고로 여긴 것은 자연의 형상이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것보다 높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괴석 (출처: wikipedia.org)


“그래서 한국 정원의 특징이 뭔데…”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설명에 지칠 법도 하지만 경제학도 남편은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정원의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만큼 재력이 없어서 눈에 보이는 특징이 별로 없었어.”


“이렇게 긴 이야기의 결론은 한국 정원에 특징이 없다야?”


“눈에 보이는 특징이 없는 걸 어떡해. 디자인적으로 아주 대단한 특징이 있느냐? 나의 결론은 ‘없다.’야.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세상의 모든 정원은 세 단계를 거친다. 정원을 만들기로 주인이 결심하는 단계, 그다음은 주인이나 설계가 혹은 두 사람이 힘을 합해 정원을 구상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예산을 가지고 시공하는 단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정원들은 16세기 초 이후의 작품이다. 물론 삼국시대의 정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선시대의 것들이다. 고려시대의 정원이 아직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15세기 이전의 정원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례는 드물다. 조선은 가난한 나라였다. 시공 단계에서 사용가능한 예산이 많지 않았고, 수준 높은 시공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는 디자인적 특징을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영주체제도 아니어서 시대를 관통하는 양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중국 명나라 시대의 조원가인 계성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정원을 만들 때 보통 장인을 불러 모으는 일에 열중한다. 정원 조성의 성공이 장인에게 달려있는 것은 3할이고 7할은 주인에게 달려있는 것을 왜 모를까?

-'원야園冶'에 나타난 계성의 원림조영이론 연구 / 한국조경학회지 / Volume 25 Issue2 / 이유직 / 1997 /재번역



이 말은 가지고 다시 한번 한국 정원의 특징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한국 정원의 특징은 정말 없을까?


3편에 계속..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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