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정원의 특징 1편
설을 지내기 위해 남들 잘 시간을 선택하여 시댁으로 내려가는 차 안, 대화가 고팠던 부부에게 이처럼 좋은 환경은 없다. 매일 9시면 아이들과 함께 잠들어버리는 나는 좀처럼 남편과 수다 떨 기회를 갖기 어렵다. 대화라고 하지만 주제선정이 일방적이기에 독백을 거들어주는 수준이다. 근래에 참여했던 워크숍에서 본 흥미로운 문장을 대화 주제로 삼았다.
“정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대. 취미로서의 정원과 예술로서의 정원."
정원이 예술이었던 것은 16세기 이탈리아, 17세기 프랑스, 18세기 영국, 그리고 19세기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경제 수준이 높을 때 정원은 취미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발전한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정원은 한 번도 예술의 영역이었던 적이 없다. 정말 그럴까?
이에 답하기 위해 ‘예술이 뭐냐?’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술에 대한 정의가 동서양이 다르다면 다른 시각으로 한국의 정원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예술은 이를 표현한다. 서양의 철학은 진리를 밝혀내고자 했다. 절대적 진리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이를 '알고자'했다. 이것은 진리라는 '대상'과 알고자 하는 '나'를 구분한다. 이러한 서양의 예술은 어딘가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정원에 구현한 예가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대표적 정원들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절대적 진리가 외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리를 ‘알고자'하는 서양과 달리 진리가 ‘되고자'했다. 진리란 인간이라면 길러서 갖추고 도달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동양의 정원은 나 자신의 확장이었고, 정원 역시 진리가 되어야 했다. 정원이 진리가 되는 방법은 바로 '자연'이 되는 것이었다.
긴 독백을 깨고 남편이 질문한다. “그런데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 정원만의 특징은 뭐야? 구체적인 특징이 있을 거 아니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정원이라는 게 있는데 한국은 뭐냐고?” 경제학도인 남편에게 조경계의 오래된 질문을 편안한 마음으로 답해본다. 수 없이 물었었고, 수 없이 많은 답을 들어왔으며, 수 없이 답해봤던 질문이다. 이번엔 또 어떤 답변이 나올까? 나 역시 궁금하다.
“예전부터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건데. 서양은 예술에 양식이라는 게 있잖아.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자연 풍경식 등등. 그런데 일본에도 그런 양식이라는 게 있어. 다정茶庭(露地), 고산수枯山水,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등. 이건 정치 상황과 밀접한 영향이 있는 것 같아."
"한국 정원의 특징을 물었잖아.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는 정확하다.
"자기는 특징이라고 물으면서 서양에는 양식이 있는데 왜 우리는 그게 없냐고 했잖아? 그래서 얘기하는 거야. 한국에는 양식이라는 게 왜 없는지. 이건 동서양의 차이라고 볼 수 없어. 일본에는 양식이 있거든."
양식은 시대의 유행 가운데 하나의 획을 그은 것을 말한다. 양식은 획을 기준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유행은 여러 사람의 공통된 니즈needs를 충족시킬 때 발생한다. 공통된 니즈가 있다는 것은 같은 환경에 있다는 것이고 정원에서의 공통된 니즈는 바로 '권력 과시'였다.
유럽은 여러 왕조가 끝없는 전쟁을 이어갔다. 왕 아래에 영주들은 한 지역에 자리 잡고 서로 위력을 과시하였다. 일본도 비슷한 정치 구조였다.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 쇼군 아래로 다이묘들이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는 구조였다. 왕만큼은 아니더라도 부와 권력을 가진 영주들은 정원을 통해 위력을 과시했다. 프랑스에는 이러한 권력자를 위해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가 있었고, 일본에는 '몽천소석(무소우 소세키)夢窓 疎石'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프랑스의 기하학적 정원과 일본의 고산수 정원이라고 하는 양식을 창안했다.
“그럼 중국은?”
“글쎄 중국은 내가 알기론 양식이 없어. 중국의 정치 구조를 잘 알지 못하지만 시대별로 황가정원, 사가정원으로 나눠서 설명하던데? 영주정원이 있었다면 설명하지 않았을까? 중국조경사 같은 책에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양식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거나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모르거나.”
사실 일본의 다정과 고산수 정원 역시 양식이라기보다는 정원의 종류라고 하는 것이 맞다. 서양은 철학과 미술, 음악과 건축을 거쳐 정원으로 넘어오게 된 하나의 예술 사조라고 할 수 있지만 다정과 고산수는 시대 상황과 정원의 기능 때문에 생겨난 정원의 종류이지 다른 예술 사조와 그 맥락을 함께한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동양의 철학 자체가 서양과 같은 발전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서양은 정-반-합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계속해서 발전한다면 동양은 가장 높은 곳, 혹은 깊은 곳, 혹은 도道에 도달하기 위한 끝없는 수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과 같은 방식으로 예술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마치 칼로 물을 잘라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구분하려는 것과 같다.
“그럼 중국은 양식은 없지만 고유의 스타일은 있어?”
“중국의 정원이 예술인지를 묻는 거라면 동서양 모두의 관점에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중국은 유럽 강대국 못지않은 부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 쑤저우苏州市의 명원들을 살펴보면 당대 최고의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기에 중국이 생각하는 최고의 정원을 만들 수 있었어. 그래서 중국 쑤저우의 정원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고."
“그럼 한국은?”
"한국 정원 설계 과정에 대해 먼저 얘기한 후 답하고 싶지만, '서양의 관점으로는 취미이고 동양의 관점으로는 예술이다.'가 내 대답이야. 자세한 설명은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가 이어갈게. 자기 힘들지 않아?"
이렇게 내 생각이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뱉게 해주는 남편 덕에 그림이 잡혀간다. 한국 정원을 설계 과정으로 뜯어보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난한 나라의 정원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2편에서 계속..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