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독락당獨樂堂
경주 독락당獨樂堂은 독특한 민가이다. 보통의 민가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채 앞으로 자연스럽게 동선이 이어져서 마치 집주인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집의 사랑채, 독락당은 꼭꼭 숨어 있다. 대문을 열면 가로로 긴 행랑채가 먼저 검문을 하듯이 서 있다. 허락된 유일한 동선인 맨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3면이 막힌 답답한 담장이 나온다.
독락당으로 연결되는 문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담장을 한 칸 뒤로 물리고 옆면에 문을 두었다. 이렇게 숨겨진 3개의 문을 거쳐야 겨우 당도하는 독락당에서 철저히 차단되고자 하는 주인의 의도가 전해진다. ‘홀로 즐거운 집'이라는 이름의 사랑채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듯 몇 겹의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다. 독락당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길은 다시 밖으로 내쳐지는 좁은 골목길이다. 다른 길이 있는가 싶어 다시 대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다른 동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허망하게 발길을 돌려 자계가에 앉아 맑게 흐르는 물을 보며 마음을 달래 본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차단해 놓은 동선과 집의 이름이 홀로 있고 싶은 사람의 집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오히려 그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홀로 즐거운 것이었다. 그는 '홀로 즐거움을 즐기는 것보다 남과 함께 즐거움을 즐기는 것이 낫고, 적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즐기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즐기는 것이 낫다.’는 맹자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리였다.
今春不雨大無麥 봄에 비 내리지 않아 보리농사 흉작인데
又悶西疇少揷秧 모내기 한 땅도 얼마 되지 않아 걱정이네
自愧空疏忝侍從 능력 없는 몸이 시종 직책 맡아서 부끄럽다
凶年無術撫流亡 흉년에 떠돌아다니는 이들 구제할 재주가 없으니
이언적
이 집의 주인 회재 이언적은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한 이유로 귀향을 당한 처지였지만 오히려 그는 혼란스러운 정치로 인해 피해 입는 백성들을 걱정했다. 정계에 진출하여 직책을 맡았으나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할 능력이 되지 않는 자신을 한탄하였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즐거운 '여민락與民樂'을 할 수 없고, 홀로 즐거운 '독락'이나 한다며 자책하는 뜻에서 독락당이라 이름 지었다. 그가 이 집에 꽁꽁 숨고 싶었던 것은 홀로 즐겁기 위함이 아니라,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귀향에서 풀려나 중앙정치로 복귀한 이언적은 을사사화 때, 자신을 귀향 보낸 이들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심판이 끝난 후, 자신이 파면시킨 이들과 함께 관직에서 물러나 독락당으로 돌아온다. 이언적은 조선의 주리적 성리설의 시초를 만든 사람이다. 그의 성리설은 이후 퇴계 이황이 이어받아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된다. 이후 이언적은 동방 5현(정여창, 조광조, 김굉필, 이언적, 이황)으로 칭송받았다.
독락당에 앉아 살창을 통해 보이는 이언적의 정원은 자계紫溪라 불리는 자연 계류이다. 자연 계류를 개인 정원으로 만드는 방법은 계류 곳곳에 인생의 표어를 새기는 것이다. 자계에는 이언적이 추구하고자 했던 인생의 표어들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서 독락당 건너편 바위에는 공자와 제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귀대詠歸臺가 있다.
어느 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너희들은 평소에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데 만약 누군가 너희들을 알아줘서 큰 자리에 등용하려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어떤 제자는 ‘군사력을 강화해 강인한 나라를 만들겠다.’ 하고 어떤 제자는 ‘백성들이 모두 풍족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답한다. 훌륭한 사람들이다. 거문고를 연주하던 제자 증점이 답한다.
“저의 꿈은 소박합니다. 어느 저물어가는 늦봄, 깨끗한 봄옷 갈아입고, 좋아하는 친구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곱 명과 물가에서 멱 감고, 정자에서 바람에 몸 말리고, 저녁에 시 한 수 읊으면서(읊을 영詠) 함께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돌아갈 귀歸) 것입니다.”
공자는 답한다.
“자네의 생각이 나와 같다.”
독락당뿐 아니라 영양의 서석지, 함안의 무기연당 등 '영귀詠歸'가 등장하는 정원이 많다는 것은 공자와 증점의 이야기가 조선의 선비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큰 자리에 등용되었을 때의 포부를 말하라는 공자의 질문에 증점은 뜬구름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포부와는 거리가 먼듯한 증점의 대답은 그 의미를 단번에 깨닫기 어렵다. 증점의 대답 못지않게 당황스러운 것은 공자의 질문이다. 공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다 준비가 덜 되고 부족한 나 자신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독락당 앞 개울가에 앉아 영귀대를 바라보며 공자의 질문을 곱씹어 본다. 부족한 자신이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한 질문은 오히려 삶의 지표가 되어주었다. “언젠가 세상이 알아주는 그날이 왔을 때 꿈을 펼칠 수 있는 준비가 된 삶을 살고 있는가?” 걷고 있는 길에 의심이 들 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이 질문을 떠올리면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세상이 냉담할 때, 독락당을 생각한다. 화려한 중앙정치에서 물러나 귀향을 당한 채 백성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언적이 영귀대를 보며 스스로를 믿고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지금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삶에서 지표가 될만한 질문을 마음에 새기고 흔들림 없이 걷다 보면 어느 저물어가는 늦봄, 깨끗한 봄옷을 입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흥겨운 노래 부르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자와 증점의 대화는 [고전의 대문], 박재희 저, 출판 김영사의 p75를 인용하였습니다.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