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일두고택一蠹古宅
‘미스터 선샤인’,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여자 주인공의 집으로 등장하는 고택, 바로 함양의 일두고택一蠹古宅이다. 일두고택이 대감집 여식인 여자주인공의 집으로 제작진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전국에 있는 여러 고택 가운데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택이라 불리는 조선의 민가는 총 5개의 핵심 건축군으로 구성된다. 하인이 머물고 창고가 있는 행랑채, 바깥 주인이 머물며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 안주인이 기거하고 부엌이 있는 안채, 그리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별당채이다. 어느 민가든 건축군은 같지만 배치된 방식이 다르다. 이 5개의 건축군이 어떤 관계성을 가지며 배치되었는지에 따라 가문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랑채의 누마루는 고택의 얼굴이다. 사랑채 누마루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바로 집주인의 철학이자 가치관을 뜻한다. 일두고택 사랑채 누마루는 바로 앞 정원을 향한다. 누마루와 연결된 담장 아래로 자연돌과 늠름한 소나무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나무의 기상이 마치 고택의 살아있는 영혼처럼 느껴진다. 누마루 앞 정원은 일두고택의 독특한 건물배치의 중심이다. 정원 건너편으로는 별당채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을 모시는 별당채는 안채 가까이 위치시킨다. 일상생활에서 어른을 모시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두고택은 특이하게도 사랑채와 가깝다. 단순히 가까운 것이 아니고 사랑채와 별당채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다. 누마루에 앉아 있으면 별당채를 살펴볼 수 있고, 별당채에 앉아 있으면 소나무를 감상하며 자연스레 누마루에 있는 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건물의 시선을 정원이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별당채에 계신 부모님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을 수 있도록, 대문을 들어선 사람들의 시선을 정원으로 빼앗아 바로 뒤에 머무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가문을 대표하는 집으로서 갖춰야 할 위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랑채 정원을 화려하게 꾸몄다. 그렇기에 일두고택 사랑마당의 정원은 조선시대 민가 주택 가운데 품격이 느껴지면서도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출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고택을 그린 그림은 많다. 그중에서 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를 통해 조선인들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저택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김홍도가 말년에 그린 역작인 삼공불환도는 어린 순조의 천연두가 나은 것을 기념하여 그린 그림이다. 어린 순조의 천연두 완쾌와 이상적인 저택은 연관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사실 이 그림은 이상적인 고택을 그렸다기보다는 정확히는 이상적인 삶을 그렸다. ‘삼공불환’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영의정·우의정·좌의정을 말하는 삼공三公의 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행복한 삶을 말한다.
소박한 저택의 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기둥을 연못에 박고 물에 떠 있는 듯 존재하는 사랑채 누마루이다. 누마루는 파초·괴석·소나무·대나무가 있는 근경과 담장 너머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중경으로 담았다. 멀리 정박된 배에서 내린 손님이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은 원경이다. 사랑채 손님께 술상을 보는 아낙 뒤를 학이 따르고, 사랑채 위쪽 대나무 숲 근처에는 사슴가족이 노닌다. 학과 사슴은 이곳이 신선계이자, 평화로운 곳임을 상징한다. 사랑채 누마루 반대쪽 끝으로는 어르신께서 곰방대 한대를 물고 손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집주인을 보고 있다. 이 집에는 또 다른 어르신이 계신데 그림 가장 앞쪽 중앙에 있는 방안에 한 어르신이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아마도 4대가 살고 있는 집인 듯하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는 자연 속 작은 정자가 보인다. 정자를 향해 아낙이 술상을 들고 올라가는 모습이다. 사랑채 누마루의 개방성과 대조되는 즐거움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김홍도와 동갑이며 궁중 화원 동기이기도 한 이인문의 '대택아회도'는 '삼공불환도'를 의식하여 모든 면에서 다르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듯하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그림의 안채는 폐쇄적이다 못해 대나무로 가리고 그림 뒤편으로 치워버렸다. 안채는 보이는 공간이 아니고 내밀한 곳이기에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작가의 과감한 생략이다. 그만큼 사랑채의 위상이 보통이 아니다. 삼공불환도의 사랑채는 누마루의 기둥을 물에 두어 화려하게 했다면, 대택아회도의 사랑채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을 만큼 큰 누마루로 표현했다. 계단의 정확한 개수는 알 수 없지만 성인 가슴 높이 정도의 기단과 성인 남성 키를 훨씬 능가하는 건축의 처마선의 높이로 짐작하건대 일반적인 사랑채의 누마루가 아니라 궁이나 관아로 치면 경회루나 광한루 정도 수준의 상당한 규모의 누마루이다. 사랑채가 담고자 하는 풍경 역시 차이를 두었다. 사랑채 바로 앞에는 괴석과 대나무만 있고, 소나무는 전체 그림의 중심 요소로 솟을삼문 주위에 엄청난 크기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림 가장 앞쪽 아래 정 중앙에 수 백 년은 된 듯한 배롱나무를 그렸다. 고택 앞으로 물이 흐르고 고택의 옆으로 이 집 소유로 보이는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논 뒤편의 산은 원경으로 겹겹이 쌓인 산세가 아득하다. 사랑채 아래의 큰 규모의 하인채는 사랑채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등나무 시렁으로 서향 건물의 그늘을 만든 하인채에는 어린아이가 찻물을 끓이고, 집사는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고택의 주인인 일두 정여창(1450~1504)은 퇴계 이황과 함께 동방의 현인이라 불렸다. 그는 공자의 계보를 잇는 조선 성리학의 중심에 있는 학자이자, 조선을 대표하는 18명현으로 문묘에 모셔졌다. 그가 일두고택을 처음 조성했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조선 초를 살다 간 그의 고택은 16 ~ 18세기를 거쳐 1860년대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정여창 당대의 모습은 아니지만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위상은 그대로 느껴진다. 별당채를 안채 옆이 아닌 사랑채 건너로 만들어 부모님을 직접 돌보겠다는 지극한 효심 역시 대문에 걸린 5개의 정려폐가 아니더라도 건물의 배치만으로 전해지는 바다.
조선시대 고택에는 정원이 없다고 한다. 고택 안에 정원이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 독락당, 명재고택, 운조루, 김명관 고택 등이 있지만 일두고택도 크지 않은데, 다른 곳은 그보다 소박하다. 하지만 소박한 정원 안에도 의미는 있다. 고택의 얼굴인 사랑채가 담으려고 하는 경관이 무엇인지, 경관은 무슨 뜻으로 조성되었는지, 그리고 주요 건축물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조선시대 고택이 담고 있는 메시지이다. 고택의 사랑채만 주로 다뤄왔는데, 언젠가 안채 이야기도 풀어봐야겠다. 사랑채는 집집마다 다르지만, 안채는 거의 다 비슷한 맥락이라서 해볼 생각을 못했다. 비슷한 이야기일지라도 고택의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기에 해봐야겠다.
참고논문: 일두고택의 건축 내력과 변천에 관한 연구 / 한국농촌건축학회 / 정인상 / 2023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