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h Chang
생각처럼 좋은 모래와 얕은 바다는 물이 빠지면 아이들이 바다 생물을 탐험하기에 좋고, 물이 들면 수영하기에 적합하다. 해변을 전부 돌아다녀보지 못해서 숙소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식당은 두 개 정도 되는 것 같고, 그중 가장 가까운 식당만 이용 중이다. 기분상으로는 우리 숙소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숙소 역시 이 식당을 찾는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방콕에서 가격은 착한데 맛은 끝내주는 식당만 다니다가 먹을 수는 있는 수준의 음식을 몇 날 며칠 먹으니 고역이 따로 없다.
식당의 주인은 내 나이 또래로 보인다. 어쩌면 나보다 젊을 것이다. 남편은 서글서글하게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는 스타일이고, 여자는 내성적이면서 순수해 보인다. 거의 모든 일을 여자가 도맡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아주 일손이 바쁠 때를 제외하고는 뭘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주문부터 서빙, 주방 관리, 계산까지 여자가 맡고 있다. 아침 5시면 일어나는 아이들과 허기짐을 달래다 7시 반에 여는 식당에 앉아 문 열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으면 식당의 문을 여는 이는 여지없이 여자다. 남편은 오전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여자와 나는 서로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몇 번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3개의 음식이 잘못 나왔는데, 두 개는 얼마 하지도 않고 별 것 아니라서 물렀지만 마지막 음식은 가장 비싼 메뉴 중 하나라 할 수 없이 그냥 먹었다. 당시에 신경질을 내는 여자가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본인이 squid와 shrimp를 구분하지 못해서 잘 못 나온 것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 억울했다. 아이들은 새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자 싶어 그냥 달라고 했다. 다행히 딸이 맛있다며 제법 먹었고, 역시나 뱉을 정도는 아닌 수준의 가성비 떨어지는 음식으로 배를 조금 채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혼자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은재보다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의 지친 삶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이상한 화가 났다. 아마도 고생을 도맡게 되는 여자의 삶에 감정이 대입돼서 그런 것 같다. 아침을 먹는데 뒤에 앉은 여자가 당신들은 언제 쉬냐고 물었다. 어제 아침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여자의 그 질문은 의당 유럽 사람이 아시안에게 물을 법하지만, 한편으로는 배부른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듯하다. 유럽인들에게 아시안의 삶은 얼마나 이상할까? 이 섬 전체를 통틀어 거의 외국인 아시안은 내가 유일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 내가 눈으로 보고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서양인이었고, 대부분이 독일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정도이다. 그 먼 나라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거의 알지도 못하는 이 섬까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가까이 사는 아시안들은 왜 아무도 없는 것일까? 처음에는 정보의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생각해 보니 휴가의 차이가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된다. 8월에는 거의 자국에 있는 사람이 드물 정도인 유럽과 휴가 전체를 합쳐서 여행해도 길지 않은 아시안들에게는 코창처럼 직항이 없는 섬은 사치다.
안면을 튼 독일인 가족군과 여러 가지 대화를 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아이들은 7시면 졸리다고 성화고, 친구들끼리 독일말로 편하게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른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한 채로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참을 수가 없어서 글이라도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아이들에게 신물이 나버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편이 오면 혼자 2박을 어딘가에서 하는 상상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꼭 숙소를 따로 잡기보다는 그냥 하루 종일 오토바이 빌려서 혼자 다니며 밥도 편히 먹고 하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다가도 한국에 돌아가면 2달 반 정도는 너무 바빠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할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이상하게 감정이 전염되는지 아이들이 자꾸 다툰다. 내 탓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반나절만 누가 봐줬으면 좋겠다. 한순간도 자유가 없이 책잡혀 사는 일상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엄마를 찾는 것이 당연한 나이의 아이들에게 제발 엄마 혼자 두면 안되냐고 부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입 밖으로 그 말이 안 나오고 참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어디 괜찮은 바에 가서 위스키 한두 잔 하고 싶은 생각,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생각 등등.. 꽉 막힌 하수구 같은 목구멍을 어떻게 해주고 싶다. 음식이라도 맛있으면 낙이라도 있을 텐데.
이곳에 온 후 첫날 새벽에 맞이한 하늘의 색이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일 것 같다. 아직 여행의 1/4밖에 지나지 않아서 두고 봐야겠지만, 그만한 하늘의 색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그다음 3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아침 해가 어슴푸레 뜨는 시간에 눈을 뜨는 아이들과 조용한 바다에 나가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다. 이 바닷가의 9일 중 4일을 보냈다. 보통 섬의 해변가에 5일 정도 있으면 주야장천 있었다는 기분이 들기 마련인데,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느린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한국이 그립기도, 돌아가서 해내야 하는 일들이 두렵기도 하다.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어차피 생각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모처럼의 휴식을 잘 취해야 능률이 오를 거다. 내일은 재밌게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