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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피어오르는 구름들 사이로

by 월하랑

누가 어떤 공간을 만드는지 보는 것이 즐겁다. 요즘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대표가 살고 있는 집을 공개하기도 한다. 영상 속에서 보이는 다양한 집 구조와 가구 배치 속에서 의외로 종종 등장하는 풍수지리의 영향을 보는 것이 재밌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풍수 문화는 고려 때 전성기를 이뤘다.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구시대 산물로 여겨질 법한 풍수지리의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풍수지리를 유교의 산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조선의 유학자들은 풍수지리와 같은 미신을 멀리했다. 조선의 양반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유학자들의 삶은 조선 중기 이후로 많은 사화들을 겪으며 불안정해졌다. 일가친척이 모두 몰살당하거나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언제 사건에 휘말려 같은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양반들이 많아지면서 계급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준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생겨났다. 때마침 이러한 갈증을 해결해 주는 책이 등장했으니, 바로 이중환의 택리지였다.


풍수지리책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택리지는 오히려 실리적인 책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부동산투자 기술을 알려주는 책에 더 가까웠다. 풍수지리보다도 앞으로 어떤 지역이 유망한 지를 근거를 들어 설명한 책이 바로 택리지였다. 당시 택리지를 탐독한 여러 양반 중에 류이주가 있었다. 택리지를 탐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근거 중 하나는 안동 사람이었던 그가 택리지에서 전라도의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되는 구만촌을 방문한 후, 집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무과에 급제한 그는 40대 중반 낙안 군수를 역임하면서 전라도에 오게 되었고, 택리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전라도 최고의 명당에 직접 가볼 결심을 했다. 같은 전라도지만 낙안에서 구례까지는 상당한 거리였음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뛰어난 경치가 있고, 비옥한 토지가 있으며, 강가에 바짝 접하여 소금과 생선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뱃길까지 있어 살기 좋은 명촌名村(출처: 택리지 평설, 안대회, 휴머니스트, 2020)이라 소개된 구례는 실제로 경치가 아름답고, 풍수지리도 좋으며, 상업활동으로 돈을 벌기 좋은 곳이었다. 류이주는 이곳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즈넉한 건물이 앉아 있다. 우리의 민가는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일단 민가를 방문하면 여러 건물과 문들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인도되는 대로 흘러가면 된다. 운조루는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경사진 기단과 부엌으로 향하는 문이다. 어둡지만 반대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부엌의 초입에는 커다란 쌀독이 있다. 여기에는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는 뜻의 ‘타인능해’라는 팻말이 적혀있다. 여기까지 구성만 보아도 다른 민가와 비교했을 때 운조루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무엇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는 하나의 메시지이다. 보통은 가장 먼저 화려한 사랑채 누마루가 보인다. 단독으로 튀어나와 위용을 과시하건, 점잖은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건, 방식만 다를 뿐 모든 민가는 사랑채 누마루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운조루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닌 부엌이다. 사랑채 누마루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부엌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전략이다. 의도적으로 누마루의 존재감을 없애기 위해 시야에서 멀리 배치했을 뿐 아니라 다른 누마루에 흔히 있는 장식된 창호도, 현판도 없다.

대문과 거의 직선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가까운 축에 부엌문을 배치한 것은 가장 짧은 동선으로 쌀독에 다녀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사랑채가 먼 것도 같은 이유이다. 주인의 시선이 닿지 않아 편하게 다녀가게 하기 위해서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九禮五美洞家圖’라는 옛 그림에 표현된 운조루 주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서쪽 담장가, 한 구석을 바라보고 있다. 시선을 반대편으로 향하고 존재감 없는 누마루는 집을 드나드는 이들의 눈치를 덜어준다. 남의 집에서 쌀을 가져가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듯하다. 존재감은 거의 없지만, 누마루에 앉아 즐길 것은 넘친다. 창호 없는 누마루는 사방이 뚫려있어 주변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누마루 앞은 회양목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옛 그림에 따르면 화분에 심은 석류 4그루와 그 사이에 괴석을 두었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기이한 형태의 나무가 있다. 중국에서부터 선물 받은 위성류는 그림에서 당나귀가 매달려 있고 뒤로는 학이 있다. 실제로 옆으로 눕듯이 서 있으면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이 그림과 비슷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학과 당나귀가 상징하듯 신선의 세계가 떠올랐다. 때마침 두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며 나무 사이를 날아다녔다. 구름 운雲, 새 조鳥자를 따서 운조루라 이름 지은 집의 정심수(정원에 심기는 나무 가운데 가장 주요하고 특징적인 나무를 뜻함)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있으니 행운이 온 것 같았다.


운조루의 쌀독은 택리지에서 말하는 살기 좋은 곳의 모든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중환은 산수, 지리, 생리, 인심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갖춘 곳을 길지라 말했다. 산수는 경치가 좋은 것을 말하고, 지리는 풍수지리가 좋은 곳이며, 먹고살기 좋은 곳을 생리라 하였다. 세 가지 조건은 땅이 본래 가진 힘이겠지만 마지막 인심은 사는 사람의 노력에 달린 일이었다. 타지에 자리를 잡으려면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든지, 본래 삶에서 추구하던 바였던, 혹은 택리지에서 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완벽한 집을 건설해 보고자 하는 꿈에서였건, 운조루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집이자 최고의 길지였다. 운조루라는 이름 역시 그러한 류이주의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이름이 가진 의미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심히 피어오르는 산골짜기 구름들 사이로 지저귀던 새들이 날다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辭] 작자 해석


구름 운, 새 조의 운조루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둥지로 돌아오는 지친 새는 삶에 지친 우리를 말한다. 삶의 문제들은 구름처럼 의도 없이 무심히 피어오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처럼 우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디 삶의 무심한 구름들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날다 지쳐 돌아온 새가 둥지에서만큼은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길 바라듯 삶에서 지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랐던 집, 운조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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