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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지르는 물과 작은 돌무더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대전 남간정사와 논산 명재고택

by 월하랑

대전과 논산에는 크게 소리치는 듯한 정원과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정원이 있다. 송시열의 남간정사와 윤증의 명재고택이다.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카리스마로 정계를 이끌어간 송시열과 벼슬에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논산에서 은둔하다시피 살았던 윤증의 정원은 대조적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설계 방식으로 정원을 만든 송시열과 아무것도 없다시피 대부분의 공간을 비워둔 윤증은 스승과 제자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적이 되었다.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은 삶의 방식 차이만큼 정원도 달랐다.


송시열의 남간정사


건물 아래로 물이 흐른다. 마치 건물이 물을 내뱉는 것 같다.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이렇게 과감한 형태는 분명한 의도가 없다면 쉽게 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송시열이 마지막 7년을 보낸 곳이다. 세상을 주름잡던 75세의 노인이 말년에 조성한 정원에는 그가 평생 추구한 인생의 철학이 담겼을 거라 생각하며, 건물 아래 물길의 의미에 대해 추측해 보았다. 남간정사를 짓기 전에 송시열은 괴산의 암서재와 대전 소제동의 기국정을 만든 경험이 있었다. 소제동의 기국정은 일제강점기에 연못을 없애고 길이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남간정사 앞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원래 있던 아름다운 소제호가 없어진 것도 아쉽지만 기국정의 새로운 자리가 하필이면 남간정사 앞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기국정도 본래 누리던 넓은 호수 경관이 아닌 작은 못에 기대어 비율이 맞지 않고, 남간정사도 홀로 누리던 못의 한편을 떼어준 것도 모자라 시야의 절반이 가려졌으니 좁지 않던 정원이 복잡해졌다.


지당 한쪽을 메우고 남간정사 정면의 시야를 일부 가려 아쉽지만 건물 아래를 관통하는 물길을 통해 송시열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고 싶었다. 사실 비슷한 건물이 두 개가 더 있다. 둘 다 남간정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모두 송시열과 가까운 사이이다. 대전 동구의 옥류각은 송시열의 사촌 송준길이 죽고 난 후 제자들이 건립한 것으로 건물 아래 계류가 관통하는 형태이다. 또 하나는 송시열의 외손자 권이진의 유회당 별업으로 작은 정자 아래 가느다란 물길을 만들어 지나가게 하였다. 송시열과 가까운 사람들이 남간정사와 비슷한 구조를 만든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물길의 의미를 밝혀낸 연구는 없었다. 궁금해하며 남간정사 사진을 붙들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기둥의 알 수 없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기둥이나 벽면에 세로로 써붙이는 문구인 주련柱聯에는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危石下崢嶸 위석하쟁영 / 위태로운 돌이 가파르고 험한 모습으로 아래를 향하고
高林上蒼翠 고림상창취 / 높은 숲 푸르게 우거지며 위를 향한다.
中有橫飛泉 중유횡비천 /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로
崩奔雜綺麗 붕분잡기려 / 모든 것이 무너지듯 뒤섞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 운곡남간(雲谷南澗) ‘주자’- 작가 해석


돌과 숲, 그리고 물이 등장하는 주자의 '운곡남간'의 시를 이해하면 건물과 물의 이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따로 존재하는 돌과 나무를 뒤섞으며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물이다. 주자는 성리학을 집대성 한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성리학은 마치 세상을 가로지르는 물처럼 만물을 교화시킨다. 남간정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주희가 말하는 물처럼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흘러나와 우주 만물을 교화시키는 성리학을 상징한다. 주자의 시 운곡남간에서 따와 남간정사라 이름 붙인 송시열의 정원은 단순히 혼자 즐기고자 만든 공간이 아닌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송시열은 주자를 열정적으로 따랐다. 절대적 진리 그 자체인 주자를 조금이라도 모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그 자리에서 술상을 뒤집고 절연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남간정사에서 성리학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마치 건물 아래를 흐르는 물이 단순히 성리학을 상징하는 것 이상의 의미 같다. 남간정사의 물은 그냥 성리학이 아니라 주자의 성리학이고, 바로 자신이 주자의 학문을 정통으로 잇는 유학자임을 상징하는 듯하다.



윤증의 명재고택


송시열과 절친이었던 윤선거의 아들이 바로 윤증이다. 윤선거는 자신의 총명한 아들을 가까운 친구이자 훌륭한 유학자인 송시열에게 맡겼고, 윤증 역시 많은 이들이 존경하며 따르는 유학자가 되었다. 어느 날 윤선거와 송시열의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남인인 윤휴가 내놓은 주자의 성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쾌해하며 윤선거의 생각을 묻자, 그와 만나 대화를 해보는 것을 제안하며 윤휴의 말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절대적 진리인 주자의 말에 금이 가는 것을 방관하는 것으로 여긴 송시열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윤선거와 말을 섞지 않았다. 윤휴에 대한 평가로 틀어진 관계는 윤선거가 죽고 나서도 회복되지 못했다. 윤증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스승인 송시열에게 묘갈명을 부탁했다. 송시열은 무성의하고 비판적인 내용의 묘갈명을 보냈고 윤증은 송시열의 독단적인 성격과 주자에게 맹목적인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 이것을 송시열이 알게 되면서 조선의 당파는 노론과 소론,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윤증의 가족은 대의에는 대쪽 같았고 학문적으로는 깨어 있었다. 어머니는 병자호란의 패망 소식에 자결한 충신이었고 윤증의 할아버지는 노쇠한 몸으로 패망의 책임을 떠안고 스스로 유배길에 올라 결국 돌아가셨다. 부인은 대의를 위해 자결했음에도 병약한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죽지 못한 것을 평생 자책하며 관직을 마다하고 산중에 은거한 아버지 윤선거는 속한 당파와 상관없이 배울 점이 있다면 경청하는 사람이었다.


윤증 역시 관직을 마다하고 평생을 단출하게 살았다. 하지만 모두가 따르는 스승이 노쇄해지자 제자들이 나서서 집을 마련한 것이 명재고택明齋古宅이다. 명재고택의 대문이 원래 없었는지, 전해져 오다가 담장과 함께 모두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사랑채가 어떠한 막힘도 없이 노출되어 있다. 다른 건물과 담장은 잘 보존되어 있지만 유독 사랑채 앞의 담장과 대문이 없는 이유는 원래부터 없었거나 만약 있었더래도 별 의미가 없었기에 지금처럼 된 것이라 생각한다.


명재고택의 사랑채 누마루 옆 기단 위에 올라서서 윤증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사랑채에서 꽤 떨어진 집의 입구에는 열녀비가 있다. 병자호란 때 나라를 위해 자결한 윤증의 어머니가 받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지막한 경사가 건물 앞까지 이어진다. 두 개 단 위의 사랑채에 오르면 마을이 잔잔히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농사짓고 있는 농부의 사정을 훤히 볼 수 있는 시야다. 사랑채 앞 넓은 마당에는 아무것도 없이 비워져 있다. 본래 사랑채 앞에는 집주인의 철학을 표현하는 정원이 있기 마련인데도 비워진 채로다. 그저 발아래 작은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쭈그리고 앉아 돌로 만든 작은 산인 석가산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작은 돌들 사이로 큰 산맥이 보이는 듯했다. 앞에 고여있는 작은 웅덩이는 호수 같았다. 문득 무릉도원武陵桃源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부가 물고기 떼를 따라가 빛이 나오는 동굴을 발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사랑채 옆면에는 초록색 글씨로 ‘도원인가'라 적혀있었다.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의 집이란 뜻이다.


시대의 어른이자 모두가 존경한 스승인 윤증의 정원은 이토록 소박했다. 너른 공간이 있어도 본인은 이 작은 석가산으로 무릉도원을 가졌으니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을 위해 사용하라는 뜻 같았다. 사랑채 기단에 올라서 있는 동안 명재고택 옆의 향교로 등교하며 인사하는 어린이들, 마을에 문제가 생겨 조언을 구하고자 모여든 주민들, 나라에 주요한 일이 생겨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전국에서 모여든 선비들의 휏불이 보이는 듯했다.


시대를 함께 살아간 두 리더의 정원은 이토록 달랐다. 평소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며 해야 할 말을 아끼지 않았던 송시열과, 조용히 남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살았던 윤증의 정원은 각자의 삶을 닮았다. 크건 작건, 화려하건 소박하건, 정원에 남겨지는 메시지 속에서 그들의 삶을 본 듯했다.


참고문헌: 무실과 실심의 유학자 명재 윤증 / 충남대유학연구소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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