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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머금은 하얀 돌

영양 서석지瑞石池

by 월하랑

정원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시골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주변의 경치를 보며 한가로운 시골길에서는 천천히 운전하곤 했었다. 서석지를 향하던 중이었다. 맞은편 절벽을 보고 놀라 차를 멈춰 세운 후 제대로 보기 위해 되돌아갔다. 절경이 아름다워서 놀랐던 것만은 아니다. 사진으로 봤었던 서석지의 암석들과 비슷한 빛깔과 질감이었다. 서석지의 독특한 돌들의 출처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서석은 상서로운 돌이라는 뜻이다. 정원을 만든 정영방은 예천 사람으로 서석지가 있는 영양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다. 말년에 이곳으로 와 정원을 만들게 된 것은 아마도 서석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지당은 일반적으로 비워두거나 섬을 만든다. 서석지는 섬 없이 여러 돌들로 채웠다. 지당을 만든 후 돌들을 채워 넣은 것인지, 바닥에 있던 돌들을 보고 주변을 둘러 지당을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짐작해 보면 지당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다가 나온 암반을 보고 이를 그대로 살려 정원을 완성했을 것이다. 혹은 본래 있던 암반을 살려 정원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빛을 머금은 듯한 암석은 표면의 질감이 독특하다. 결이 난 돌의 입자는 서로 떨어지면서 특정한 무늬를 만들었다. 사각, 삼각, 오각, 사다리꼴 등 다양한 형태로 떨어져 나간 무늬를 가진 돌 수십 개가 각자의 얼굴을 물 위로 내밀고 있다. 암석들 사이로 지당의 물이 채워져 서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입구의 절벽처럼 하나의 암반일 수도 있다. 들여다볼수록 자연스러웠던 돌들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줄눈이 난 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것과 돌들의 가장자리가 부드러운 곡선 혹은 날카로운 직선으로 다듬어져 있는 것이 누군가 인위적으로 손을 댄 흔적 같다. 암반 위에 쐐기 같은 연장을 들고 있는 장인이 돌마다의 개성을 조금 더 살려 다듬은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정영방은 상서로운 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떤 돌은 형태를 따라, 어떤 돌은 기능에 맞춰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바둑을 둘 수 있을 것 같이 넓적하게 네모 평평한 돌은 바둑 두는 돌이라는 이름의 기평석, 입수된 물이 튀어나온 벽면에 부딪혀 파장을 일으키는 곳에는 물결을 쳐다보는 돌이라는 뜻의 관란석 같은 이름을 갖게 된 돌들의 군락을 서석군이라 했다.


정영방은 10대 때 임진왜란을 겪으며 눈앞에서 가족이 죽는 것을 보았다. 그의 60대에는 병자호란이 발발했고 세상에 미련을 버린 듯 고향을 떠나 서석지를 만들었다. 두 개의 큰 전란이 관통한 삶의 힘겨움과 내향적인 성정이 만든 은둔자의 정원 서석지에는 두 개의 건축물이 있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공간이자 정원을 감상하기 좋은 경정敬亭과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는 ‘경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하나’라는 뜻으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이름을 미사여구 하나 없이 단순하게 지은 것은 서석군의 여러 이름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배경의 역할로 비워 둔 것이기도 하고,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하나의 단어에 집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뜻의 경敬은 성리학에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기본이다. 경정은 지당에 바짝 붙여서 지었다. 지당에 기둥을 들여놓고 물 위에 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하는데,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없게 바짝 붙여 짓는 것도 같은 효과를 준다. 반면 주일재는 지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지었다. 개인공간으로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주일재의 방문을 열면 지당은 보이지 않는 대신 돌출된 작은 대 위에 매화, 소나무, 국화, 대나무를 시었다.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에서도 볼 수 있는 매송국죽은 네 명의 지조 있는 친구를 상징한다. 정영방은 과거에 나간 적이 없을 뿐 훌륭한 학자였다. 그의 스승인 정경세는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정영방을 설득했다. 함께 중앙정치로 나와 활동하기를 바라는 스승의 마음과 달리 자신의 부족함으로 누가 될 것이 걱정된다며 사양했다. 그는 서석지에 물이 차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물이 빠졌을 때야 비로소 보이는 돌에 상경석이라 이름 지었다. 시경의 의금상경衣錦尙絅에서 가져온 말로 비단옷을 입을 수 있지만 오히려 겉에는 한 겹으로 된 홑 옷을 입는다는 뜻이다. 돌조차도 아름다움을 가지고도 나타내기를 꺼리는데, 어찌 사람이 실상에 힘쓰지 않고 명예만 얻으려 급급한가? 군자의 도는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되 날로 없어지는 것이라고 상경석이라 이름 짓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서석지의 한쪽 구석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해 주로 서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를 정원에 심었다. 서석지는 은둔처이며 제자를 가르치는 강학의 공간이자 학문에 정진하는 수행처였다. 경정의 시선은 담장 안에서 끝나지 않고 되돌아갔었던 절벽을 향했다. 1km 떨어진 절벽은 정자에 앉은 이의 시야에 담겼을 것이다. 시원한 기암절벽을 품는 정자를 지은 그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끝없이 학문에 정진하다가 적절한 때가 온다면 관직에 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고, 깨끗하면 갓끈을 씻는다는 뜻의 '탁영濯纓'을 서석군 중 하나에다 이름 붙이고 그는 기다렸다. 탁영은 세상이 어지러우면 돌아가 쉬고, 세상이 바로잡혔을 때 비로소 나아가 정치를 한다는 뜻이다. 아마 그의 시대에는 적절한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이상을 실현할 기회는 없었지만, 작은 정원에 큰 경관과 뜻을 품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세상을 지켜보았던 그의 삶이 담긴 정원, 서석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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