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에 처음 갔을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20대 중반, 가족 나들이로 처음 가본 후원은 가파른 경사로 시작했다. 경사가 평지로 바뀌는 순간 등장하던 단풍나무 터널이 주변을 갑자기 어둡게 하며 단번에 도심에서 자연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도심에 있던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풍성한 자연을 숨겨놓은 창덕궁에 마음을 뺏긴 건 단풍 터널부터였다.
꼭 방문해야 할 한국 정원을 물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망설임 없이 창덕궁과 후원이라고 하면 실망스러운 표정들이다. 들어보지 못한 정원의 신비로움을 기대했을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은 마치 수능 만점의 비결은 교과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나 보다. 다른 정원들은 공부를 충분히 하고 가서 애써 찾아야 느껴지는 매력들을 창덕궁에서는 수월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도 도보로 2~3시간 안에 훌륭한 정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코스는 없다. 이번에는 단풍터널처럼 기억에 남는 궁에서의 찰나의 순간을 말해보려 한다.
햇빛이 유난히 좋은 날 후원에 가게 될 때면 맘속으로 기대하는 장면이 있다. 물의 반사각이 수직으로 올라가 애련정 지붕 단청이 반짝이는 모습이다. 날씨와 때를 잘 맞춰야 경험할 수 있는 장면이라 수 없이 후원을 가본 나도 두어 번 봤을 뿐이다. 날씨가 좋은 날 뿐 아니라 비가 오는 날도 기대된다. 보통들 비를 걱정하지만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비는 감상 분위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주요 프로그램인 물이 풍부한 정원에서는 여기저기 콸콸 쏟아지고 흐르는 물줄기가 생동감을 주어 모처럼 매력을 발산할 기회를 얻어서 신난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진지하게 비 오는 정원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원래 많은 인원을 수용할 것을 예상하고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원의 길은 좁다. 한꺼번에 들고 나는 많은 인파는 정원을 온전히 감상하는데 방해된다. 그렇다고 100명의 인원보다 더 적은 인원을 수용하면 모두에게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 그래서 비 오는 후원만이 주는 인적이 드문 프라이빗한 느낌의 후원은 특별하다.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깨끗하고 따뜻한 날씨에 오는 것이 제일이다. 사람이 좀 많으면 어떠리 정원이 예쁜데. 비가 무지하게 내린 바로 다음 날, 깨끗해진 날씨에 감상하는 호사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리. 물도 풍부해서 생명력 넘치고, 나무와 풀도 싱그럽고, 정자까지 반짝이는 그런 날은 삼대의 덕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드물다. 당신의 후원에 행운이 깃들기를.
나의 평생소원은 연경당 같은 집을 짓고 그 속에 담겨보는 것이라는 최순우의 말을 떠올리며 안채 대청에 앉는다. 그 소원이 너무 멋져 그럴듯한 다른 소원을 떠올려보지만 이런저런 욕심이 생길 뿐이다. 시간마다 인파가 몰려드는 사이 고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담장 너머 물들어가는 가을 나무와 노을이 지려는 하늘을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한 순간 정도라도 연경당에 담겨보는 것이 남의 소원이지만 이룰 수 없는 내게 꽤나 위로가 된다. 후원 곳곳에 벤치들이 있어도 연경당 안채 대청만큼 좋은 곳은 없다. 웬만한 정자들은 대부분 들어갈 수도 앉을 수도 없지만 연경당 안채는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앉은 그대로 뒤를 돌아보고 포즈를 취하면 반대편에서 문틀을 프레임 삼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포토스폿이 된다. 담장과 행랑, 그리고 붉은 단풍이 프레임에 좋은 배경이다. 대부분이 야외인 후원에서 위요감과 안락함을 주는 곳은 연경당 안채가 유일하다. 후원의 다른 건축물에도 잠시 앉아 쉬어볼 수 있다면 감흥이 또 다를 텐데 아쉽다. 경사스러운 일을 연출한다는 뜻의 연경당은 원래 효명세자의 아버지, 순조를 위한 궁중행사장이었다. 공연장이었던 연경당이 지금의 민가의 형태로 바뀐 것은 고종 때였다. 경복궁 뒤편 깊숙한 곳에 민가 형태의 건청궁을 짓고 지냈던 고종은 창덕궁에도 비슷한 환경이 필요했다. 효명세자의 연경당을 고치면서 소현세자의 존덕지도 함께 파격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연경당 사랑채 옆 서고인 선향재 뒤로는 화계가 있다. 화계 한쪽 끝 농수정 옆으로 고개를 빼고 보면 문이 있는데, 존덕지의 승재정 뒤로 연결된다. 건청궁 앞 향원지를 즐겼듯 연경당 뒤 존덕지를 즐긴 고종의 취향으로 변모한 두 공간이다. 이런저런 장식은 모두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쪽에 있지만 연경당의 진면모는 안채 대청에서 느껴진다. 손님을 맞이하고 흐트러질 수 없는 사랑채와 달리, 아늑하고 편안하게 머물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안채이다. 그런 아늑함을 만들어주는 것은 건축의 훌륭함도 있지만 주변의 울창한 숲이 주는 분위기가 크다. 그래서 후원은 11월이 최고다.
창덕궁 연경당과 비교될 만한 또 다른 민가로 낙선재가 있다. 후원에 가지 않고도 전각 이외의 색다른 건축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후원은 가을이 좋지만, 낙선재는 봄과 더 잘 어울린다. 20대 헌종이 경빈김 씨와 데이트하려고 만든 곳이라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장식이 많은 낙선재의 별미는 화계다. 봄에 피는 아기자기한 예쁜 꽃이 좁은 공간을 알차게 채우고 매화나무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로맨틱해진다. 석복헌 뒷마당에서 수강재로 넘어가는 문에는 앞 뒤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선이 제한되어 발견하기 어렵고 고개를 빼고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나마 낙선재 후원을 개방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안내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휘리릭 지나가버려 오래 감상할 수 없다. 매화나무와 포도넝쿨 그림 두 점은 교태전과 자경전에서 볼 수 있는 담장 장식과 비교했을 때 급이 다르다. 흥선대원군이 복원한 경복궁은 헌종이 만든 낙선재보다 더 후대의 일이라 기술의 차이는 아닐 거고, 경빈 김 씨를 향한 헌종의 지극한 마음이 장인의 수준을 더 끌어올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담장 장식은 건축의 배경이자 때로는 오브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낙선재 오른편 담장은 두 가지 역할 모두를 훌륭히 수행한다. 조선 후기에 전돌 생산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것뿐 아니라 색감에도 신경 쓸 수 있게 된 듯하다. 둔탁한 검은색이 아닌 음영이 다양한 회색과 주황빛이 섞인 전돌로 육각형을 만들었다. 거북이 등껍질 같아 귀갑문양이라 불리지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눈에는 빛나는 보석 같다. 중간중간에 배치된 흰색과 주황빛의 전돌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듯이 보인다. 4줄의 육각형을 모아둔 기다란 직사각형의 프레임도 예쁘다. 담장 장식의 테두리를 담당하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뜻의 무시무종 문양은 보통 직각의 형태로 이어지는데 육각형의 장식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서 곡선으로 굴렸다. 모서리의 마무리도 눈에 띈다. 마치 자수를 둔 것 같기도 하고 매듭 같기도 한 귀퉁이는 아래쪽 사선을 짧게 해서 일부러 비율이 맞지 않게 했다. 만약 직각으로 사선을 만들었다면 균형은 맞더라도 뾰족한 느낌을 주고 안정감이 덜했을 것 같다.
전각 30분, 후원 2시간, 낙선재 20분이 투어 스케줄이다. 낙선재까지 모두 보고 다시 만났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시간 10분까지 보태면 총 3시간의 프로그램이 끝난다. 2만 보 가까이 걷는 극기훈련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맛있는 식당으로 인도하는 것 까지가 나의 임무다. 감사하게도 함께 식사하자는 요청을 항상 해주시는데 보통은 거부한다. 짧은 여행이지만 정들어버린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면서도 3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말하다 보면 입이 고장 나 버린다. 창덕궁이란 연극무대에서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활약한 배우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쭐해지기 십상이라서 차라리 피하는 편이 낫다. 그래봤자 가난한 무명 배우일 뿐인 분수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청산유수로 떠들던 사람이 갑자기 얼어붙어 삐그덕 대는 모습으로 좋았던 인상을 망치고 싶지도 않다. 오전에 투어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직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뿐인데 하루를 마친 기분이다. 기진맥진한 몸과 달리 도파민인지 뭔지 호르몬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정신은 흥분상태다. 어릴 적 꿈이 배우였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주변에 가끔씩 한다. 창덕궁 투어를 할 때면 극을 올리는 기분으로 감정이입을 하곤 했다. 이젠 10년이 넘어가는 베테랑 배우가 돼서 그런지 감정의 과몰입보다 힘을 뺀 연기를 펼치는 편이 되었다. 바람은 내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극이 올려지는 것이다. 한국 정원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창덕궁에서 '창덕궁 정원 투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도 계속 한국 정원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았으면 한다.
*고종의 연경당과 존덕지 변형 관련 논문: 정우진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