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출국 전날
5개의 미팅을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못다 싼 짐을 싸고 출발했다.
아이 둘과 나만 출발하는 여행, 남편은 2주 뒤에 합류한다.
다행히 이번 여행엔 친구가 함께 했다. 내 아이들과 유치원 같은 반, 초등학교 같은 반인 아이의 엄마.
첫 4일은 쉬겠다고 선언했었다.
방콕에 도착하고 2박을 한 뒤, 밴을 타고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하는 섬, 코사맷 Koh Samet이 목적지다.
첫째 아이를 낳고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유모차를 끌고 매일 산책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바람 불지 않는 낮엔 꽁꽁 싸매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여름이 오면 어쩌지? 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야 싸매면 되지만, 여름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한국에 있어야 하지? 나는 프리랜서인데 일을 들고 어디든 가서 할 수 있지 않나?
태국에 가면 싼 가격으로 체류하면서 매일 좋아하는 수영도 할 수 있고, 집안일도 안 해도 되고,
괜찮은데?
그때도 6개월 후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고 태국 한 달 여행을 계획해 놨었다.
이후 K-Garden 연구 보고서 작성 일에 합류하게 되고, 중간보고서 작성을 태국에서 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하게 전시 기획을 하게되었고, 여행은 계획대로 떠났다.
예전에 했던 고생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했지만, 이젠 아이들이 많이 컸다.
별 탈 없이 섬에 있는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바닷가 바로 앞의 방갈로였다. 작고 아담했지만 셋이 지내기에 충분히 좋았고,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유리문을 통해 보이는 바다 풍경만으로 좋았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숙소에 도착하고 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점심 먹기 전까지는 책 교정작업을 하고 밥 먹고 실컷 바닷가에서 논 뒤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아이들을 재우고 줌으로 미팅을 했다. 그렇게 3주 동안 하루에 한 팀씩.
6팀과 전시 담당 디자이너님과의 미팅까지 7번의 미팅을 하고 나면 한주가 지났다.
다행히 2시간의 시차가 있었는데도, 조경가들은 잠을 자지 않았다.
한국의 시간이 10시, 11시가 되어 시작되는 미팅이었는데, 오히려 작가들은 이를 반겼다.
짧게는 40분, 길게는 2시간 반씩 이어지는 미팅을 통해 작가들을 탐구했다.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하는 작가는 주제와 전시 방향성을 빠르게 설정했다.
평소 내면에 충분히 충실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어렵지 않게 방향성을 잡아갔다.
사업을 위해 자신 보다 클라이언트에게 집중하는 작가들은 뜬구름에서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얼마나 진정성 있고 훌륭한지 알고 있었기에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며 방향을 잡아갔다.
그중 한 작가와는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말을 무척 조심히 하시는 작가님이셨다. 나는 말을 조심히 하는 것과 반대이다. 나의 그런점이 때론 남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말을 조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그랬다. 무엇보다 나는 들어야 하는 입장. 피곤한 밤, 작가님은 말이 끝난 것인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한참을 기다리면 다시 말을 이어가곤 했다. 작가님이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하실 수 있도록 기다렸다.
유명한 분이셨다. 멋진 전시도 몇 차례 경험이 있으신. 주변에서 얻은 신뢰가 대단했다. 아주 오래전 잠깐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이 둘을 낳고 기르는 동안 스타가 되셨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이었다. 작가님은 오래 전의 그 만남을 잘 기억하지 못하셨다.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훨씬 진중해지셨다. 예전의 진지했던 말투와 반짝이던 눈빛이 기억에 남았었다.
생명을 주제로 하기로 했었다. 홍건익 가옥에 직접 가본 후, 별채 지붕의 물받이 시설이 눈에 띄었다며 그걸 '학각'이라고 하는데 자신도 근래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각각의 물이 배수로로 바로 사라지는데 이것을 잠시 모았다가 나가는 정원을 만들면 새가 와서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며, 올여름, 비 한번 오지 않고 뜨거웠던 도심에서 기절하는 새들을 보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다. 화계 앞에는 벌통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자연 생태의 일부로 정원을 디자인하는 관점이 좋았다.
일단 학각을 활용한 정원은 보기에 이해도 되고 예뻤다. 하지만 벌통은 디자인이 그려지지도 않았고, 동선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서 빼기로 했다. 새와 벌이라면 새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히려 가옥에 입장한 후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와서야 정원을 볼 수 있으니 앞쪽에 새를 주제로 한 정원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워낙 글을 잘 쓰시는 작가라는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 해서 이런 작업을 하시고, 영감을 얻는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전히 나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얼마 전 다녀오신 스위스 여행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주고받은 좋아하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더욱 궁금해졌었다. 이 사람의 작업세계가.
작업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지만, 신중하다고 느꼈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도 소중하게 발전시켰다. 다음 미팅 때 앞쪽에 솟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놀랬다. 사실 전통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솟대는 장승만큼이나 키치적이다. 솟대를 촌스럽지 않게 구현해 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겠다며 큰 고민 없이 전통 디자인 요소를 가져와 구현해 놓은 작업 중에 좋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솟대라니.. 좀 유치하지 않나. 하지만 솟대 구상도와 함께 설명을 들으니 부끄러워졌다. 솟대를 전통요소라는 관점으로 아예 접근하지도 않았다. 정말 솟대의 본연의 의미에 집중했다. 새가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전통의 재구성이다. 형태는 변형하되 의미는 이어나가는.
오픈 전날, 홍건익 가옥에서 본 솟대는 아름다웠다. 새롭게 해석된 솟대는 전시물로써 손색없이 아름다웠다. 가느다란 기둥 위에 나무로 조각된 새가 앉혀져 있었다. 알고 있던 솟대의 비율이나 형태와 전혀 달랐지만 솟대임은 틀림없었다. 학각 정원 역시 담담하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담긴 정원이었다.
대학원 수업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앉아 작가님의 글을 읽고 싶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전시다. 그전에 꼭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