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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월매 Sep 25. 2021

축의금 없는 결혼식을 했다

지난 5월, 화창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화환이나 축의금은 사양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와주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했고 200여명도 안되는 소규모 인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축하도 받으면서 그동안 우리 부부곁에 있어준 감사한 인연들에게 맛있는 식사 한끼 대접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래도 줄 사람들은 주더라. 정이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는 돈 내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나 무력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돌려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결혼한 친구들에게 내가 줬던 금액만큼씩 고스란히(또는 더 많이) 가방순이 친구를 통해 전달됐다. 청첩장에서부터 축의는 사양한다고 써놨는데도 굳이 돈을 뽑아서 봉투를 준비해와준 친구들의 마음이 미안하면서도 퍽 기꺼웠다.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금액이 있었다. 50만원. 누구에게는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일  있지만 친한 친구면 30만원 정도로 통일했던  주제에 비하면 너무나  금액이었다.


50만원의 주인공은 나보다 두 살 어린, 몇 년 전 인턴을 같이했던 친구 H였다. 벌써 결혼 6년차인 미모의 H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은행을 다니는 커리어우먼이다. 나는 그 액수를 보고 놀랍기도 하고 순간 무안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결혼때 뭘 했던가? 6년전,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회사 워크샵 일정 때문에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직 결혼식을 몇번 가본적도 없던 그 때, 개념이 없던 나는 나를 대신해서 그 자리에 돈을 보낼 방법은 생각도 않고 대신 선물로 무인양품에서 디퓨저 무드등과 아로마 오일을 골라 선물했다. 무드등은 7만원정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경우없는 축의금 때문에 의가 상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너그러운 그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그 디퓨저를 잘 쓰고 있다며 그 후에도 서너번이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들을 때마다 민망한 내 기분은 생각도 안하고 말이다.


그 후 나이가 들고 경우를 어느정도 알게 된 뒤로는 알게 모르게 미안함과 부채의식에 사로잡혔다. H가 아기를 가졌을때는 너무나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돈쭐을 내주겠다(?)는 마음이 뒤섞여 이런저런 꼬까옷과 과일을 사들고 그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지만 중요한 경사때 마음만큼 해주지 못했던 것이 늘 아쉬웠던 나. 내 결혼식때의 축의금 생략을 그가 순순히 받아들일 줄로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객도 적으니 가족들 데리고 와서 편안하게 한끼 하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이 날 하루만큼은 자유롭고 싶다며 홀몸으로 근사하게 나타났다. 애들 데리고 움직이는 일이 보통일은 아니겠지. 사진도 많이 찍고 일찍 와서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거금을 쾌척하고 그는 떠난 것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이대로 받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남편까지 붙잡고 몇주에 걸친 고민이 이어졌다. 새로 이사한 그들 부부 집에 조명을 선물로 할까? 가구를 사줄까? 하지만 집에 두는 큰 물건을 섣불리 사주는 건 위험하다. 취향에 안맞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교환이나 환불 자체도 번거로워 처치곤란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아이들 옷을 사줄까? 싶었지만 어딘지 뜬금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옷에 관한 한 크기부터 장르까지 너무나 문외한인 나에게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결국 백화점 상품권으로 다섯장을 준비했다. 4인가정을 꾸리고 있는 엄마에게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선물은 현금 다음으로 상품권이 최고라는 결론. 그가 자주 가는 백화점이 어디인지 머리를 굴리다가 똑같은 금액을 주면 너무 고대로 돌려주는것 같아 이 또한 실례 아닐까 아는 생각도 했다. 조금 더 은근한 방법은 없나? 싶었지만 조금 민망해도 정공법으로 가기로 했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 조금 일찍 도착해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제일 맛있다는 귤을 한박스 사서 곱게 포장을 했다. 그리고 이사를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미리 준비했던 선물인 헤이즐넛 커피와 상품권을 전달했다. 마치 현금다발을 숨긴 사과박스를 주는 마음으로 두근반 세근반 설렜다. 한사코 밥값까지 낸 그는 종이봉투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잘 모른 채 특유의 상냥함으로 아이들과 잘 먹겠다며 귤 박스를 차에 싣고 사라졌다.


역시 선물은 주는 마음도 기쁘구나. 집에 돌아간 그는 아이들과 귤을 나눠먹는 사진을 보내며 상품권을 또 고마워했다. 몇년 전 7만원짜리 선물에 고마워했듯이.


이 때 받은 50만원은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인상적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큰 금액이 아닐수도 있지만, 나를 그만큼 귀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감동스럽다. 축의금.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이상한 문화지만 사랑을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도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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