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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월매 Dec 07. 2020

"포크는 빼주실래요"

오늘자 뉴욕에서 플라스틱 아끼려던 이야기

뉴욕에 살면 플라스틱을 많이 쓴다. 워낙 인심이 좋아 패스트푸드점에는 원하는 만큼 집어가라고 쌓아둔 케첩과 마요네즈 옆에 일회용 식기도 같이 쌓여있는 미국이지만 특히 뉴욕같은 대도시에서는 그 정도가 더하다. 음식을 해먹기엔 바쁜 사람들, 요리를 하기엔 좁은 집, 편리하고 다양한 테이크아웃 옵션들 덕분에 쌀국수부터 부이야베스까지 일회용품 포장용기에 낙낙히 포장해 집에와서 먹을 수 있기 때문.


장담하건대 뉴욕 사람이라면 부엌에 배달 음식을 담았던 빈 플라스틱 용기가 적어도 두어개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녀석들은 식기세척기에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서 한국인 누구네 집에서는 어느정도 반찬통 역할을 해준 것도 사실) 그리고 여기에 딸려온 플라스틱 식기 묶음이 한 무더기 쌓여있을 것이다. 이것이 800만 뉴욕씨티 인구의 평범한 라이프스타일이라면?


나는 이게 못내 안타까웠다. 지구 반대편 동북아의 한 작은 나라에서는 분리수거하는 요일을 정하고 페트병에 라벨까지 떼는 수고를 마다않는 선진시민들이 좀더 살기좋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미국이란 거대 국가에서는 콜라 캔과 음식물 쓰레기를 한군데에 모아 버리고 쓰레기를 갈아서 싱크대의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시스템이 흔하게 널려있으니. 이런 에너지자원이 풍부하고 땅덩이도 넓어 화석 에너지고갈 및 매립지 걱정 없는 속편한 녀석들 같으니~


하루는 우리 개와 메디슨파크에 갔다가 도무지 저녁을 먹을 아이디어가 없어 '치폴레'를 테익아웃 하기로 결정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멕시칸 프렌차이즈인 치폴레는 닭 또는 소고기와 각종 채소, 또띠아 등을 담아 살사를 뿌려서 파는 음식점으로, 매우 많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 관광객들의 전통음식이다. 나는 맛깔나는 계절메뉴인 '까르네 아사다 스테이크' 보울 하나를 옥수수 많이, 사워크림 많이로 주문했다.


친절한 계산맨은 냅킨과 플라스틱 포크를 하나 넣어주며 더 필요하신 것은 없냐고 물어왔다. 나는 집에 쌓인 아직 쓰지도 않은/웬만해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만 같은 일회용품 포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아 포크는 필요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미스터 계는 아 그렇군요 하면서 친절하게, 이미 포장에 넣었던 포크를 빼서, 쓰레기통에 던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외쳤다.


: ... ...! 플라스틱 아끼려고 한건데!

계산맨: 오우... 쏘리.. 플라스틱 아끼려고 한거군요ㅜㅜㅋㅋㅋ




우리는 작은 탄식과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나의 의도를 이해한 만큼 나 역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노워리스.. 아이 가릿..(한번 만진 포크를 남에게 주기도 그렇겠구나)

계산맨: 예아.. 유노.. (코로나.. 알지)



나는 하릴없이 소중한 보울을 가슴에 품고 치폴레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 일화를 들은 남편의 괄시와 조롱을 뒤로한 채 다음에는 꼭 미리 말을 해야하지 결의를 다지며 5번가를 걸었다.


이렇게 나의 플라스틱 아끼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사실 치폴레에는 언제나 포크가 쌓여있고 이를 뭉텅이로 들고가 몇개는 쓰지도 않고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두개 아낀다고 뭐가 달라질까? 잔잔한 바다에 변화를 일으켜보려 조약돌을 던지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힘이 빠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포크는 필요없다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아마 자잘한 파도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모든 큰 변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뉴욕시는 최근 플라스틱 쇼핑백을 전면 폐지하고 유상 종이봉투 사용을 의무화했다. 종이봉투 하나에 5센트. 한국에 비하면 싼 편이지만 전에는 두겹씩 싸주던, 혹은 셀프 계산대에 무제한으로 쌓여있던 비닐이 사실은 공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사람들이 실감하기 시작했다. 장을 본 후 적지 않은 짐을 손에 바리바리 들고 걷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개인적인 감상은? 나도 무척이나 불편하다. 그리고 마음이 놓인다. 더이상 무지와 오만이 지구를 망치게 놔둘순 없지. 다시 말하지만, 모든 큰 변화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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