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월매 Aug 14. 2020

인스타그램 댓글의 정치학

내 댓글만 무시한거니

정황은 이렇다. 친구는 며칠전 있었던 자신의 생일의 포스팅 몇개를 인스타그램에 연달아 올렸다. 멋진걸? 서른 둘의 생일을 장난 아니게 제대로 즐겼는걸? 타지에서 친구도 없이 조용히 살고 있는 나와의 온도차에 조금은 부러움도 느끼며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고 내심 두근두근 반응을 기다린 것이다.


허나 몇시간 뒤 알게된 슬픈 사실이 있었으니, 그곳에 달린 댓글들 중 내 것만 쏙 빼고 전부 '좋아요'를 받았거나 인사 댓글이 달렸던 것. 깜빡 잊었거나 못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다른 게시물에 달았던 또 다른 내 댓글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걸 발견했고 이게 실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윤종신이 만든 이별노래의 주인공처럼 처량해졌다. 내 댓글만 무시한건가? 내게 유감이 있나? 댓글이 기분이 나빴나? 문장 하나에 갑자기 그렇게 상대가 싫어질 수 있는건가?


소심왕인 나는 내 댓글이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다시한번 그녀의 계정으로 들어가 덩그러니 악수를 청하려 내민 손처럼 남아있는 내 문장을 뜯어보았지만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급기야는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지만 너무나 찌질해 남들앞에서는 내놓고 말하기는 힘든 작업, <내 사진에 그녀가 좋아요를 누른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작업에 착수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사진에는 한번도 좋아요를 누른 적이 없는 것 같아. 이것 봐. 정말 나를 싫어했나? 그런데 왜 나를 언팔하거나 블락하지 않았을까? 관계를 끊을 만큼 싫은건 아니지만 은은하게 날 싫어하는 중인 건가?’


그러나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끔씩이나마 별스럽지않게 댓글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메시지로 안부도 묻고 서로를 응원하며 대화를 마친 게 고작 몇주전.


언어폭력을 당한 것도, 언팔로우나 차단을 당한것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랜선 싸다구는 이렇게 강렬하게 나를 때리고 지나갔다. 연예인 누가 연예인 아무개의 글에 좋아요를 눌렀네 언팔을 했네 하는 내용이 기사화되는 현실을 한심해하던 나의 과거를 깊이 반성한다. 인간관계의 절반을 소셜미디어로 이어가는 현대인들의 고도의 심리전이자 인간관계의 정치학이 인스타그램에 있다.


나이 서른줄에 SNS 댓글을 부여잡고 이렇게까지 정신과 시간을 할애, 의미부여를 해가며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에 누군가는 ‘ 일이 그렇게 없냐 묻겠지만 사실 그랬다. 나는  일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외국에서 비자발적 백수로 지내느라 인생이 급격히 단순해졌는데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더욱 정신적으로 고립된 나는 이렇듯 소심하고 피곤한 인간으로서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모자란 판단력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까먹었겠지 하고 쿨하게 넘어갈까?

내가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할까?

웃기는 기집애 하고 팔로우를 끊어버릴까?


나는 2번을 답으로 고려할 정도로 뻔뻔한 인간이 못되기 때문에 1번과 3번 중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고작 댓글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친구과의 관계를 재고하는건 모자란 뇌로 생각해도 너무 멍청한 짓. 역시 이런 일 쯤이야 쿨하게 넘겨버리는게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도리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썩 쿨하게는 아니라도 방향성은 비슷하게 가보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소심함으로 시작된 찝찝함도 며칠 후에는 겨우 사그라들었다.


마음이 진정되고 깨달은 점은, 내가 그녀에게 딱히 유감이 없다는 점과 그녀가 내 얼굴에 직접 싸닥션을 날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난 축하를 했고 거기에 아무 반응도 없었을 뿐인데 나 혼자 실망하고 숨은 의도가 있는건 아닌지 고심하며 북과 장구를 꺼내 든 것이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이 선명하게 보였다. 없던 일을 없던 일로 놔두고 내 마음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온갖 억측과 적의를 잊는 것.


이 일이 신경쓰였던 이유는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으면 영원히 안봐도 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SNS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는 일은 호감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 이렇게 사람들이 친구와 멀어지거나 인연을 끊은 일에 대해 구구절절 글로 써내는 건 그 대상에 대한 아쉬움이 티끌만큼은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말 싫어하거나 별 관심없는 사람과의 이별은 우리에게 별 의미있는 사건도 아니고 그 어떤 감흥을 주지도 않기에. 친구와 이별하는 심경,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을 꼭꼭 적어내는 것은 너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나에대한 위로일 지도 모른다.


며칠뒤 새로 올라온 그녀의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다 몇년 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핸드크림 샘플을 그녀가 자기네 회사에서 왕창 갖다준 일이 떠올랐다. 그때참 고마웠어. 지금도 좋은 추억들에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