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미술, 색으로 나를 안아주다

[그림 앞에서 비로소 멈출 수 있었던 시간]

by 강현주



대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을 계기로 헝가리로 음악학교 실습을 다녀오면서
그림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깊어진 것 같다.


헝가리에서 바르셀로나를 거쳐 베르사유 궁전까지 이어진 여행 속에서
궁전의 아름다운 전경과
복도와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감상하며
그 작품들이 나를 미술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건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고,
그 속에서 이국적인 ‘다름’이 무엇인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음악과 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음악과 미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어떻게 드러내는지가
주관적이면서도 세련된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시기의 나는
조금 흔들리고 불안해
마음의 안정감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이나 책 말고도
또 다른 위안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
가만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나는 그저 한 명의 감상자로서
조용히 집중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작품들도 자연스럽게 이어서 감상하게 되고,
어렵고 힘들었던 마음은 잠시 잊은 채
그림 속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가만히 돌아보면
아마도 나는 ‘색깔’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여러 색채가
각자의 본색을 드러내며 섞여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마주하며
‘미술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이 작가라면 이런 마음으로 그렸을 것 같고,
저 작가라면 이런 생각 속에서
작품을 완성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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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예술의 향기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며
미술관과 전시회를 찾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던 어느 날,
미술은 내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너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음악가였고,
그림은 그저 감상하는 대상이라 여겼는데
어찌 내가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나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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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동생의 결혼식으로 오랜만에 한국에 머물며
‘이제 와서 그림을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배웠던 그림을
지금의 나이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연필과 붓을 들면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했고,
그림이 나에게 또 다른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화방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곳에서
오래된 동창을 만나게 되었고,
어릴 적 함께 웃고 떠들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콧바람을 쐬러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우리만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화방 선생님은
인자하고 해맑은 분이셨고,
그 덕분에 우리도
여유롭고 차분한 그림 그리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연필로, 붓으로
다양한 표현을 하나씩 배우며
나는 어느새
그림의 수행자이자
내 그림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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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멋을 내고 싶은 예술가도 있을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듯 숨 쉬는 명상적인 예술가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조건 없이
그저 나 자신을
한 작품 속에 담아낼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법이다.


겉으로 보기엔 딴짓처럼 보여도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나다워질 수 있다면’
그 시간 또한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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