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선율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by 김현영

[11] 그리움의 선율 -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소년은 꿈을 꿉니다.

“내가 아버지를 꼭 찾아서

아버지에게 연주를 해 드려야지.”

미국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

소년은 비올라 악기를 놓지 않습니다.

그의 비올라 소리는 어린 소년이 연주하는 음색 같지 않았습니다.

깊고 따뜻하고 구슬프고 그러면서도 위로를 주는 음색이었지요.


어머니는 한국에서 지적 장애인으로 소년을 임신했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도 장애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은 미국인 외조부모에게서 컸지요.

외조부모는 소년이 아버지를 찾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미국 땅에서

소년은 ‘다름’을 인정하며 비올리스트로 커갑니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로 아팠던 아이들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음악을 가르치고 싶어요.”

소년은 어머니의 땅 한국을 찾아와서

세종문화회관에서 객석을 꽉 메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탐정까지 고용을 했지요.

조금만 더 있으면 아버지를 만나겠지?

소년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15살 때 오토바이 사고로 장애인이 되셨다는 아버지.

소년은 어떤 모습으로 봐도 살아만 있어준다면 좋을 아버지였습니다.


“조사해본 결과 2004년에 용재 오닐의 친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막 유명해져서 그리고 이제 막 음악이 깊어져서

정말 멋진 연주를 아버지의 고국에서 들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소년에게 들려온 소식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소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 씨의 재산은 무엇입니까?”

“저의 재산은 사랑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며 오늘도 비올라 선율을

끌어안고 위로를 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제

음악인을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해 펼쳐 보이겠다고 다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아 걱정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