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끝에 I do

그날, 마음을 안아준 멜로디

by 기록하는여자

2011년 가을이었다.
햇살은 짧아지고, 그림자는 길어지던 계절.
해가 일찍 지면 마음도 덩달아 저물었다.
그날도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길 위에 홀로 앉은 듯한 차 안, 라디오에서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멜로디였다.
더 원의 I Do.


처음인데, 낯설지 않았다.
가사는 꼭 누가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다가 적어낸 것 같았다.
참고 있던 무언가가, 그 한 구절에 무너졌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아니,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은 길을 뚫고 흘러내렸다.
운전대 위로, 따뜻하게 흐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계절이 하나 지나기 전에도 자연스레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왜 그렇게도 어려웠는지 알 수 없었다.

매달 희망과 실망 사이를 오갔다.
테스트기 위의 한 줄이 내게 말하곤 했다.
"이번에도 아니야."

무너지고, 또다시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음 달엔 와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대는 점점 두려움이 되었다.

'이번에도 아니겠지..'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꺼내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혹시 벌써 폐경이 온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자기 비하와 자책, 불안은 순식간에 마음을 갉아먹었다.

엄마도, 여자도 아닌,
기능을 잃은 인간처럼 느껴지던 날들.

그렇게 마음이 바닥을 칠 즈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니었다면, 남편은 벌써 아이 아빠가 되었겠지..'
그 생각에 죄책감이 덧붙었다.

'이혼을 해줘야 하나..'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지만,
그때는 그럴 만큼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느 날,
그 노래가, I Do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 멜로디가 내 마음에 닿았다.
위로란, 꼭 말로 전하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노래 한 곡이 그렇게 사람을 품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
어둠 속, 좁은 차 안에서
나는 그 노래를 무한 반복하며 울었다.
조용히, 오래도록.
내 울음소리보다 멜로디가 더 크게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두 줄을 보았다.
기적 같던 순간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동시에 가장 두려웠던 그 두 줄.

지금 생각하면
임신 초기의 호르몬 변화가 감정을 롤러코스터처럼 흔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어떤 과학적 설명도 필요 없는 깊은 슬픔 속에 있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며칠 전, 우연히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더 원의 I Do.

멈춰 있던 기억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날,
주차장 차 안에서 울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났다.

잊고 있었다.
그때의 공기,
어둠,
멜로디,
그리고 내 울음의 온도까지.

그 노래는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래는 여전히 내게 따뜻했다.

고맙다. 그날, 내 마음을 안아줘서.
말 한마디 없었지만,
어떤 위로보다 단단하게 나를 품어줘서.
그 어두운 차 안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게 버티게 해 줘서.

이제는 안다.

수많은 기다림과 무너짐 끝에도
인생은 결국,
'I do'라고 대답해 주는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날,
가장 조용하게,
가장 깊은 곳으로 찾아온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