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일의 따뜻함에 대하여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활동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음만으로는 몇 번이나 다녀왔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발을 옮긴 적은 없었다.
그 마음의 끝에는 늘 같은 걱정이 있었다.
혹시,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지게 되면 어쩌지.
그 아이가 나에게로 와 함께하다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난다면.
그 상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접어둔 마음이었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겼다.
애써 외면한 선택이 어쩌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무엇일까.
나의 마음도 지키면서, 누군가의 마음도 살짝 안아주는 그런 일.
천천히 기억을 더듬다, 오래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책 읽어주는 할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다운 목소리의 할머니가 오셔서 동화책을 읽어주시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천천한 눈동자, 주름진 입꼬리, 아이들보다 먼저 웃는 그 웃음.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듣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따뜻했다.
요즘, 멘탈코칭 수업을 듣고 있어서일까.
그 반대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젊은이'가 된다면 어떨까.
노인대학이나 요양원에 가서,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진심으로, 끝까지 들어드리는 일.
꼭 코칭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듣는 것.
말과 표정과 숨결로, 누군가의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 안에 살아간다.
그 이야기를 들을 귀가 있을 때, 존재는 비로소 따뜻해진다.
노년의 시간에는 외로움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다면.
잠시라도 곁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분들의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나는 수다도 제법 괜찮게 하는 편이고,
말 끝에 묻어 있는 숨결까지 듣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살아온 날들, 그 안의 기쁨과 아픔,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까지.
그 모든 것을 담아 듣는 귀 하나.
그 작은 귀 하나가 외로움의 바닥에 조용히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언젠가, 용기 내어
조용히 손을 내밀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듣는다는 건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