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에게
명절이 다가오면,
우린 외할머니가 계신 외갓집으로 향하곤 했다.
우리 집이 큰집이었기에,
항상 친척들을 마저 보내고 나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서는 날이 많았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벗 삼아,
우린 그렇게 외갓집을 향해 달렸다.
엄마와 아빠는 늘,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서너 통씩 들고 외갓집을 찾았다.
그 시절,
그 아이스크림은 참 크고 하얗게만 보였다.
하얀 통을 열어
앞을 못 보시는 외할머니 손에 밥숟가락을 쥐어 드리고, 아이스크림을 내밀면
외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크게 한입 드셨다.
"맛있구나."
입가에 하얀 아이스크림을 묻힌 채,
웃으시던 그 얼굴.
그 순간이 내게는
어릴 적 명절날 외갓집과 외할머니를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달콤한 시간은
외할머니에겐 한 줌의 평온이었고,
엄마에겐 어쩌면 숨고 싶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이 반쯤 비어갈 무렵이면
언제나처럼
엄마와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 그땐 왜 그랬어."
"나는 그때 정말 많이 속상했어."
섭섭함으로 눅눅해진 지난날의 감정들이
빙글빙글 되감기듯 흘러나왔다.
한번 틀어진 기억은
결국 다시 화살처럼 서로를 겨누곤 했다.
나는 오빠와 거실에서 조용히 놀고 있었고,
그 감정의 파고를
무력하게 지나쳐야만 했다.
그러다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
"옷 입어, 가자."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말없이 외투를 챙기고
신발을 신으며 외갓집을 나섰다.
차 안은 적막했다.
그리고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다신 안 와."
그 말은 이상하게도
다음 명절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 입가에서 다시 녹아내렸다.
그리고 또다시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외갓집 문을 열었다.
그 모든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다짐했다.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친정에 가게 되더라도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우리 아이 앞에서는,
그런 모습 절대 보이지 말아야지.
그게 철없던 내가 품었던 다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엄마, 외할머니 뵈러 갈 때마다 싸우고 돌아왔잖아.
나도 어린 시절 배운 대로 그렇게 해야겠어~
나도 그런다~"
엄마는 웃으며 받아주신다.
"그땐 말이야,
말 안 해도 서운하던 시절이 있었어."
"그래라, 그래~"
지금 와서야 조금 알겠다.
그날의 다툼은
마음속 깊은 사랑의 흔적이었다는 걸.
엄마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감정이었다는 걸.
어쩌면 엄마도,
말보다 더 큰 말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위로가
그 시절에는 자주 엇나갔던 거겠지.
나는 아직도 그 투게더 아이스크림 통을 떠올린다.
밥숟가락을 깊이 담아 떠낸 그 조각 위에
겹쳐 있던 엄마의 눈물과
말하지 못한 외할머니의 마음도 함께.
이제는 안다.
사랑은 종종
투정이라는 모양을 하고,
그리움은 때로
다툼이라는 이름을 쓴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다시 다짐해 본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 더 따뜻한 말로 꺼내야지.
조금 더 부드러운 눈빛으로 건네야지.
사랑이라는 마음이
서운함보다 먼저 입을 열 수 있기를 바라며.
내 안의 어린 나에게도
다시 한번 말해준다.
투게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사랑을 퍼올릴 수 있는 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