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도록 숨 쉬는 기록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기록이 되고 싶다

by 기록하는여자

한 달에 한 번, 엄마와의 작은 데이트가 있다.

오늘은 엄마와 샤부샤부를 먹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나를 보며 엄마가 웃었다.


"주차칸 안에만 잘 들어가면 됐지, 뭘 그렇게 앞뒤로, 옆줄까지 칼같이 맞추니. 꼭, 지 아빠 닮았네."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아빠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아."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그 말이 실마리가 되어 아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열렸다.


점심을 마치고 집으로 건너가 커피를 마셨다. 커피 향이 잔잔히 퍼지는 사이, 엄마는 문득 오래전 아빠가 운영하던 '우리 가족 만세' 카페를 떠올렸다. 가족과 친척들의 생일과 기념일,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던, 말 그대로 기록의 집이었다.


엄마는 그 안에서, 자신이 유방암 수술을 받던 날 아빠가 남겨둔 글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날의 기록을 이미 옮겨 두고 있었다. 날짜와 시간, 수술을 마친 엄마가 회복실로 옮겨지는 영상, 그리고 엄마가 깨어나자마자 남긴 첫마디.

"사랑하는 ○○이가 보고 싶다."


마취가 덜 풀린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또렷했다.


그날은 내가 아이를 낳기 닷새 전이었다. 불과 열흘 전, 엄마는 갑작스러운 건강검진 결과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날짜는 미룰 수 없었고, 내가 출산하는 순간 친정 식구들은 모두 엄마의 병원에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남았었다.


그러나 아빠의 기록 속에서 그날의 엄마를 다시 마주하고 나니, 서운함은 온전히 사라졌다. 남은 건 오히려 미안함과 사랑뿐이었다. 아픈 몸으로도 나를 먼저 찾았던 엄마. 그 마음을 기록이 다시 꺼내 보여주었다.


아빠는 모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던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빠가 곁에 없어도, 여전히 아빠를 만난다.

기록 속에서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의 표정을 떠올리고, 아빠가 남긴 사랑을 확인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사랑은 기록 속에서 더 오래 숨 쉰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아빠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내 기록 속에서 따뜻한 추억을 만날 수 있기를.


오늘도 그 다짐을 마음 깊이 새겨 둔다.


아빠, 고맙습니다.

기록으로 사랑을 가르쳐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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