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 신청, 글로 쓰는 효도

엄마의 설렘을 대신 신청합니다

by 기록하는여자

작년 여름이었다.
6월의 햇살만큼이나 뜨거웠던 어느 날,
엄마는 <미스터트롯 2> 콘서트를 다녀오셨다.

티켓은 내가 예매해 드렸다.
친구분과 함께 공연장을 찾으신 엄마는
무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부풀어 계셨다.

"가슴이 뻥 뚫리더라,
노래 정말 잘하더라..."

다녀오신 날 밤,
엄마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셨다.

그날 이후,
엄마는 <미스터트롯 2> 우승자 안성훈 가수의 팬이 되셨다.
그저 TV로만 응원하시던 분이
팬카페에 가입하고,
콘서트 일정을 검색하고,
팬미팅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기대로 채워가셨다.

조용하던 일상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혼자 사신다.
그 조용한 집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으로 하루를 채우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신다.

그리고 언젠가
나직이 말씀하셨다.

"나도... 방송국 한 번 가보고 싶다."

그 말이
어쩐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나는 곧바로
KBS <불후의 명곡> 방청 신청을 대신해 드렸다.
그날은 11월 26일.
당첨 여부는 금요일 오후 2시 이후,
프로그램 작가가 직접 전화를 통해 알려준다고 했다.

엄마는 그날 하루 종일
혹시나 전화를 놓칠까 봐
집 안 어디에도 가지 않으셨다 한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쯤,
전화가 울렸다.
엄마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내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00아, 방송국에서 연락 왔어! 당첨됐대!"

목소리에 들뜬 기운이 가득했다.

"아이고, 우리 엄마 쓰러지기 전에 전화가 왔네~"
엄마는 농담처럼 웃으셨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긴장과 설렘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12월 2일,
엄마는 생애 첫 방청을 다녀오셨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길을 물어가며 방송국까지 가셨고,
손엔 작은 가방과
마음속엔 큰 기대가 있었다.

무대가 펼쳐지는 동안
엄마는 손을 흔들었고,
노래에 따라 박수를 치셨다.
그날 밤,
엄마는 전화로 말했다.
"정말... 너무 좋았어.
우리 딸 아니었으면
내가 그런 데를 어떻게 가보겠니."

그 말 한마디에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며칠 뒤엔
<미스쓰리랑> 방청 신청도 했다.
신기하게도 또 당첨이었다.

엄마는 다시 혼자 방송국에 가셨고,
기쁜 얼굴로 전화를 걸어
현장 분위기와 무대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셨다.

엄마는 여전히 혼자 계시지만
이 기쁨만큼은
혼자 누리지 않으시려는 듯했다.

그 전화 통화 한 통으로
우리는 함께 무대를 본 것처럼
같은 장면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방청 신청을 한다.

신청서의 사연을 쓸 때면
엄마가 얼마나 즐겁게 방송을 보시는지,
무대 위 가수가 얼마나 삶의 활력이 되어주는지
짧고 진심 어린 문장으로 적는다.

진심을 담되,
길지 않게.
희망을 담되,
가볍지 않게.

글을 쓰는 일이
엄마의 설렘을 위한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글 한 줄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것이 엄마의 얼굴을 웃게 만든다는 확신을
이 경험을 통해 배웠다.

효도는
어쩌면 이렇게 조용히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좋아함을
기꺼이 응원하는 일.
그 마음을 대신 적어보는 일.

그리고 그 마음에
누군가의 따뜻한 '당첨'이라는 응답이 돌아올 때,
그 기쁨은 고스란히
나의 기쁨이 되었다.


오늘도 신청서를 쓴다.
엄마의 설렘이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전화기 너머의 웃음이
계속 들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여전히
글로 효도를 연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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