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건넬 수 있을까

by 기록하는여자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정들이 참 많을 것이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골짜기,
말하고 싶지만 끝내 말하지 못한 사연이
누군가의 하루를 뒤흔들고 있을지 모른다고.

사람의 마음은 늘 조용히 움직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에서는 파도가 치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러니 어떤 장면 앞에서
한 걸음 물러 서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에 작은 온기가 더해지는 것 아닐까.

얼마 전, 지인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당근 마켓 중고 거래를 약속한 다음날,
지인은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 앞에
미리 준비된 마음이란 없었다.
그는 새벽에 병원으로 가고,
3일 동안 정신없이 장례를 치렀다.

그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음.
"거래 가능하신가요?"
"언제 오실 수 있으세요?"

장례식장 한편에서
지인은 짧게 답했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생겼어요."

설명할 마음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시간.
그 말조차 할 수 없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 흐릿해지던 순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구매자였다면
황당하고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무책임해?"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나는
두 사람이 모두 이해되었다.
사람은 모른다.
오늘, 누군가의 삶에 어떤 무게가 실려 있는지.
어떤 아픔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리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었다.
혹시... '그럴 수도 있겠다.'
먼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보고 듣는 그 순간의 행동마다
모든 사연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걸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 역시 그런 순간을 겪은 적이 있었다.
아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던 날.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던 순간,
누군가 일행을 위해 문을 붙잡고 있었다.

숨이 가쁘게 차오르던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무게에 눌린 채
큰소리로 외쳤다.
"제발, 빨리요! 아빠가 돌아가신다고요."

그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맴돌던 정적.
숨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공기.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순간은 흐려지지 않는다.

지금 돌아보면 그들도 이유가 있었겠지 싶다.
나는 급했고,
그는 기다려야 할 누군가가 있었겠지.
우리 모두,
각자의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을 뿐이다.

살다 보면 마음이 먼저 달려가 버릴 때가 많다.
오해하고, 서둘러 판단하고,
상대의 상황보다 내 감정을 먼저 앞세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 완전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가 보지 못한 시간을 건너고 있으니까.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도 마음 한편에 새기고 싶다.
'그럴 수도 있겠다.'

모든 사정을 알 수 없기에
더 조심히, 더 부드럽게, 더 따뜻하게.
나는 오늘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세상에게서,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를 이해해 준 세상에게
조용히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