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과 떠난 부산
방학이 시작되었다.
53일이라는 숫자가 달력 위에 얹히는 순간,
아이의 하루도, 나의 하루도
조금은 느슨해지고, 조금은 깊어졌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딸은
이 시간을 가볍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 보고 싶다고.
그 말은 지난가을부터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나는 매번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기 전날 밤이었다.
방에서 공부하던 아이가 갑자기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내 앞에 서더니
한 박자 숨을 고르고 말했다.
"엄마, 나 내년 한 해 진.짜.로 열심히 공부할 거야."
진짜라는 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이 스스로도 그 말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이 남기고 간 공기만 거실에 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딸을 낳았을까..'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고맙다는 마음이 뒤따랐다.
나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렇게 방학의 첫 주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짧은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남편과 단둘이 왔던 도시.
딸에게는 태어나 처음인 부산이었다.
숙소는 해운대 바로 앞에 있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지는 곳.
부산은 생각보다 입체적인 도시였다.
경사가 높은 곳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
그리고 그 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은 아파트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붙들었다.
사춘기인지, 중2병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나이.
이 나이에 부모와 함께 여행을 와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아이의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존중하자.
여행을 앞두고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절대 화내지 말자.
괜히 서운해하지도 말자.
첫날은 다행히도 조용히 흘러갔다.
마더 테레사에 빙의한 것처럼
나는 화도 내지 않았고,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속으로 나 자신을
조금은 대견해했다.
첫 코스는 아이의 선택이었다.
영도의 흰여울문화마을.
주차를 하고 언덕을 오르자
바다가 한 번에 펼쳐졌다.
빛이 물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윤슬이었다.
그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예뻐서,
잠시 말이 멈췄다.
해안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바다는 계속 빛났다.
카페에 앉아도,
길 위를 걸어도
윤슬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원래 윤슬을 좋아한다.
평소 휴대폰 갤러리에 사진을 저장해 두고
가끔 들여다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분간은
폰 속 사진을 거의 열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은 숙소 근처의 작은 라멘집이었다.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곳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항상 줄이 긴 곳이었다고 했다.
여행에서는 이런 우연이
괜히 오래 남는다.
편의점을 털고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방식으로 쉬었다.
아이도, 남편도, 나도
말이 많지 않은 조용하고 편한 밤이었다.
부산에서의 첫날은
윤슬처럼 조용하고 반짝이게 흘러갔다.
이 여행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오래 남기를 바랐다.
둘째 날 아침,
아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전날 밤늦게까지
휴대폰을 보다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아이를 숙소에 두고
둘만 밖으로 나왔다.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아이 없이 둘이서만 먹는 아침.
처음 겪는 장면이었다.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뜻일 텐데
그 사실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다.
이렇게 한 발짝씩
부모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어쩌면 성장이라는 걸까.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아침을 따로 챙겼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리듬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간이 있었다.
스카이캡슐을 타고
바다 위를 천천히 이동했다.
출발과 동시에 세 식구는 사진을 찍어댔다.
사춘기 아이의 마음에 든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청사포에서 내려
또 한 번 바다를 바라봤다.
한동안 바다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포만감이 들었다.
밤에는 해운대 모래 위를 걸었다.
아이와 파도를 피해 뛰었다.
웃음이 났고,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말했다.
어쩌면 조금은
서툰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부산여행일 수도 있겠다."
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이유를 묻는 눈이었다.
나는 커가는 아이를 떠올리며
시원섭섭한 마음을 꺼냈다.
아이의 대답은
예상보다 밝았다.
그리고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웃다가 울었다.
그 밤은
아마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부산을 떠나
대전 성심당에 들렀다.
아이의 바람 하나를 위해
긴 줄 앞에 섰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몇 번인가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아이와 함께라면
나는 아직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바다로 시작해
대전의 빵으로 끝난 여행.
돌아보니
이 여행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다.
장소보다 기억이 남았고,
일정보다 순간이 남았다.
사춘기 딸과의 시간은
조금 느리고,
조금 고되었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기꺼이 또 줄을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아이의 시간 곁에서.
윤슬처럼,
조용히 남을 시간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