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사랑받았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늦었지만 전하고 싶었던 한마디

by 기록하는여자

우리 엄마와 외삼촌은 열일곱 살 차이가 났다.
엄마가 세 살이던 해, 스무 살의 외삼촌은 장가를 가셨고 그때 엄마에게는 새언니가 생겼다.
엄마에게는 언니이자 엄마 같았고, 나에게는 외숙모라 불리던 사람이다.


엄마는 자라면서 외숙모가 낳은 조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던 아이들, 같은 도시락을 들고 같은 반찬을 먹으며 컸던 시간.
그래서 엄마에게 '친정의 맛'은 외할머니의 음식보다 외숙모가 해주던 반찬의 기억이었다.


가끔 엄마는 말했다.
문득 생각나고, 이유 없이 먹고 싶어지는 음식은 외숙모의 손맛이라고.


나는 그보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났다.
외사촌 언니들과 오빠는 내게 이모 같고 삼촌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외숙모는, 나를 손녀처럼 예뻐해 주던 분이었다.


명절이나 방학이면 외갓집 부엌에는 늘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외숙모는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갔고, 목욕탕에도 데려갔다.
흰머리를 족집게로 뽑아드리면 한 올에 백 원이라며 웃으셨다.
그 시절 용돈은 언제나 과분했고, 외숙모의 손은 늘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분명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그 사랑은 설명하지 않아도 몸에 남아 있었다.


오늘, 아흔 살이 된 외숙모가 계신 요양원에 다녀왔다.
한 달 전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부터 마음이 계속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여명이 길지 않다는 말이, 자꾸 발걸음을 재촉했다.


요양원 면회는 처음이었다.
주말 아침, 엄마와 병원 앞에서 만나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외숙모는 종일 누워 계신다고 했다.
식사도 힘들고, 사람도 가끔 알아보지 못하신다고 했다.


선잠을 자다 깨어난 외숙모는 엄마를 보자 말했다.
"00이, 내가 00이 사랑했었어. 많이 사랑했었어."


그 한마디에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언니, 얘 알아보겠어? 얘 누구야?"


외숙모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알아봤다.
그 순간, 가슴 어딘가가 무너져 내렸다.


곧 헷갈리신 듯, 오빠밖에 없는 외숙모는 나를 자신의 여동생이라 했다.
아흔의 나이, 쇠해진 기력과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외숙모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은 수도꼭지처럼 쏟아졌다.
이럴 때는 왜 꼭 마음이 말을 안 듣는지.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날을 위해, 이 순간을 위해
가슴속에 오래 접어두었던 말이었다.


"외숙모, 저 00이에요.
어릴 때 외숙모가 저 너무 예뻐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 다 기억나요.
외숙모가 저 사랑해 주신 거요.
저도 외숙모 사랑해요."


말은 떨렸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인사 같아서,
아니, 어쩌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외숙모는 물었다.
"왜 울어?"


나는 괜히 점심시간이 다 돼서 그렇다며 둘러댔다.
이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요양원을 나와 차에 오르자
어린 시절 외갓집의 풍경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흘러갔다.


어느새 내 나이는
만남보다 이별이 더 잦아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떠나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이제는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럴 때면
나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화내는 일에,
미워하는 감정에,
괜히 쏟아버린 에너지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조금 더 가볍게 살자고.
욕심을 내려놓고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말자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하루를 살자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이별 앞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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