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 디카를 기억해 준 아이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기억

by 기록하는여자

겨울방학, 아이와 먹는 늦은 아침이었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태블릿으로 '풍향고'를 틀어두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아이는 후식으로 귤을 까먹고 있었고,
나는 별생각 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럽 여행 중 사진을 찍는 장면이 흘러가던 순간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예전에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외할아버지에게 디카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며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우리 외할아버지랑 제주도 여행 갔었을 때
할아버지가 나한테 카메라로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잖아.
그때 생각나네. 그 카메라가 무슨 카메라야? 엄마?"


"아.. 그거? 디지털카메라, 디카."


"그럼, 그 디카 지금 어딨 어?"


"아, 그거.. 외할아버지 유품 정리하면서 버린.. 것 같은데.. 왜..?"


"아.. 그 디카 나 줬으면 내가 쓸까 했는데.."


아이의 그 말에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찡해졌다.


눈물이 올라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다 먹은 식탁 위 그릇들을 괜히 정리했다.
콧물까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과 콧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아이는 여전히 '풍향고'를 보며 귤을 까고 있었다.
그러다 내 얼굴을 슬며시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엄마, 울어?"


"응.. 네가 외할아버지 얘기하는 바람에.."


그 대답은 사실 반쯤만 맞았다.
단순히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서 운 것은 아니었다.


후두암 수술로 목소리를 잃으셨던 아빠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아이는 그런 할아버지와 누구보다 많이 눈을 맞췄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할아버지의 표정과 손짓을 끝까지 따라주었다.


그 모습이 늘 고마웠다.
그리고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
왠지 모를 감정이 일었다.

아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장면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 보였다.


앞이 보이지 않으셨던 나의 외할머니와
그 곁에 서 있던 어린 나였다.


"00아~ 00아~ 보리과자 먹어~ 보리과자.."


그 목소리를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과 달리 마음은 늘 솔직하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는
부담스럽고, 싫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 감정을 그때의 어린 나는 숨기지도 못했고,
지금의 나는 부정하지도 못한다.

그래서일까.
목소리를 잃은 외할아버지에게
가족 누구보다 눈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던 내 아이를 볼 때면
어린 시절의 내 부끄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늘 함께 밀려왔다.

그 감정이 지나가면
뒤이어 또 다른 마음이 찾아왔다.


후두암에 걸려 목소리를 잃은 아빠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내가 겪은 어린 시절과 비슷한 상황을 손녀에게도 물려준
아빠에 대한 원망.


그런 마음을 품었던 나는
참 못되고, 못난 딸이었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미안함이 먼저 왔고,
아빠를 떠올리면 원망과 미안함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바닥에는
늘 같은 이름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죄책감.

살아오면서 외할머니에게 느꼈던 미안함,
아빠에게 품었던 원망과 미안함,
나와 다르게 아픈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이를 보며
느꼈던 고마움과 부끄러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감정이 결국
하나의 마음으로 모여 있었다.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그래도,
아이가 기억해 준 이야기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그 감정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기억해 준다는 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이어주는
가장 조용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날의 나는 생각했다.


늦은 아침,
귤 냄새가 남아 있던 식탁에서
나는 울었고,
조금은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외할머니에게,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건너온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