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괜찮다, 너도 나도.

아이를 세상으로 보내는 연습

by 기록하는여자

중학생 아이의 겨울방학이다.
돌아서면 밥이었다.
돌밥.
돌밥.
매일 고만고만한 메뉴를 돌리고 또 돌렸다.


그런데 방학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었다.
밥은 이렇게 성실하게 돌아오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느린지 싶었다.


그 와중에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어른 한 명 없이
친구들과 롯데월드에 가는 날이었다.


용용이를 포함해 네 명.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고,
지금은 같은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생일을 함께했고,
두 번의 파자마 파티를 함께했고,
웃고 울던 시간을 나란히 건너온
사총사였다.


어른 없이 롯데월드에 가는 건
이 아이들에게도,
부모인 나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나눈 그날부터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동선을 나누고,
시간표를 맞추며
매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떨렸다.


이런 날이 정말 오는구나 싶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놀이터에서 꽃잎과 풀잎을 따
돌멩이로 찧어 반찬을 만들어
엄마에게 내밀던 아이였다.
"엄마, 드세요~"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던 때였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롯데월드로 간다니.


놀이터 죽순이 같던 꼬맹이가
정말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나 없이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나 없이 네가 롯데월드라니.
이런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오다니.


이른 아침,
설렘을 온몸에 안고
집을 나서는 너를 보았다.
문을 닫는 소리가
조금 길게 남았다.


마치 네가
집을 나선 게 아니라
세상으로 한 발짝
나아간 것 같았다.
새로운 챕터가
조용히 시작되는 순간 같았다.


기쁘면서도
조금 서운했고,
자랑스러우면서도
괜히 미안했다.


그동안 너무 붙잡고 있었나 싶었고,
그런데도 더 안아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건 놓는 게 아니라
믿는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잘 다녀와, 딸아.
재미있게 놀고,
조심히 다니고,
다녀와서
엄마에게 재잘거리며 이야기해 줘.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릴게.
너의 오늘을
응원하는 자리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붙잡는 일이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 되어간다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손을 놓는 연습을 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아이 곁에 머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치지 않기를,
조금은 덜 서툴기를
끝없이 바란다.


아이의 하루가
나 없이도 흘러가는 동안
나는 집에 남아
아이의 빈자리를 정리하며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불안은 사랑이었고,
서운함도 사랑이었고,
괜찮아 보이려 애쓰는 마음 역시
사랑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를 잘 키웠다고 말하기보다
아이를 믿어보았다고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엄마가 되는 일은
아이를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매번 연습하는 과정이었고,
오늘은 그 연습을
조금 더 잘 해낸 날이었다.


다녀와서 들려줄
너의 이야기들을 기다리며
나는 여기서
엄마로서 한 걸음 물러선다.


그리고 속삭인다.
괜찮다.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