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호랑이배꼽, 전라남도 담양군 추성고을
임신 27주 차. 시간이 지날수록 옛 이야기가 좋아지는 요즘, 나는 태교를 위해 동화책을 읽고 있다. 어릴 적 읽은 전래동화를 배 속 태아에게 찬찬히 들려주며, 곧 세상에 태어날 아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읽기 시작한 전래동화에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남매를 꼬드기던(?) '해님달님' 속 호랑이, 불에 구운 돌멩이를 찰떡으로 알고 먹었던 호랑이가 나오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목 안의 가시를 뽑아준 호랑이가 은혜를 갚았다는 '은혜 갚은 호랑이'까지. 이야기 속 호랑이는 우리에게 꽤 친근한 동물이지만, 아쉽게 이제는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
'호랑이'를 우리 술로 만난다면 어떤 맛일까? 호랑이를 닮은 한반도의 배꼽자리, 경기도 평택시에는 우리 술을 빚는 양조장, '호랑이배꼽'이 있다.
술항아리 가득한 마당 사이로 나타난 양조장에 들어서니, 온 가족이 나와 우리 부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곳은 아빠인 이계인 서양화가, 엄마 이보은 요리연구가, 그들의 두 딸, 가족 모두가 운영하는 '볼 빨간 가족'의 양조장이다.
호랑이배꼽은 전통과 현대를 품고 있다. 이 곳의 시작은 2009년. 마당을 지나 마주한 곳은 빨간 지붕의 옛집이다. 집안 대대로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딸이 자라난 집터로 대청마루와 우물, 부엌까지 가족의 오랜 시간이 묻어나 있다.
집 안의 자그마한 방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알고 보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정봉이가 복권에 당첨된 바로 그 방이란다. 방문객들은 옛 추억이 담긴 주택복권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어떤 경품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빠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집터 옆 양조장에서는 보글보글 우리 술이 빚어지고 있다. ‘호랑이배꼽 생막걸리’와 증류주인 ‘소호 36.5’, ‘웃는 호랑이 소호 56’이 호랑이배꼽에서 빚어지는 술이다. 이계승 화가와 두 딸이 건네는 우리 술에는 기다림이 필수다.
지하 암반수와 100% 평택 쌀로 빚은 호랑이배꼽 생막걸리는 3번에 걸쳐 발효한 후 100일간 저온 숙성을 거쳐야 만날 수 있는 귀한 술이다. 증류주 소호는 ‘웃을 소’, ‘호랑이 호’를 붙인 이름으로 36.5도, 56도 두 종류로 첨가물 없이 순수하게 쌀을 증류해 숙성한다.
호랑이배꼽은 한 편의 예술 작품과도 같다. 화가인 아빠의 손길과 디자이너이자 사진작가인 두 딸의 감각이 구석구석 묻어난다.
시음과 체험을 하는 공간은 하나의 갤러리와 같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보은 요리연구가가 직접 담근 준치 김치와 술을 내오신다.
김치와 술을 맛나게 먹으며, 오래도록 두 아빠의 대화가 오고 갔다. 풍류를 즐기는 두 아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덧 해 질 무렵이다.
사랑하는 딸들과 무엇이든 함께 하니 이것이 행복이라는 이 화가의 말에 아빠도 고개를 끄덕이신다. ‘볼 빨간 부녀가 여기 또 있구나!’ 하시는 아빠의 얼굴에 호랑이 미소가 한가득하다.
전라남도 담양군에는 살쾡이가 나오는 우리 술이 있다. 술 취한 살쾡이가 담양 이씨 시조 이영간에게 비책을 주었다는 옛 이야기를 품은 술. 이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된다는 600여 년 역사를 품은 우리 술, 추성주다.
추성주는 고려시대, 담양 금성산성 일대 자생약초와 불자들이 가져다준 보리쌀로 빚은 곡차에서 유래한 우리 술이다. ‘추성고을’은 담양에서 유일하게 추성주를 복원해 빚고 있는 양조장이다.
양조장에 도착하자 양대수 대표는 아빠와 내게 추성주에 얽힌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담양인 처음인 아빠에게 몰랐던 담양의 역사까지도 유쾌하게 얘기해 주셨다.
2014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추성고을은 현재 대한민국 식품명인 22호 양대수 명인이 4대째 이어 오고 있다. 이야기가 풍성한 술이라 그런지 술의 재료 또한 풍성하다.
알코올 도수 25도의 추성주는 10가지 이상 한약재와 쌀을 넣어 100일 이상 숙성시켜 만들어진다. 숙성된 시간만큼 색도 맛도 깊고 진하다. 추성고을에서 맛볼 수 있는 술은 추성주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추성주 외에도 40도 타미앙스, 15도 약주 대통대잎술, 12도 대잎술까지 담양을 대표하는 술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그중 대통대잎술은 대나무통에 직접 주입하여 빚고, 대잎술에는 죽력이 들어간다.
추성고을의 체험 프로그램 또한 지극히 ‘담양’스럽다. 담양의 10 경에서 이름을 따 ‘추월산’, ‘금정산성’, ‘죽녹원’ 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명인주의 유래와 시음, 대통계란 만들기, 라벨 사진 촬영, 대통술, 소줏고리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술빵 만들기 체험도 인기 만점이다.
추성고을을 나서는 길, 대나무 가득한 담양의 숲길을 아빠와 함께 거닐었다. 그저 대나무만 유명하다고 알았던 담양만 알았던 우리에게 오늘만큼은 담양의 속마음을 알았던 여행 같았다. 그 길을 아빠와 거닐게 되어 감사하다.
술 취한 살쾡이가 비책을 주었다는 옛 이야기를 들으며 추성주 한 잔 곁들이는, 맛도 이야기도 풍성한 가을밤의 풍취를 아빠와 함께 했다.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주소: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충열길 41
운영 시간: 월~토요일 11:00~18:00(일요일 휴무)
전화: 031 683 0981(견학 및 체험 사전문의)
홈페이지: www.tigercalyx.com
주소: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추령로 29
오픈: 09:00~18:00(주말 전화문의)
전화: 061 383 3911
홈페이지: www.chusu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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