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양조장
내 별명은 ‘꺼벙이’다. 보통 꺼벙이는 허당끼가 있는 사람을 보고 말하는데, 별명을 지은 이는 바로 아빠다. 어릴 적에는 이 별명이 그리 거슬리지 않았지만, 3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꺼벙이라 불리는 건 뭔가 억울하다.
꺼벙이로 불리게 된 이유는 허당 끼 있는 내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만화’에 있다. 1970년대, 10대였던 아빠는 길창덕 만화가의 꺼벙이를 즐겨 읽었다고. 좋아하는 주인공 이름을 첫째 딸에게 별명으로 붙여 주신 것이다. 아빠의 청춘 만화 주인공이 내가 된 셈이다.
내 얘기를 꺼내 볼까? 나 또한 아빠 못지않은 만화 덕후다. 인터넷에서 메인 아이디로 사용 중인 ‘sano’는 첫사랑 일본 순정만화 ‘아름다운 그대에게’ 남자 주인공 이즈미 사노에서 따 왔다. 만화 주인공을 아이디로 쓰는 이는 흔치 않을 테지만, 내겐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만화를 찾아 우리 술 여행을 떠나 보면 어떨까? 충청북도 진천군에는 1930년에 지은 덕산양조장이 있다.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58호이자 2015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곳은 옛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덕산양조장은 자연적으로 온도를 유지해 발효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서향을 바라보고 있고, 벌레를 쫓기 위해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양조장 옆에 심고, 백두산에서 자생하던 삼나무와 전나무를 사용해 지붕을 만들어 견고함을 더했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작지만 아담한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옛 시골에서만 볼 것만 같은 농기구들과 7080년대 추억의 소품들이 가득하다. 인기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을 보자, 아빠는 오랜만에 보는 소품들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나 더, 덕산양조장은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 100화 ‘할아버지의 금고’ 대왕주조의 배경지다.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덕산양조장은 할아버지와의 따뜻한 추억을 간직한 양조장으로 나온다. 빚을 지고 폐업 위기에 처한 양조장을 한 사채업자가 인수하려 나설 때, 주민들이 반대에 나선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양조장 주인 손자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이대로 양조장을 넘겨야만 하나 깊은 고민에 빠진다.
우연히 손자는 양조장에 있던 할아버지 금고에서 나온 딱지(술뚜껑)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을 아끼던 할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함께 한 추억이 많은 양조장을 결국 팔지 않고, 물려받게 된다는 해피엔딩 이야기이다.
현재 덕산양조장은 만화 속에 등장한 손자와 기존 직원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문 경영인인 이방희 대표가 합류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우리 술 중 으뜸은 덕산막걸리다. 살짝 톡 쏘는 맛이 이내 사라지고 달달함이 퍼지다, 쓴맛과 신맛이 어우러진다. 이 외에도 천년주, 가시오피아주, 덕산약주, 로즈앙 등 다채로운 술도 있다.
그중에서도 로즈앙이 독특하다. 식용 장미와 무농약 흑미와 백미, 비트 등을 넣어 만든 라이스 와인이다. 그래서일까. 은은한 향이 입안에서 오묘하게 맴돈다.
덕산양조장은 만화를 즐겨 보던 옛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한다.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한 양조장이 지금처럼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길.
비록 꺼벙이란 별명이 마음에 안 들지만, 만화 주인공처럼 오래오래 곁에 있는 딸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돌아서는 길, 아빠의 양손에는 오늘 저녁 딸과 함께 마실 막걸리가 들려져 있다.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초금로 712
오픈: 월~금요일 08:00~17:00, 토~일요일 08:00~16:00(연중무휴)
전화: 043 535 3567
홈페이지: www.sulbo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