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성군 청산녹수, 부산광역시 금정산성 막걸리
전라남도 장성군 청산녹수, 부산광역시 금정산성 막걸리
2016년, 여성가족부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 중 절반 이상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시간도 안 된다고 한다. 이를 비추어 보면 나이가 들수록 아빠와의 대화시간이 '0'에 가까워지는 하향곡선인 셈이다.
통계를 보고 난 후, 아빠와 나의 대화시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얼추 하루 5분 내외, 그것도 SNS로 대화하게 되니 전화나 혹은 할 말이 있을 때 대화를 하게 되는 건 몇 초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뜨끔했다.
한 방송사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내 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연예인 아빠들의 육아 도전기’를 기획 의도로 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 아빠와 아이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바로 유아기 이때쯤이 아닐까?
가끔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훈훈하면서도 현실적인 아빠의 육아 도전을 유쾌하게 시청하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육아의 대상은 '어린이' 뿐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아빠는 아빠고, 아이는 아이인데 말이다. 아빠의 시선에서 30대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육아가 궁금한데 말이다.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가수 장범준 씨가 모교를 방문했던 에피소드를 인상 깊게 봤다. 당시 담임 선생님을 찾아 미대 진학에 큰 영향을 준 미술 선생님을 만나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 이제는 아빠가 되어 남매를 데리고 다시 찾은 모교에서 꿈을 찾게 해 준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는 모습이 나왔다.
모교를 방문한 그를 보니 나까지 훈훈해지곤 했다. 학교는 많은 이들에게 꿈 많던 청춘의 추억이 가득한 장소일 테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우리 술을 빚는다면 어떤 만듦새일까?

아빠와 특별한 양조장을 찾아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향했다. 2017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청산녹수는 1998년 폐교한 장성북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의 콘셉트를 온전히 살려 운영하는 양조장이다.
청산녹수는 총 2층 복도와 교실을 걸쳐 우리 술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보여 준다. 옆 교실을 따라 술을 빚고 익어가는 작업공정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쉬는 시간에 친구들 교실을 기웃거리는 것만 같다. 옛 칠판과 왁스질을 하던 복도를 지나다니며 아빠와 나는 추억놀이에 정신이 없다.
청산녹수의 술맛 비결은 물에 있다. “장성에는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는 방울샘이 있을 정도로 물이 좋아요.” 전남대학교 양조과학기술연구소장이자 청산녹수를 운영하는 김진만 대표가 말한 방울샘은 전라남도 기념물 186호로 실제로 존재한다. 이곳은 술에 들어가는 쌀 또한 장성에서 나는 쌀만을 고집하고 있다.
청산녹수의 술은 ‘사미인주’, ‘꿀막걸리’, ‘생탁주’, ‘불로문’, ‘첨내린’이 있다. 그중 대표 술인 사미인주는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을 모티브로 만든 8도수의 프리미엄 막걸리다. 한복을 입은 여인을 닮은 호리병 디자인이 인상적인 사미인곡은 천연 벌꿀을 더해 맛이 달달하다.
‘편백숲산소막걸리’는 장성 편백 숲을 형상화한 청산녹수의 야심작이다. 알코올 5.2도수로 사과농축액의 달콤함에 부드러운 탄산감이 더해진 맛이 꼭 미세먼지 하나 없는 장성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고나 할까.
아빠와 함께 술맛을 맛보고 향한 곳은 양조장 바로 옆에 있는 옹기 작업장이다. 술잔과 술항아리를 빚어진 옹기도 놓치지 말아야 청산녹수의 볼거리다. '학교'가 우리 술 양조장도 되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나니 아빠의 모교가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 아빠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지금보다 더 자주 대화를 나누는 여행을 해야지. 다음 여행 때는 아빠의 모교를 가봐야겠다 생각을 하며 청산녹수를 나섰다. 학교와는 또 다른 이색 양조장을 찾아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 아빠가 스포일러를 하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성이 바로 금정산성이라고. 여기에는 전 박정희 대통령이 아끼던 막걸리가 있다고. 옛 대통령이 그리도 아끼며 사라지지 않게 아낀 막걸리, 부산에서 근무할 때 많이 마셔본 막걸리라며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산성에는 주세법도 비껴간 우리 술 금정산성 막걸리가 있다. 아빠의 말처럼 금정산성 막걸리는 1970,80년대 주세법으로 술을 빚기 어려웠던 시절, 대통령령 9444호로 단독 허가를 받은 민속주다.
금정산성의 유래는 옛 산성을 축성하던 일꾼들이 마시던 술에서 시작되었다. 일꾼들에게 고된 노동을 잊재 해 주던 우리 술이 지금까지 맥이 이어졌으며, 현재는 대한민국 명인 49호 유청길 대표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이곳의 막걸리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바로 누룩에 있다. 국내 유일하게 남은 누룩마을인 이곳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전통 방식 그대로 직접 발로 디딘 누룩만을 사용한다. 실제 양조장에 들어서면 누룩 작업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400m 금정산의 맑은 물과 직접 밝은 누룩으로 만든 금정산성 막걸리를 잔에 따르면, 진득하면서도 캐러멜 같은 진한 색이 인상적이다. 알코올 8도에 100% 국내산 쌀로 만든 막걸리가 민속주 1호로 지정되었는지 마셔보니 알 것 같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술 외에도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산성길을 따라 올라가면, 유 대표가 꾸려 놓은 자그마한 박물관이 나온다. 이제는 보기 힘든 옛 농기구와 양조장 물품들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한데 모아 두었다.
양조장과 박물관에 이어 놓치지 말아야 할 소식 하나 더. 매년 음력 7월 7일에는 박물관 앞에서 축제를 열고 있다. 우리 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금정산성 막걸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란다. 다다인주. 술이란 사람이 많을수록, 함께 마셔야 좋은 술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된 하루다.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남양촌길 1
오픈: 09:00~18:00(주말 전화문의)
전화: 061 393 4141
홈페이지: www.bluegreenkorea.co.kr
견학 | 토~일요일 11:00, 14:00, 참가비 1인당 1만원 체험 | 10인 이상시 가능, 전화문의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453
오픈: 매일 09:00~18:00
전화: 080 9000 5858
홈페이지: www.sanma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