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아빠의 편지, 못다한 이야기를 담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아빠와 단둘이 여행을 하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빠와 오붓하게 추억을 쌓겠는가 싶기도 했고, 늘 젊고 강하게만 보이던 아빠가 아저씨에서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더 늦기 전에 여행을 해야겠지 싶었다.
마음먹기만 했을 뿐, 여행은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과 취업 걱정에, 취업을 하니 이직과 퇴사에, 이런저런 먼지 자국처럼 불투명한 고민들로 시간이 흐르는 줄 몰랐다. 늘 내가 우선이고 핑계가 하나둘 늘었다. 그러던 내가 아빠를 마주한 건 작년 봄, <오늘은 수제맥주> 책을 출간할 때 즈음이다.
당시 퇴임 후 텅 빈 자유시간을 보내야 할지 난감한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뭔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곧 결혼을 앞둔 내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이순간, 아빠와 둘이 여행을 떠나는 일이었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일년간 둘이서 여행을 하는 동안 아빠는 참 말도 많고 웃음도 많았다. 지금까지 못다 본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오해의 실타래가 엉킨 채 시작했던 아빠와의 여행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음을,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던 딸에 대한 사랑을, 아빠도 나처럼 고민 많던 청춘이 있었음을, 여태껏 알지 못했던 아빠의 인생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며 들어주던 딸을 향한 고마움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길 바라던 아빠의 진심까지도.
2019년 3월 30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4월, 아기천사가 찾아왔고, 다가오는 12월에는 엄마가 된다. 이제야 조금 아빠의 진심을 알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빠는 말했다. 때가 되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아빠와의 우리 술 여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 각 지역 양조장에서는 맛 좋고 역사 깊은 우리 술을 빚고 있다. 둘만의 여행은 끝났지만, 아빠와의 여행은 곧 계속될 계획이다. 이번에는 나와 아빠, 곧 세상에 태어날 손자와 손잡고 셋이서 가족 나들이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