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오래된 초짜의 비밀

by 민섬

경희는 10년전, 클래식 동호회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안녕하세요. 최경희라 고 합니다. 클래식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클알못이예요.”

“환영합니다. 저도 클래식초보예요.”

경희는 클알못 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사람들에게 강조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경희는 지식적으로는 잘 몰랐지만 클래식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음악은 가장 빨리 감정을 변화시키는 예술”, “음악은 감정으로 듣는것이기 때문에 꼼꼼이 정보를 파악해서 듣는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한 어느 음악 칼럼니스트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경희에게 클래식은 성취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은 ‘공부’라고 생각했다. 지식을 쌓는 것. 교양에 유용한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음악을 들을 시간이 나면 클래식을 선택했다.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들로 많이 듣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모임에 나가고부터 집에서만 음악을 듣던 경희는 클래식 공연장에도 다니게 되었다. 베토벤, 모차르트,슈만,말러 같은 작곡가들과 임윤찬, 조성진 같은 유명 연주자들, 대중적이지 않은 실력파 고음악 연주자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경희가 클래식 모임에 다니며 알게 된 점은 오래된 덕후들은 아주 작은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연주자가 사용하는 바이올린의 제작시기, A연주자가 사용하기 전에 B 연주자가 쓰던 악기라는 사실, C 첼리스트가 한때는 바로크 첼로를 연주하다가 2000년 이후부터는 모던 악기만 사용한다는 사실, 혹은 E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무대에서 바이올린 단원 한 명이 가족상을 당해 연주에 참여하지못했다는 사실. 이런 세세한 것들을 클래식 고수들은 훤히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경희의 지식도 조금씩 쌓여갔지만 어린 시절부터 40년 가까이 클래식을 접한 사람들과 풍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성향이 맞고 호감이 있어도 한계가 느껴졌다. 경희는 음악 전문 용어가 어려웠다. 클래식 관련 책들도 여러 권 읽었지만 모르는 이야기로 시작해 모르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많았다. 경희는 생각했다. 하던대로 그냥 음악만 듣고 내 감정만 느끼자. 기본적인 사전정보들만 공연전에 잘 살펴보고 단어 몇 개로 포인트만 잡아 이야기 나누자.


경희가 고대했던 S오케스트라의 공연날이 되었다. 공연홀에 도착해 경희는 자리에 앉았다. 곧 연주가 시작되겠지.

숨을 죽이고 집중하며 모두 한 마음으로 음악을 기다리는 시간. 지휘자의 손짓에 깨어나는 악기들의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웅장한 소리. 경희는 음악을 들으면 현실과 분리되는 느낌. 환상의 세계에 몸이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와! 탄성이 나올정도로 빠져드는 충만한 느낌이 황홀했다. 2시간이 5분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경희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행복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평범한 청중을 이해못하는 클래식 마니아들의 말은 뼈아팠다. 오래도록 입문자 수준인 사람들을 보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듣는다.”고 비판하는 SNS글에 경희는 화가 났다. 그냥 조용히 듣게 놔두면 안되는 건가? 클래식 관련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만 들어야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건가?


어느 순간, 경희는 모르는 이야기를 들어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매번 그게 무슨말이예요?라고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모르면서 아는척하는건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타고난 유머감각 덕분에 사람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모임의 주제는 결국 ‘클래식’이었고, 그 세계에서 경희는 차츰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주 3~4회 다니고, 수천 장의 음반을 모으고, 해외 페스티벌까지 찾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희는 이질감을 느꼈다.


경희는 얕은 클래식 지식으로 실수를 한적도 있다. 베토벤의 비창을 ‘4악장까지 있다’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고,(비창은 3악장까지 있다) 닉네임을 ‘줄리니’로 바꾼 회원에게 왜 그런 이름을 쓰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줄리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는 왜이렇게 많은 것인지! 클래식 동호회 회원들은 보통 유명 음악가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했다.' 줄리니'라는 닉네임 사용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경희는 줄리니를 그저 지어낸 호칭으로 알았던 것이다.


어느날. 경희는 한 클래식 고수의 SNS에서 ‘위대한 음악은 멸종해가고 듣는 사람도 골로 가고...’라는 글을 보았다.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는 뜻인가? 잘 모르면서 들으니 진정성이 없어 보이나. 클래식음악은 왜 ‘그저’ 좋아하면 안되는가. 얼마전 들은 클래식인문학 강의를 떠올렸다. 클래식은 왜 숭고한 것인가? 대중이 원하는 방식대로 들으면 안되는 것인가? 여러 의문점을 제시해주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게 해주는 강의 였다. 왜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은 다른 음악과 다른 범주에 두고 범접할 수 없는 음악으로 대하는가?


클래식인문학강의는 명쾌했고 강사는 클래식 음악은 모두의 음악이 되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경희는 피아노를 전공한 강연자의 이야기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클래식도 이제는 좀 달라져야돼.


경희는 자신이 왜 클래식 음악을 더 깊이 탐구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했다. 능력이 안돼서일수도 있고, 음악만 들어도 만족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그렇게 투자할 시간도 돈도 없었다. 어쨌든 자신에게 ‘클래식 음악 덕후’의 기질은 없었다. 그래, 나같이 그저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거지. 다 1등만 할순없잖아. 덕후라고 느끼는 감정까지 최고는 아니잖아. 내 감정도 숭고하고 아름다워.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는 정도만 따지면 내가 그 누구보다도 고수일거야.


클래식을 둘러싼 세계는 경희의 눈에 때로는 고정되어 있고, 때로는 배타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은 경희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풍성한 환대였다. 그 환대는 경희로 하여금 자신이 고귀한 존재라는 감각을 느끼게 했다. 들으면서 신분이 높은 어떤 존재가 된 기분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현실은 평범한 아줌마일지라도 말이다. 지식이 많든 적든, 경희는 늘 함께했던 클래식을 듣을 것이다. 초보라는 사실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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