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너는 말하지 않았다

스릴러

by 민섬

오픈카는 깊은 밤, 외진 산길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미경은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고, 상우는 앞을 응시한 채 핸들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다.

“타이어 소리 좀 이상하지 않아?”

상우가 물었다. 미경은 잠시 고개를 돌려 상우를 본 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속도를 줄이고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운 뒤 문을 열고 내려 조수석 쪽 바퀴로 다가갔다. 바퀴를 자세히 살펴보던 그는 무릎을 굽히고 귀를 가까이 대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쉿… 소리 들리네… 펑크도 아닌데 왜 공기 새는 소리가…”

그는 손으로 타이어를 눌러봤다. 조수석 타이어는 육안으로 멀쩡했지만, 실제로는 공기압이 느리게 빠지고 있었다. 그는 의아해하며 타이어에 집중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땐, 미경이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미경아… 왜 자리 바꿔앉았어?”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 자리는 처음 앉아보네. 내가 운전해도 되지?”

미경이 말했다. 상우는 묘한 위화감에 말없이 조수석 쪽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녀는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미경이와의 인연은 1년 전,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상우는 하청 업체의 현장 소장이었고, 미경은 본사의 설계팀장이었다. 같이 일하는 시간은 늘어날수록 둘은 가까워졌다. 미경이가 욕심난 상우는 자신의 이혼도, 중학교 1학년 딸이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미경이 결혼한 적 없는 싱글인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돌싱이라는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비록 잘못된 방법일지언정 헤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그녀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변소장님이랑 최팀장님이랑 만나는 사이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박연주씨 목소리였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말소리는 여자 화장실 안에서 들렸다. 미경은 화장실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거 같더라.분위기 묘하던데?” 프로젝트 멤버인 최진희 주임의 목소리.

“근데 변상우소장님은 돌싱이잖아? 최미경팀장님 알고 계신가?” 다시 박대리의 목소리.

“그러게. 알고도 만나는거야? 최팀장님이 넘 손해아닌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경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순간, 어릴 적 자신의 기억이 가슴 깊은 곳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걸 느꼈다.

미경은 어릴 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시골 이모 집에 맡겨졌다.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지만 엄마에겐 끝내 연락이 없었다. 미경은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를 찾아갔다. 이모의 수첩에 적힌 주소를 보고 혼자서. 초등학교 5학년, 어린 나이었지만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내려온 엄마는 반가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미경이가 “엄마!”하고 부르자 엄마는 미경의 입을 틀어막았다. 안에서 “밖에 누구야?”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엄마는 “아무도 아니예요. 웬 아이가 잘못 찾아왔네요.” 라고 말했다. 엄마는 미경일 숨겼다. 상우의 거짓말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가 딸을 숨긴 그 순간은 너무도 선명하게 옛 기억을 찔러 깨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 미경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경은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상우의 딸이 궁금했다.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될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미경은 상우가 휴대폰을 놓고 잠깐 화장실에 간 어느 날, 상우의 휴대폰을 뒤져보았다. 상우의 패턴은 알고 있었다.미경은 손쉽게 연 휴대폰의 화면을 넘겼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진첩이었다.커피잔, 서류, 회의실 사진들 사이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셔츠에 생일 케이크를 들고 있는 사진. 그 옆엔 '세븐틴 호시♡'라는 아이의 톡 프로필 캡처가 저장돼 있었다. 그는 분명 "혼자"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 사진 속의 아이는 눈이 닮았다. 상우의 눈과 너무도 닮았다.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려 미경은 얼른 휴대폰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미경은 세븐틴 팬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을 뒤졌다.

십 대 아이들이 떠드는 방, 그 속에 그 닉네임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상우의 딸이 맞았다.

‘나도 세븐틴 호시 좋아해!’

그녀는 동갑인 척 하며 상우의 딸과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얘기를 하고, 아이돌 이야기를 했다. 딸은 쉽게 마음을 열었다.귀엽고, 착하고, 순진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자신이 숨겨졌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면서 그것을 겪게 놔둘 순 없었다.

상우의 딸과 세븐틴 호시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한달이 흐르도록 상우는 끝내 딸 연지의 존재를 말해주지 않았다. 미경은 결심했다. 연지가 겪게 될 고통에서 연지를 해방시켜주기로.


며칠 후, 그녀는 가짜 기사를 만들었다. 포토샵으로 조작된 제목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속보] 세븐틴 호시 투신 사망’

그리고 그 기사를 연지에게 보냈다.

“…진짜야?” 연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어보았다.

“어.” 미경은 채팅창에 답했다.

“다른 곳엔 그런기사 없어.”연지는 의심했다.

“우리 삼촌이 기자야. 지금 충격받을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 기사 막고 있다는데 진짜 죽었대.” 미경은 세븐틴 호시가 피를 흘리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사진도 보냈다. 물론 조작된 사진이었다.

그날 저녁, 연지는 17 층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연지에게 좀 전에 일어난 일을 상우는 모른다. 상우의 휴대폰을 미경이 미리 “오늘은 나한테만 집중해줘”라고 말하며 전원을 종료하고 자신의 핸드백속에 넣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연락이 오고 있을텐데 상우는 모른다.

그녀는 핸들을 천천히 돌리며 속도를 높였다.

앞에는 가파른 커브가 기다리고 있었고, 조수석 안전벨트는 미경이 미리 손을 써놓았기에 약간 느슨하게 걸려 있었다.

“그 애 얘기… 왜 안 했어?”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뭐라고?”

그가 되물었고, 그녀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예쁘게 자란 애를… 왜 숨겼을까.”

그의 표정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고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나는 한 번도 보여진 적 없는 아이였거든. 우리 엄마는 나를 숨겼어.

당신은 나에게 보여줄 수 있었는데도 딸을 감췄어.”

그녀는 엑셀을 밟았다.

“그게 나에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을 떠올리게했어.”

미경은 빠른 속도를 유지하다 도로의 코너를 돌때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녀는 출발 전 조수석 안전벨트의 클립 고정장치를 느슨하게 풀어 급제동 시엔 제대로 잠기지 않게끔 해둔 상태였다. 상우는 조수석에서 튕겨져 나가 도로 바깥 풀숲에 처박혔다. 타이어 자국만 남긴 채 오픈카는 도로에 멈췄다. 엔진은 꺼졌고, 바람만 지나갔다. 미경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천천히 바라보았다.

핸드폰속 프사에 담긴 웃고있는 연지의 얼굴이었다.

미경은 연지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널 숨길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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