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학벌 권하는 사회

현진건 작가님의 <술권하는 사회> 제목을 패러디함

by 민섬

삑삑삑삑.

문이 열렸다. 정우가 들어왔다. 정우는 살짝 목례를 한 후 경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밤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경희는 노크를 한 후 정우의 방문을 열었다.

“배고프지? 밥 줄까?”

“아뇨. 괜찮아요.”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정우는 왜인지 요즘 집에서 거의 밥을 먹지 않았다.

경희는 정우의 표정을 살피다 말을 꺼냈다. “얼굴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

“그럼 안 힘들겠어요? ”

“그래, 고생이 많다. 힘들겠지만 3년만, 아니 2년만 견뎌보자.”

어김없이 죄책감이 경희를 감쌌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 과학 몇 바퀴씩 선행한다는 엄마들 보며 애를 잡는다 생각했었는데 선행 안 시킨 내가 애를 잡은 거였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권투, 어쿠스틱 기타, 농구 등의 여러 취미생활을 다 하게 해 준 게 잘못이었을까. 그 시간에 소위 ‘빡센’ 학원으로 뺑뺑이 돌려야 했을까. 중학교 때 자유롭게 지내던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 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정우의 학교는 1학년 학생수가 320명으로 주변 고등학교에 비해 세 배 가량 많고 sky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이다. 학생수가 많으면 내신 따는데 그나마 유리하다고 판단되어 경쟁이 치열했다. 이 학교에 배정받고 여기저기서 많이 축하받았었는데. 그냥 일반고를 보냈어야 했다.

자신에게 저런 스케줄을 소화하라고 한다면 경희도 자신이 없다. 아침 7시 30분 등교, 3시 30분 하교 후 이어지는 학원 스케줄. 수학, 영어, 국어. 과학…. 중간고사 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한국사와 통합사회도 다녀보자고 권유했지만 “그럼 나 죽을 거 같아.”라는 정우의 말에 마음을 접었다. 통합 사회는 세계사, 지리, 윤리 정치 경제 많은 부분이 혼합되어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공부 습관이 잡히지 않은 정우에게 만만한 과목은 아니다. 하긴, 나도 정우같은 스케줄을 소화했었던 적이 있지. 자율학습때문에 늦게까지 앉아 있어야 하긴 했어. 지금과 같이 복잡하진 않았지만. 뭐가 이렇게 복잡해진 건지.

경희는 2025년 고교학점제로 바뀐 지금 상황이 혼란스럽다. 교과 성적보다 비교과인 학생부 종합평가 (학종)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어 특목고 지원률이 사상 최대였고 성적이 잘 나와도 표준편차, 성취도분포도 등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았다. 경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치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엄마들은 자식을 위한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점입가경으로 바뀐 담임은 또 어떤가. 학부모 단톡방을 만들어 자신이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으니 고마우시다면 교장선생님께 전화하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 아이들은 11시 4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주어진 점심시간도 활용하지 못하고 밥만 먹고 빨리 올라와서 공부하라는 담임의 성화에 12시 10분까지 착석해 20분 동안 자유시간 없이 공부해야 했다.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만 다녀오고 공부하라고 교실에 들어와 있는다니 이야기만 들어도 숨이 막혔다. 우리반이 1등을 해야 한다는게 이유다. 이게 청소년 학대가 아니면 뭐가 학대란 말인가. 아이들에겐 단톡이나 개인톡으로 제대로 안 하면 벌점 준다는 카톡을 수시로 보내고 주말에는 하루 세 번씩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사진을 찍어 올리라고 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이상한 학부모들은 대체 어디 있는가. 이런 담임에게 왜 아무도 항의하지 못하는가. 경희는 누군가 나서서 항의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생기부라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고등학교 담임선생에게 항의는 비현실적인 단어일 뿐이었다.

과일을 들고 정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정우가 좋아하는 복숭아다.

“정우야 딱복 아니고 말복이야. 하나 먹어봐.”

정우는 복숭아를 받아 들었다.

“맛있지?” 경희는 정우의 먹는 모습을 살폈다.

“엄마.” 복숭아를 먹던 정우가 입을 열었다.

“응?”

“저… 요즘 심리적으로 기댈 곳이 없어요.”

정우의 속마음을 듣고 경희는 철렁한다.

“많이 힘들지? 엄마한테 말해봐.”

경희의 말에도 정우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상담 한 번 받아 볼까?”

경희는 재차 말한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학기 당 20개씩 쏟아지는 수행평가, 세특(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에 봉사활동, 거기에 내신과 모의고사 시험준비로 정말 쉴틈이 없는 시간들. 그 시간들을 견디느라 힘이 들겠지.

정우는 중학교 때처럼 “학원 쉴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훨씬 힘들어졌는데.

여기 저기서 주입되는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패배자다"는 메시지에 굴복한 것일까.

시간은 어느새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경희는 상담과 관련된 정보를 검색해 보기 위해 눈을 비비며 컴퓨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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