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타임 트레이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by 민섬

“당신이 놓친 시간, 그 시간은 다른 가능성이 됩니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뒤로하고 빌딩에 걸려있는 전광판에 선명하게 떠오른 글자들. 미소는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미소는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하...”

미소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시간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미소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한 남자가 미소의 뒤에 서있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희다 못해 투명한 피부. 슬림하면서도 단단한 체구의 남자.

남자는 입을 열었다.

“30분째 광고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군요.”

“!”

“30분 동안 저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미소가 황당해하며 남자에게 물었다.

“네. 정확히는 당신을 ‘감지’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맞겠죠.”

“감지… 요?”

“네. 멈춰 서서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10분을 넘기면 저는 누구든 그 사람을 감지해야만 합니다. 그게 제 일이죠. 10분이 넘어가면 시간의 비생산적 소모가 더 길어질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남자는 차분하게 말했다.


2032년 현재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니 뜨거워졌다기보다는 불타기 시작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방법을 찾으러 애쓰는 기후 관련전문가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지구의 온도는 빠르게 올라갔지만 대처할 방법을 찾는 일은 더뎠다.

시간이 필요했다.

때마침 과학학술지에 타임머신 개발연구에 30년 이상을 바친 과학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타임머신 개발에는 실패했으나 시간전달 로봇을 발명했다는 소식이었다.

기후 연구가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다급히 과학자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안상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구 기후위기 대응전략팀입니다. 안상훈 과학자님께서 발명하신 시간전달 로봇에 관심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인류 생존에 직결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류는 생존 공동체이니 생존 노력을 위해 낭비하는 시간을 활용해야한다>는 말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기후위기에 활용하여 인류생존에 기여한다? 자신이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시간이 유용하게 사용되고 그것의 대가도 받는다니. 그 이야기는 달콤하게 들렸다. 곧바로 실행을 위한 찬반투표가 진행되었다. 일사천리로 막힘없이 말이다. 다수의 찬성으로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시간은 기후위기대응연구팀 에게 제공한다. 대신 합리적인 비용을 시간 소유자에게 지급한다>로 최종 결정되었다.

미소는 경악했다.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다니!! 6개월의 시범 운영기간이 있었고 결정 난 사실에 적응해야 했지만 미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과학의 발전으로 거의 모든 일을 인공지능 AI가 대신할 수 있게 된 시대. 남은 자원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시간이라고 통합 관리 본부는 결론을 내렸다. 인공지능의 한계가 사라진 시대에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결국 시간에 집중된 관심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10분을 넘기면?” 미소는 물었다.

“10분을 넘기면 감지를 시작하고 30분을 넘기면 경고를 합니다. 1시간이 넘으면 당신에게서 낭비한 시간이 추출됩니다. 당신의 하루 중 낭비한 만큼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죠. 물론 합당한 대가는 지불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제 이름은 디오입니다. 낭비되는 시간을 감지하여 추출 후 재조합 과정을 거쳐 기후위기팀에 시간을 전달합니다. 저는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남자는 말했다.

미소는 격앙된 말투로 남자에게 항의했다.

“전 따를 수 없어요. 이제 막 대학생이 됐다고요. 자그마치 대한민국 최고 S대 대학생이라고요.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내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요? 계획대로 알차게 쓰는 건 지긋지긋해. 이제 난 마음대로 내 시간을 막 쓸거라고요.”

“죄송합니다. 저는 제 일을 할 뿐입니다.”

미소는 가만히 디오를 노려보았다.

'그래. 그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겠지.'

“제 시간 가져간다 쳐요. 피 같은 내 시간 그래서 누구 줄 건데요?” 미소는 알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로봇을 구슬려 시간을 뺏기지 않을 시간을 벌고 싶었다.

“기후위기팀에 전달할 겁니다. 그것이 생산적인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대신 달이 남중(하늘 최고 높은 위치)에 뜨면 리셋되어 다시 24시간이 주어집니다”

“리셋이 왜 필요해요? 필요한 시간 가지고 갔음 그만이지.”미소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디오는 인상을 찌푸리는 것처럼 보였다. 미소는 눈을 의심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답답하다는 표정을 본 거 같은데. AI 맞아? 사람이 장난치는 건가?

“달을 기준으로 한 리셋은 필요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이는 하루 26시간을, 어떤 이는 20시간을 살아가게 되고 그것이 쌓이면 큰 격차가 벌어지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집니다. 하루의 시작은 같아야 합니다. 그것이 보편적 질서입니다.”

디오는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근데 왜 달이 기준이에요? 기왕지사 태양으로 하지. 달이 기준인 것도 난 맘에 안 들어요.” 미소는 어떻게든 허점을 잡고 싶었다.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떼라도 쓰고 싶었다.

“왜 달이 기준이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달의 주기를 통해 시간을 가늠해 왔습니다. 태양은 낮과 밤을 구분해 주지만, 달은 훨씬 세밀하게 변화를 보여주며,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관측 가능한 시계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달의 움직임은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입니다. 정확히 하루 24시간에 맞추어 반복되지 않고, 매일 약간씩 늦어지지요. 그 차이가 약 50분입니다. 이유는 잘 아시겠지만 달이 자전과 공전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리셋은 달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 즉 남중에 도달하는 순간에 맞추어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밤 11시라면, 내일은 11시 50분, 모레는 자정을 넘겨 12시 40분이 되는 식입니다.

달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시계나 제도로는 이 흐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연의 질서를 따를 수밖에 없지요. 그 점이 오히려 공정하고 절대적인 리셋의 조건이 됩니다.”


“공정이라고요? 저는 태어나서 이렇게 비공정한 경우를 본 적이 없는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미소는 “리셋의 조건”이 꽤 맘에 들었다. 시간을 뺏기고 빼앗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연의 질서에 따른다니 이유가 엉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언론에서 떠들어댈 때 더 귀담아 들었을걸 싶었다.

미소는 생각하기도 싫어 무조건 귀를 막았던 자신이 바보같이 생각되었다.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달만 쳐다보고 살 수도 없고, 언제 리셋되는지 어떻게 알아요? 매번 시간계산을 해야 돼요?”


미소의 말을 들은 디오는 주머니에서 붉은색 카드를 꺼내 미소에게 내밀었다. 미소가 보기엔 꼭 부적 같았다.

“이 전자카드가 울리면 하루가 종료되고 리셋되어 새 하루가 시작됩니다.”

디오가 미소의 손에 붉은색 카드를 쥐어주었다.

“꼭 부적 같은데요?”

“부적은 오래전, 인간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만든 미신적 장치일 뿐입니다. 이 것은 리셋 종료를 알려주는 전자카드입니다. 전자카드를 잘 가지고 계세요.”

디오는 차분히 덧붙였다.

“그것이 당신의 내일을 보증할 유일한 증표입니다.”

미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위에는 어느새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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