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엄마가 있어서 살았다

by 민섬

“손가락 잘라진 거야 누나?”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1986년 4월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수미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화장실 바닥은 덩어리로 가득하다.

벌건 핏덩어리다.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수미는 쏟아지는 핏덩어리를 본다. 손가락에서 계속 덩어리가 나온다. 검붉은 덩어리들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수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수미는 손이 덜덜 떨린다. 두 평 남짓한 화장실 바닥이 붉은 칠을 한듯하다. 입이 안 떨어진다. 도와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문 앞에는 수미의 아빠가 있다. 그런데 수미의 아빠는 수미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

“엄마 어딨 어?”

침착한 아빠의 목소리. 수미는 아빠가 침착한 게 이상하다. 쏟아지는 피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수미는 제발 누가 피만 안 나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여보”

느긋하고 침착한 목소리.

“여보”

영원 같은 몇 분이 흐른 후 다시 엄마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 5분 정도 흘렀을까? 그제야 계단을 올라오는 엄마의 발소리가 들린다.

“왜 불러요?”

엄마가 연탄을 갈고 올라와서 현관문을 열었다. 수미의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2층 단독주택이다. 지하실에는 연탄 보일러실이 있는데, 연탄을 꺼뜨리면 집이 냉골이 되기 때문에 냉골을 만들지 않으려고 엄마는 새벽에도 자다 깨서 연탄을 갈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간다. 연탄은 검은색이 허옇고 누르끼리한 색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바꿔줘야만 따듯함을 유지할 수 있다. 마침 엄마가 연탄불을 갈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악!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가 비명을 지른다. 수미는 그제야 살았구나 싶다. 엄마는 서랍을 요란스럽게 뒤져 붕대를 꺼냈다. 덜덜 떨면서 수미 손에 붕대를 감는다. 그래도 피가 멈추지 않자 수건으로 수미 손가락을 감싸서 꽉 누른다.


어느새 수미는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가는 중이다.

“아빠. 나 손가락 안에 깨진 유리 들어간 거 아니겠지?”

수미는 불안하다.

“시끄러워! 망할 놈의 가시나. 병원 데려가기 귀찮아 죽겠네.”

아빠는 수미를 째려보며 욕을 한다. 아빠는 평소에도 욕을 잘한다. 하지만 수미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아빠가 이번만큼은 욕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수미 손을 보신다.

“선생님. 제 손가락 속에 유리조각 안 들어갔나요?”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다. 심각한 얼굴이다.

“조용히 해! 알아서 잘 치료해 주실까!!”

아빠는 당장 손찌검이라도 할 것같이 험악한 얼굴이다. 밝은 전등이 손가락을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다. 손이 아프다. 화끈거리고 따갑고 쓰라리다. 손에 주사를 놓는다. 고통스럽다. 누구라도 다정하게 “놀랬지? 많이 아프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나 같으면 그렇게 할 텐데. 수미는 겁에 질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설사 눈물이 나와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11살 수미는 알 수 있다.


화장실에 뾰족한 사각 유리선반을 설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 치약컵과 비누 올려놓을 거니까 편하겠지?”

엄마가 언니와 수미, 동생에게 말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

오늘 수미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와 씩씩하게 화장실 문을 열었고 수미의 허벅지 높이에 설치된 유리선반은 별생각 없이 화장실에 들어가던 수미의 손가락을 깊숙이 찌르고 말았다. 부주의하게 손을 흔들면서 들어간 게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제대로 넘어졌기에 아파서 빨리 무릎을 씻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새로 설치한 선반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수미네 집 화장실에 따로 세면대가 없어서 그동안 화장실 바닥에 세숫대야. 비누와 치약컵을 놓고 사용했기에 엄마는 의욕적으로 유리선반을 설치한 것이었다.

“내가 왜 저놈의 유리선반을 설치해서는. 아유 속상해! 여자애 손이 저게 뭐야.”

수미의 손을 붙잡고 엄마는 한탄했지만 수미는 손가락이 잘라지지 않은 것만이 다행스러웠다.

“저 어린애가 일곱 바늘이나 꿰매다니. 정말 큰 일 날 뻔했어.” 엄마는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엄마, 나 어지러워.” 수미는 머리가 필도는 걸 느꼈다.

“피를 많이 흘렸대. 큰일 날 뻔했어. 엄마가 불고기 사줄게. 대성회관이 불고기 맛있어. 잘 먹어야 피 흘린 거 보충하지.”

“누나, 나 진짜 누나 손가락 잘라지는 줄 알았어.” 동생도 말을 보탰다.

엄마가 퇴근 후 집에 계실 때 다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빠만 계셨다면 어땠을까.

수미는 그 생각을 하면 너무 무서웠다. 그 생각은 수미를 아주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


“야 너 손가락 왜 그러냐?”

“지네가 있는 거 같아. 어우 징그러워.”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수미를 놀렸다. 수미는 엄지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지네 같은 모양의 커다란 흉터가 보인다. 마음에도 흉터가 보인다. 어떤 모양인지는 모르지만

매거진의 이전글<엽편> 타임 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