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계속 웃기는 여자

by 민섬

“제가 웃기는 재능이 좀 있잖아요? 호호호.”

금속성의 소리가 섞인 걸걸하고 큰 목소리. 미은은 오늘도 그 소리에 깜짝 놀란다. 미은은 그림책 강사인 양선경 씨를 웃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양선경 씨가 “나 이거 여러분 웃기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웃어야 돼요.”라는 느낌의 멘트를 던질 때마다 미은은 강사의 암묵적 신호를 무시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웃기 시작했다.

미은이 웃지 않으면 왜 나의 유머에 웃지 않는 거야?라는 식의 곱지 않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웃고 있는데 웃지 않는 자신이 센스 없게, 무뚝뚝하게 보일까 봐 걱정되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진행하는 수업이라 서로 표정을 볼 수 있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제가 집 근처 도서관에서 7세 아이들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에게 제 이름을 알려줬거든요? 도서관 프로그램에 제 이름 뜨면 꼭 신청하라고. 그런데 얼마 전 동네에서 아이들을 마주쳤는데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양선경! 양선경! 제가 아주 동네 연예인이라니까요, 호호호.”

마이크가 쩌렁쩌렁 울리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

미은은 흠칫 놀랐다. 강사의 쇳소리와 큰 웃음소리가 미은에겐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시간 동안 다둥이카드를 활용해 무료로 받는 이 수업을 미은은 중단할 수 없었다. “다둥이행복카드 있으면 직업교육/생활문화교육 접수가 무료”라는 서울시의 홍보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다둥이 카드로 신청한 수업을 제대로 출석하지 못하면 다음 6개월 동안 이용자격이 박탈된다. 평소 자신이 듣고 싶었던 수업을 고르면서 얼마나 행복하고 설레었던가. 이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어머. 그림책에 뭐가 묻었네요. 뭐가 묻은 것까지 스캔이 됐네. 내가 왜 이걸 못 봤지? 호호호.”

강사에겐 그 어떤 일도 쇳소리를 내며 웃을 이유가 됐다. 미은은 얼굴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웃어야 한다. 애써서 웃는 자신의 얼굴을 상상하니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때였다.

“어머, 어머! 나 왜 이러지?!”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한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

“입… 입이 안 움직여요! 저 지금, 나 반쪽이 안 올라가요!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어요!”

어눌한 발음으로 필사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여성을 보며 사람들은 경직되었다.


항상 쇳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웃었던 양선경은 그때만큼은 웃지 않았다. 서둘러 119에 전화를 했고 119가 오자 여성의 보호자를 자처해 함께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어떻게 된 일일까 수군거렸다.


일주일 후, 다시 열린 수업. 미은은 그 여성이 다시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수강생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억지로 웃는 상황이 반복되며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일시적인 안면신경마비 증상을 겪은 것이었다. 지금은 회복 중이지만, 결국 수강을 포기했다고 했다.

미은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만 그 상황이 불편하고 힘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위안이 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웃으려 애썼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지었던 날들이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강사 양선경의 수업은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활기차고 큰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예전처럼 이유 없는 웃음이 난무하지는 않았다. 미은은 그런 변화에 놀랐다. 일시적 안면마비가 왔다던 그 여성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미은이 보는 양선경 강사는 나 때문에 안면마비가 왔을 리가 없다고 계속 쇳소리를 내며 웃을 거 같았는데,


“이 그림책에서 저는 토끼가 친구들을 계속 웃기려 애쓰다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사건이 있은 후 몇 주가 흐른 어느 수업시간, 양선경 강사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어요?”

잠시 망설이던 미은이 손을 들었다.

“저는… 너구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장면이요.”

말을 마친 순간, 미은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억지로가 아닌, 정말로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