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평범한 영웅, 최상철

뉴스기사를 참고해 소설을 썼습니다

by 민섬

“놔주세요. 제발.”

여자의 간절한 목소리. 남자에게 손을 붙들린채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것 같은 얼굴. 공포의 빛이 역력한 눈동자.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여자의 손을 붙잡고 있는 남자는 필사적이다.


2025년 7월25일 오전 4시.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상철은 중얼거렸다. “비 진짜 징그럽게 퍼붓네.”

“여보. 당신 천운터널 지나가죠? 거기 진입통제 안해도 되나? 뉴스에는 통제한다는 얘기가 없네.”

미경이 말했다.

“그러게. 어제부터 비가 계속 오는데…뭐. 이상있으면 통제하겠지. 괜찮을 거야. 바쁜데 괜히 돌아갈 필요 있나.”

화물차 운전기사 상철은 늘 그렇듯 5시쯤 집을 나섰다. 건축자재유통창고에서 물건을 실어 아파트 신축현장에 가져다 주는것이 그의 일이었다.

“물건 다 실었어요. 최기사 출발해요.”

“네. 수고하세요.”

상철은 인사를 마치고 시동을 걸었다. 와이퍼를 가장 빠른속도로 설정했는데도 굵은비 때문에 앞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안되겠어. 천운터널로 가지말자.’ 비가 많이 오면 침수우려가 큰 취약터널로 기사들 사이에서 진작부터 이야기됐던 곳이었다. ‘사람이 먼저지. 30분정도 더 늦어지겠지만 할수 없지.’ 상철은 다른 경로로 진입할 준비를 했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현장소장이었다.

“여보세요.” 상철은 전화를 받았다.

“최기사, 어디야!”

“물건 싣고 출발했습니다.”

“빨리 좀 와요. 지금 자재가 없어서 일 못하고 다 최기사 기다리고 있어.얼마나 걸려?”

“1시간쯤 걸릴거 같습니다.”

“장난해요? 물건 싣고 출발했다며. 30분이면 오잖아. 지금 다 일못하고 기다리고 있다니까?”

“아…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상철은 천운터널로 트럭을 몰았다. 소장이 저렇게 화를 내는데 돌아갔다간… 얼른 지나가자. 얼른 지나가자. 빗속을 달리다 보니 천운터널이 보였다. 상철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터널로 진입했다. 터널바닥은 물이 차서 출렁였지만 차가 못지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터널 출구가 10m쯤 남았을까. 갑자기 둑이 터져버린 듯 굉음이 울리고 시커먼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트럭 차체의 절반이 물에 잠겨 버렸고 악셀을 밟는 발끝에선 공허한 헛바퀴 소리만 맴돌았다. “제발, 제발! 걸려라!” 상철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시동은 꺼져 버렸다.

상철은 재빨리 창문을 깨고 트럭 위로 올라갔다. 물은 어느새 트럭의 상부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어디선가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트럭 사이드미러에 어린 여학생이 매달려 있었다. 차량에서 탈출하려다 물에 휩쓸린듯했다. 기적적으로 사이드 미러를 잡은걸까. 상철은 생각할 겨를이 없이 여학생의 손을 잡았다. 물살이 너무 세서 여학생을 끌어올리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한손으로는 트럭 위 손잡이를 잡고 한손으로는 여학생의 손목을 쥐었다. 영원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물살은 약해질 기미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상철은 손의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비가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상철은 여학생의 손을 놓을수 없었다. 상철의 손톱이 여학생의 손목을 파고들었다. 상철은 20초만 더버티자고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숫자를 셌다. “놔주세요.” “저 더 이상 못버티겠어요. 제발 놔주세요.” “살 수있어요. 버텨요. 절대 안놓을거예요.” “아저씨까지 죽어요. 놓으시라고요.” 여학생은 힘없이 통곡하는 것 같았다.

하늘이 도와준 것일까. 상철은 뱃속깊은곳에서 최후의 에너지를 끌어내듯 흡!하고 기합을 넣으며 필사적으로 그 여학생을 트럭위로 끌어올렸다. “여기 잡아요!” 상철은 여학생에게 손잡이를 잡게 하고 자신도 잡았다. “살았다….”


상철과 여학생은 트럭 위에서 버티다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며칠 후, 기운을 회복한 여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상철을 찾았다.

“흐흐흑….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딸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학생의 아버지는 상철을 붙잡고 흐느꼈다. 상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이 못 버티겠으니 손을 놓으라고 했다는데… 손톱이 다 빠질정도로 힘을주어 딸을 끝까지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으흐흑.”

“ 사람이 사람을 돕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지연 양이 살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니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너무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오히려 끝까지 버텨준 지연 양에게 고마운데요.” 상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2025년 7월 30일자 서울일보에는 굵은 활자로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시대의 영웅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여학생의 목숨을 구한 트럭 운전 기사 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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