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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앰버 Sep 21. 2023

옛 동네

10살이었던 해의 초겨울까지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은 적이 있다.


동네친구와 함께 등하교하던 그 길이 기억에 선하고 금방이라도 다시 찾아 학교를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하루 시간을 내어 남편과 함께 옛 동네를 찾았다.


차로 지나가며 설명하려 했던 내 등교길은 사실 차 한대 지나가기 힘든 골목길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좁은 길에서 나는 친구와 노래하고, 장난치고, 싸우고, 뛰어다녔구나.


어렵게 차를 돌려 찾아간 동네는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 오묘한 기분을 가져왔다. 

여기 오래 사신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날 알아볼까?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유난히 언덕이 많았던 그 동네의 입구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여기저기 누비던 슈퍼마켓들도 그때 그 간판을 달고 아직도 장사를 하고 계셨다. 

내가 동네에서 제일 좋아했던 문방구만 아쉽게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된 듯 보였지만, 

딱히 다른 가게가 들어서지 않은 것을 보면 사장님 부부의 사정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당시 어린이였던 나의 걸음으로도 8분 정도면 갈 수 있었던 외할머니댁. 

연립 앞 주차장과 화단이 운동장 같아보였는데, 이제 보니 차가 스무 대면 꽉 차는 작은 단지였다. 


오르락 내리락하던 작은 언덕들도 어린 나에게나 산같이 느껴졌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이제는 외할머니도 내 가장 오랜 친구도 여기 살지 않지만, 

내 마음 속의 향수는 여기 남아 어린 나를 계속 그리는 것 같다. 

생생한 기억이 여럿인데, 이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 아이처럼 느껴진다. 


그때의 실수를 지금도 반복하는 것 같고, 오히려 이때가 더 의젓하고 성실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나를 1998년으로 데려간 동네의 기억들이 아직 그 곳에 남아 있었다. 


그 누구와도 공유하기 힘든 내 경험과 기억들이 그 이미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 옛 동네가 재개발 같은 큰 변화로 인해 옛 삶터와 일터와 놀이터가 모두 지워지는 위협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약간의 안도가 느껴졌다.


내가 언제나 ‘동네’를 찾기 위해 돌아온 여정에 대해서는 언젠가 설명할 날이 있을리라 믿고, 

내가 살았던 20년도 더 전에 처음 느낀 ‘삶터’를 찾아가본 경험에 대한 인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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