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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alm Jan 30. 2019

장롱 속의 그 명품 백은 안녕하시니?

명품으로 만들어져 가는 시간 


"야! 완전 쪽팔리게 이 비닐 봉다리에 어떻게 들고 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친했던 친구한테 건네줄 물건이 있어 집에 있던 쇼핑백에 넣어 줬는데 예상치 못한 친구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잊히지 않는 건 그 쇼핑백이었다. 내가 들고 간 건 동양란 화분이 그려진 xx 꽃집 봉투였나 보다. 내 딴에는 봉투에 나름대로 각이 잡혀 있어 물건을 넣었을 때 한 쪽으로 쏟아지지 않아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엥, 이게 왜? 사이즈가 딱 잘 맞아서 여기에 넣어 가져온 거야." 

그 친구가 쪽팔린다고 말을 한 뒤에야 그 쇼핑백을 들여다봤지 집에서 챙겨 나올 때도, 내가 들고 걸어올 때도, 친구에게 건네줄 때만 해도 전혀 쇼핑백 껍데기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들여다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유명 브랜드의 쇼핑백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친구는 들고 다닐 때 쪽팔리지 않을 만한 쇼핑백에 물건을 넣어오길 바랬나 보다. 이쯤에서 자꾸 튀어나오는 세기의 명언이라면, #뭐시중헌디!


중요한 건 내가 건네주었던 물건이 '유명 브랜드'도 '명품'도 아니었다는 사실. 

"야, 네가 들고 있는 걸 누가 쳐다본다고 그래. 나이키 쇼핑백을 들었다고 네가 나이키야 뭐야.ㅋㅋ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하냐 너 오늘?" 

내겐 이 친구의 사고 자체가 충격이었지만 이 친구는 내가 충격이었을 거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겉 껍데기'에 신경을 쓴다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걸 처음 느꼈다.  


어느 날인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대학 선배, 동기들과 저녁을 먹었다. 세일즈 쪽으로 일찌감치 취업을 해 돈을 좀 벌기 시작한 선배 하나가 술 한 잔 꺾어 마시고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돈 벌면 제일 먼저 외제차로 바꾼다. 봐라! 그리고 호텔 가서 발레파킹 할 때 의기양양하게 키 맡길 거다. 내가 일 시작하고 뽑은 중고차 몰고 시내 모 유명 호텔에 미팅을 갔는데 내 차를 보자마자 존나 무시하는 거야 발레파킹 해주는 사람이! 와 나 진짜 얼마나 쪽팔렸는지 ㅆㅂ 내가 드러워서 진짜 외제차 뽑는다!" 

그때만 해도 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이라서 '와 선배가 사회 물 먹더니 변했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나도 이젠 사회생활을 한지 얼추 10년 차가 되어간다. 물론 남들보다 대학 졸업도, 석사 졸업도 늦어져 일반적인 10년 차들보다 한참이나 나이만 더 먹었겠다. 뭐가 그렇게 내 고등학교 친구와 내 대학 선배를 쪽팔리게 만든 걸까 지금도 종종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할 때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걸 봤다.


남동생이 불과 2주 전 결혼식을 마치고 엊그제서야 아프리카로 갔던 허니문에서 돌아왔다. 동생이 시집 안 간 똥차인 누나를 제치고 먼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대환영을 했다. 작년 여름 중순, 동생이 상견례를 한다고 해 양가 직계가족의 식사 날짜를 잡아두었고 그전에 엄마와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 요즘 세상에 없어서 못 사는 사람도 없고 불필요한 혼수 예물 거품 다 빼고 실제 결혼 생활할 때 필요한 것에 더 신경 쓰자고 제안하는 게 어때? 서로가 이런 얘기 꺼내기 조심스러울 텐데 우리가 시댁 쪽이니까 우리가 먼저 얘기 꺼내 주는 게 낫지 않나?" 


나야 뭐 결혼 준비 같은 대소사 경험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하는 게 맞고 그른지도 알 길이 없으니.. 엄마도 당연하다며 그렇게 생각을 해오셨고 동생네는 예물, 예단을 최소화해 결혼 준비에 이 커플이 진짜 신경 쓰고 싶은 부분에 더 알차게 준비해 가는 걸 보며 동생이 다 컸구나 싶었다. (물론 이제는 큰 일 한번 못 치러 본 나보다도 '으른'이지만 말이다. ㅎㅎ) 감사하게도 동생 올케네 집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고 형식적으로 꼭 해야만 할것 같았던 물품들을 결혼 준비 목록에서 지워내며 준비하는 걸 봤다. 불가능한 건 줄 알았는데 가능도 하긴 하구나. 촌스러운 비닐 쇼핑백이 쪽팔린다던 친구는 10여 년 전 일찌감치도 결혼을 했는데 당시 20대 중반의 무직이던 신부 녀석이 혼수로 받은 샤넬백을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애 낳고 이제는 소식 끊긴 그 친구의 안부만큼이나 그 백이 장롱 속에서 안녕은 하신지 그 근황이 더 궁금하기도 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묻고 싶은 건 명품 백을 들었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게 아니고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고 인성이 고급스러운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내가 유니클로를 입든 동대문 보세 니트를 입든 간에 제대로 태가 산다면 남들이 어느 브랜드인지 궁금해할 만한 명품 값어치를 하는 거지. 


내가 걸친 옷이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고 

내 인성 자체가 명품일 때 내가 걸친 것들도 빛나는 거 아닐까. 


중고든 신상이든 명품백을 드는 것도 좋고 안 들어도 그만이다. 브랜드의 문제가 아닌 거다. 

보통 물건 하나를 사면 오래도록 쓰기 때문에 이왕이면 질이 좋고 옷 장 속 갖고 있는 옷들과 믹스 매치해 입기에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물품을 신중히 고르는 편이다. 실용적인 게 우선이라 실속 있게 쓸 수 있다면 어느 명품백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논리가 통했다면 

내 친구가 동양란 화분이 그려진 번들거리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어도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게 안 느껴졌을 거고, 내 대학 선배가 제대로 된 인성과 사회의 지위를 얻을 만큼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소형 중고차를 몰고 다닐 때 '가진 분이 참 검소하기까지 하구나'라는 평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하는 성품은 '온유와 겸손'이다. '온유함'이라 부를 수 있는 유연하고 넉넉한 성품을 가진다는 건 그만큼의 다양한 실패의 경험과 건강한 정신력이 밑받침되어야 할 거다. 물질이나 환경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여유로운 사람이 본인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일 때 비로소 '겸손하다'라고 감히 평한다.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고 상대를 배려해 줄 때 보통 겸손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나. 겸손은 내가 꼽는 최고의 성품이다. 다 갖추어야만 감히 쓸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쉽사리 내뱉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고 내가 그런 사람으로 묘사되길 기대하며 살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  


어찌 보면 '겸손'의 반대되는 속담을 하나 꼽아보라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의 반대되는 말은 짝퉁도, 가품도, 야매도, 어떤 값어치로 따질 만한 용어는 아닌 듯싶다. 


"럭셔리(명품)의 반대말은 빈곤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

나 스스로가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을 갖춘 '명품'이 된다면 

내가 어떤 옷을 걸치든, 어떤 백을 들든, 어떤 차를 몰든 덩달아 명품으로 보일 거다. 오히려 내가 입고, 들고, 몰고 다니는 차가 값 비싼 유명 브랜드가 아닐 경우 그 주인인 내가 오히려 검소하고 소박하기까지 한 사람으로 더 빛이 나는 효과마저 득템 하게 될는지도. 아무리 야한 옷을 입어도 천박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고급스러운 사람일 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소유한 물건으로 내가 명품이 된다는 사고 자체가 안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은 '소유 명사'도 '형용사'도 아니고 '동사형'이어야 한다. 명품이 되기까지 수 없이 찢어지고, 시행착오를 겪고, 망가져보고, 실패해 보아야만 제대로 된 경험이 누적되어 명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회가 남의 시선과 돈으로 평가하는 저질 자본주의에 물들었다고 불평할 시간에 나 스스로를 명품으로 가꾸어내면 된다. 더 많이 넘어져 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쉽사리 명품이 만들어지간디... 


"You are extraordinary!" 


"Ever tried, ever failed,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거듭된 도전과 실패로 성장해갈 때 비로소 명품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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