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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alm Feb 15. 2019

나는 오늘도 배운다.

고로 살아있다.

1. 안정감 있는 삶을 원하면서도 안주해버릴까 봐 조바심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건가?


한 그릇 한 그릇 밥을 먹어가듯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안정감을 갈구함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해버릴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결국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순간 안정감에 취해 '나'라는 사람을 움직였던 '엔진'과도 같은 열정이 온데간데없이 사그라들거나 (혹은) 퍼져버릴까 봐 스스로에게 안정감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속해있는 조직문화라든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 없이 편해지고 게을러지는 게 싫었다. 정규직이나 평생직장을 얻길 원하면서도, 아주 아이러니하게 어떤 조직에 묻혀버리는 대명사 '직장인'이 될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무급/유급) 인턴도, 계약직도, 비정규직도, 열정 페이만 받고도 일하며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한 경험에 도전했다.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워 자리를 옮겨야 하는 환경 속에 계속 뛰어들었다. 이력서에 스펙 한 줄 추가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어서 여기저기 무료 강연도, 포럼도, 세미나도, 수업도, 모임도, 대외활동도 해가며 나한테 맞는 것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 맞는 것들을 찾거나 오랜 잔상이 남는 배움을 이어갈 땐 비로소 이력서에 하나씩 자연스럽게 스토리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네 세대에는 이제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것은 없는 듯하다.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는 건 어떤 것도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이 생을 여행하며 살아가는 동안 '안정적인' 삶과 '안전한' 곳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본능적일 수밖에 없다.  

2. 어쩌면 게을러진다는 건, 안정감에 취해 버린다는 건, 더 이상 열정과 의욕을 쏟아내지 않는다는 건, 안주하며 자족해버린다는 건, 곧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닐까?


육체적인 나이가 더해지고 노쇠해져 감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분들을 뵐 때 나는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 내 안에 교수님들에 대한 불편한 편견이 있(었)다. 그 와중에 경외감이 들만큼 감탄하게 되는 교수님들을 만나 뵙고 함께 일하게 될 때 그것만큼 시너지 효과가 크고 결과물이 보람찰 수가 없다.


85세를 한참 넘기신 어느 노교수님이 계시다.

정년을 마치고 65세가 넘어 남들은 일을 정리할 때 처음으로 '스키'라는 걸 배우기 시작하셨고 그렇게 배우고 익힌 지 10년이 넘어 70대 중반에는 시니어 스키대회에 도전하셨단다. 어제 저녁에 교수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 뵈니

"문 선생, 올해도 난 새로운 걸 배우기 시작했어요."


라는 이 분의 내면에서 그야말로 여전히 뜨거운 청춘이 느껴진다. 스스로 한계와 끝을 정해두지 않고 계속 걸어가신다.


"늦었다는 건 없어. 일단 시작해 보고 나면 나중에 혹시 알아? 하고 보니 벌써 10년이 지났을지. 10년 지나고 보면 어느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는 마스터가 되지 않을까. 만약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갔을 그 10년, 너무 아깝지."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배워야 할게 많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뵈며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조차 없다..


3. 나는 외국계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기업에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있다고 한다면, 외국계 조직에도 수평적인 관계 속에 '때로는' 한국보다 더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체계가 자유함 속에 깔려있음을 자주 발견한다.) 외국인 보스와 '그 보스의 보스'와 '그의 왕보스'와 '그 위의 킹왕 보스'까지 어려운 분들을 모시고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들과의 공식적인 첫 상견례 업무 미팅이 있었다. 미국 남부 시골지역에서 나고/자라오신 분들에게 먼 나라 한국이 첫 근무지라고 할지라도 문화와 음식이 서로를 어느새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어준다. 미팅 시작 전 어색한 분위기를 정리해주는 데는 양국의 문화와 음식 얘기가 빠질 수 없다. 미국 남부지역의 음악과 음식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마침 지난 여름 혼자 여행으로 다녀온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지역과 그곳의 재즈 음악 얘기가 ice-breaking으로 좋은 어젠다가 되어 준다. 


아프리카와 유럽, 중/남미 출신의 난민들이 미국 남부의 낯선 시골지역에 정착해 살아가며 한을 녹여 만들었을 (그들도 시골이라 부르는)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의 재즈/퓨전음악들이다. 묘하게도 한국의 음악과 한국인의 정서와 미국 남부 음악은 잘 어울린다. 서로의 다른 문화를 궁금해하고 그 다양성과 어우러짐에 서로 귀를 기울인다. (본인들의 연륜에 비하면) 한 없이 어리고 부족할 부하직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신다. 나이 지긋이 드신 교수님들 아홉 분의 평균 연령은 어림잡아 환갑 즈음되는 듯했다. (막내 교수님은 오십이 채 안 되셨지만 아흔에 가까운 한국인 교수님들이 몇 분 계셔서 평균 연령이 훅 올라갔다.^^) 그분들의 태도와 자세에 나도 배울 수밖에 없다.


보통 고개를 꼿꼿이 세워 본인의 바른 소리를 끊임없이 쏟아낼 때가 아닌, 상대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듣기 위해 고개를 낮추고 귀를 기울이는 상사분들과 어르신분들께 감동이 되곤 한다. 그런 걸 보면 '배운다'는 건 지식을 얻기 위한 액션이 아니라 삶 자체에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에 가까운 듯하다. 학교, 학원, 공교육과 사교육이 쏟아지는 특정 장소를 가야만 배우는 게 아니라는 거다.


(고려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일을 찾을 때 후배들이 연봉이나 간판에 눈이 먼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배워갈 수 있는 조직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경력이 차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조직원들에게 긍정적인 동기부여와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이상 '배울 수 없다'는 건 무섭도록 서글픈 말이다.

잠들기 전에 매일 묻는다.

"나는 오늘 무엇을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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