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어. 잘 지내.'
이 말이 왜 이렇게 싫었을까요? 한글은 참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 고맙다는 말은 기분 듣기 좋고 좋은 말인데. 끝이 오는 상황 속에선 이 말은 하나의 상처에 불과합니다. 진심으로 고맙다면 조금이라도 더 해보지. 정말로 고맙다면 더 잘 지내려 노력해 보지. 왜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떠나는 걸까요?
한글에는 예쁜 단어들이 많습니다. 위로, 배려, 사랑, 격려, 응원, 헌신, 웃음 등
하지만, 속상하게도 이렇게나 예쁜 단어들은 예쁜 사랑을 할 때만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속상할 때 받는 위로는 비웃음으로, 배려는 '나'라서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 사랑은 그저 말 뿐인, 격려는 어쩔 수 없이 하는 겉치레식 말들로 느껴지는 것처럼 사람은 상황에 따라 상대의 모든 행동이 다르게만 느껴집니다.
차라리 명확한 상처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 헤어지자. 다시는 만나지 말고 혹시 지나가다가 보더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상처는 받겠지만 정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해집니다.
그래요. 차라리 그 사람 가슴 깊이 못을 박고 싶다면 예쁜 말을 해주세요.
진심으로 미워서 헤어지는 사람이라면 더욱 예쁜 말을 남겨주세요.
'나는 너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고 두 번 다시 너 같은 사람 못 만날 것 같아'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영원히 당신을 잊지 못하고 추억 속에서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곤 평생을 당신을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결과를 원한다면 더욱더 예쁜 말로 마지막을 장식해 주세요.
그렇지만, 아무리 속상하고 미워도 한 때 누구보다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래도 내 삶에 예뻤던 기억을 선물해 준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영원한 안녕이라도 너무 미워하지만 말아주세요. 그저, 스친 인연이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했던 추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몇 명의 사람과 몇 번의 만남을 가질진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영원한 만남을 이어갈 수도 있고,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잘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끝까지 같이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지금껏 만났던 사람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발판으로 밖에 생각이 들질 않게 됩니다.
그래도 의미 없는 사랑은 없다고 그 발판에 이용되었던 사랑 중에서도 끝까지 하는 사랑을 못 이기는 경험이 분명 있습니다. 그게 그 사람을 만날 때 말도 안 되는 타이밍으로 이루어진 기적일 수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사람만 만들어 줄 수 있는 추억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아름답던 기억들은 두 번 다시 내가 느낄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장소가 있습니다. 그게 그저 자주 보이는 골목길이나 편의점이라도 잊지 못할 사람과 갔다면 그 장소는 더 이상 흔한 장소가 되질 않습니다. 특별하다는 건 무섭습니다. 평범한 장소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소로 둔갑시켜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소처럼 그 사람의 좋아하던 행동을 이젠 내가 좋아하기도 합니다. 나를 지나친 사람 중 연인에게 하는 배려를 알려준 사람은 바다에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마음속 스트레스가 풀리고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저에게 말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을 듣고 옆에 앉아서 3분을 버티지 못하고 일어났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바다를 보고 앉아서 시간 낭비 한다는 게 답답하다고 생각을 했었으니깐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누구보다 바다를 좋아합니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혼자라도 바다를 찾아가 안녕을 빌어봅니다. 그리곤 해변가에 조용히 앉아 바다를 바라봅니다. 떠나지 앉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바다가 오늘도 고맙기만 합니다. 한 편으로는 바쁜 일상 속 나를 보러 왔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위로라는 선물을 해주기도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당신에게도 바다 같은 선물이 있었으면 합니다. 가끔 내 삶을 도피하고 싶을 때 나를 기다리는 친구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너질 때면 지금까지 한 것도 충분히 잘했다고 응원해 주는 그런 장소가 있었으면 합니다.
영원히 나를 기다려주는 장소라는 선물은 내 삶에 용기를 주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합니다. 가끔 정말 힘들 땐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합니다.
고맙다는 말. 이제는 떠나는 이들에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라리 떠나는 이에게 고맙다고 할 것이라면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길 바랍니다.
이런 시련을 견뎌준 내가 참 대견하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오늘도 난 정말 멋있었다고 나를 칭찬해 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다 보면 분명 나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찾아올 테니깐요.
오늘도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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