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만 쓰면 '착한 사람'이 되는 당신에게

비즈니스에서 '친절함'은 무기가 아니라 약점이다

by WONA

회의실에서 나온 당신은 날카롭다. 논리의 허점을 짚고, 리스크를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어로 일할 때의 당신은 '까다롭지만 유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영어 컨퍼런스 콜에 접속하는 순간, 당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상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습관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문장 끝마다 "Okay, good. I understand."를 붙인다.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반박할 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의 영어에는 '우아하게 반대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본의 아니게 회의실의 '예스맨(Yes-man)'이 된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 쉬운 사람으로 읽히는 이유

언어가 서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선택을 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옵션을 고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바로 동의(agreement)다.


상대의 말에 반박하려면 상당한 언어적 체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논리를 요약하고(summarize), 허점을 짚고(point out), 내 의견을 얹어(propose), 설득해야 한다(persuade). 이 복잡한 과정을 영어로 수행할 자신이 없을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퉁치는 저략'을 선택한다.


"Okay, I agree."

"Sounds good."


당신은 이것을 매너라고 부르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것은 매너라기보다 회피에 가깝다. 문제는 비즈니스 세계가 이 회피를 친절로 해석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당신을 '주관이 없는 사람', 더 나아가 '쉬운 사람(pushover)'으로 분류한다.


침묵과 미소의 역설

영어가 불편할수록 사람의 리액션은 과해진다. 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웃는다.


하지만 리더의 언어는 반응(reaction)이 아니라 행동(action)이다. 회의를 주도하는 사람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Hold on."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의 역할을 바꾼다. 당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당신의 전문성은 서서히 증발한다. 상대는 당신을 '함께 전략을 짤 파트너'가 아니라,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청중'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오늘부터 'Okay'를 버려라

그렇다면 당장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거창한 문장을 외울 필요는 없다. 오늘부터 회의실에서 가장 만만한 단어, Okay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시작하라.


많은 한국인들이 상대의 말을 알아 들었다는 신호로 습관처럼 "Okay"를 연발한다. 하지만 비즈니스 맥락에서 Okay는 단순한 수신 확인이 아니다. "동의한다", "좋다", "문제없다"는 긍정의 서명에 가깝다. 당신은 아직 내용을 분석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서명부터 해주고 있는 셈이다.


태도를 바꾸고 싶다면, Okay 대신 Understood나 I see를 써 보자.

Okay: "당신 말이 맞다. 동의한다. 좋다." (감정적 동조)

Understood/I see: "당신의 의견이 입력되었다." (이성적 수신)

이 작은 단어의 차이가 당신의 좌표를 바꾼다. Understood라고 말하고 입을 다물면, 상대는 당신의 다음 말(평가)을 기다리게 된다. 당신은 더 이상 '착한 사람'이 아니라, '보고를 받은 심사관'의 포지션에 서게 된다.


이제 '까칠한 영어'를 배워야 할 때

언어의 해상도가 낮으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도 좁아진다. 긍정(good, great, excellent)은 배우기 쉽고 쓰기도 쉽다. 하지만 부정, 비판 조건부 동의, 우회적 거절의 표현은 다르다. 훨씬 더 정교한 좌표 설정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유창한 발음이나 화려한 어휘가 아니다. 불편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무례하지 않게 제동을 거는 법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조건을 거는 법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

이 '까칠한 디테일'이 당신의 영어를 완성한다. 비즈니스에서 무조건적인 친절은, 종종 능력이 없다는 신호로 오해된다.


문제는 성격이 아니다. 언어의 설계다. 이제, '착한 사람'으로 들리는 영어가 아니라 신뢰받는 영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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