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색깔입니까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늘상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집을 나서 향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캐주얼이냐 아니면 좀더 갖춰 입느냐의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저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바로 어떤 색을 입을 것인가. 누군가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가 뿐 아니라 그 색을 입는 것이 내 기분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도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제주 구좌읍의 당근 색을 닮은 샛주황색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설 때면 왠지 하루종일 활력을 신고 다니는 기분입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한 ‘보호색’의 기능을 했던 때부터 중세시대 왕족들이 자신들과 하층민 간의 계급적 구분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의미부여의 색’, 현대에 와서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컬러 테라피'까지. 색은 우리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공기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색이 패션이나 아트 씬(art scene)에서만 중요할까요? 색은 브랜드의 세계에 있어 브랜드 네임 만큼 중요한 상징적 요소입니다. 수많은 브랜드의 이름은 다 외울 수 없어도, 세상에 이미 펼쳐져있는 다채로운 색깔은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친숙하게 느끼고 좋아하게 만드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지요. 빨간색 하면 구급차의 십자가보다 코카콜라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접하고 좋아하는 브랜드들은 각자 컬러의 어떤 의미를 입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특정 브랜드의 패키지 컬러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경우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외에는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비로운 천상의 색을 연상케 하는 연한 민트 계열의 블루컬러는 원래 울새(새의 한 종류)의 알 (ROBIN EGG BLUE) 색상입니다. 새가 낳는 알의 색이 너무도 영롱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는 울새의 알 컬러를 자신의 메인 컬러로 만들었을까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서는 터쿼이즈(터키석)의 인기가 높아 연한 파란색의 인기도 높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신부들은 결혼을 기념하여 파란 울새알 컬러로 된 장식이나 브로치를 하객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티파니는 이를 놓치지 않고 이 색을 자사의 신규 카탈로그 ‘블루북’의 커버 색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티파니는 자사의 블루 컬러를 브랜드의 자산으로 확보하기 위해 ‘티파니 블루’라는 이름을 ‘컬러 상표’로 등록하기에 이릅니다. ‘색’ 자체를 식별력 있는 ‘상표’로 만들기 위해 팬톤과 협업해 팬톤 넘버 1837(티파니 창립 연도)이라는 티파니만의 컬러를 확보합니다. 티파니사만이 이용할 수 있는 독점적인 ‘티파니블루’ 컬러. 제품을 포장하는 수준을 넘어 컬러를 자산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것을 과연 색이라 칭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 어떤 색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컬러로 격을 높인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샤넬의 블랙 컬러 입니다. 샤넬의 창립자인 코코샤넬은 당시 꽉 조이는 코르셋과 화려하고 복잡한 컬러가 여성들의 활동성과 기능성을 저해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심플하면서도 절제된 라인과 블랙 컬러로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의류에서 시작해 액세서리, 소품, 화장품까지 영역을 확장해 온 샤넬. 샤넬은 자칫 ‘죽음’, ‘두려움’을 상징할 수 있는 블랙이라는 컬러를 ‘권위’, ‘심연의 깊이’, ‘유행을 타지 않는 모던한 세련됨’으로 승화함으로써 블랙이라는 컬러를 최고의 권위이자 최상의 등급이라는 상징으로 승격시킵니다. 현대카드의 최상위 등급 카드가 블랙카드인 것도 예외는 아니죠.
블랙은 자칫 단조로워 보이지만 오히려 컬러풀한 색조가 담지 못하는 섬세함과 깊이가 있습니다. 샤넬의 클래식을 재해석해 대중에게 선보인 ‘The Little Black Jacket’ 전시에서 흑백으로 촬영된 샤넬의 뮤즈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 그 뮤즈들 각각이 가지는 정서와 태도가 컬러 사진에서보다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반항, 고뇌, 도발, 두려움, 담대함 그 모든 것이 말이죠. 샤넬의 블랙은 컬러풀하지 않아도 그 어떤 브랜드도 갖기 힘든 그만의 깊이를 가지고 더 큰 브랜드의 세상을 펼쳐나갈 듯 보입니다.
“나는 마침내 대기의 진정한 색을 발견했다. 그것은 보라색이다. 신성한 공기는 보라색이다. 앞으로 3년 뒤에는 모두가 보라색으로 작업할 것이다”
- 클로드 모네
개인적으로 보라색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보라색이 갖는 색의 의미는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퍼플’의 어원은 빛의 순수함을 의미하는 라틴어, Purpu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컬러는 가시달팽이의 분비액을 한 방울 한 방울 열흘간 달이고도 며칠을 햇빛에 말려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희귀한 색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퍼플 컬러는 브랜드가 채택하기에는 여간 까다로운 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 쓰면 촌스러운 컬러로 인식되기 쉽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단을 내린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온라인 푸드 이커머스 브랜드, 마켓컬리입니다. 유기농 식재료, 샛별 배송 등 자칫 뻔한 ‘그린’ 컬러를 선택할 수도 있었겠으나 마켓컬리는 신비로움과 고귀함의 상징인 퍼플을 브랜드 컬러로 결정하고 컬리의 퍼플 세상을 펼쳐갑니다.
퀄리티있는 식재료를 제공한다는 마켓컬리의 브랜드 비전을 브랜드 컬러에도 담은 것일까요? 브랜드 컬러 선택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퍼플을 브랜드 컬러로 결정한 마켓컬리는 모든 브랜드 접점, 적재 적소에 퍼플 컬러를 일관성있게 적용합니다.
아이스팩 컬러부터 광고 모델이 입고 나오는 의상, 스카프의 컬러, 광고촬영 세트 중의 하나인 문의 색, 심지어 하늘 컬러 톤까지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브랜드 컬러인 퍼플을 모든 커뮤니케이션 요소에 섬세하게 배치합니다. 너무 들이대지 않으면서도 이 컬러는 내 컬러야 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색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구분하며, 위험을 피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습니다. 브랜드가 고객과 소통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는 데 있어서도 색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브랜드, 혹은 우리 브랜드는 어떤 색입니까? 그 색은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발신합니까? 그 메시지가 브랜드의 고객과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로 가 닿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나의, 혹은 우리 브랜드의 색을 찾아 떠날 차례입니다.
Brand Inspirer, 김혜원
Founder of brand consultancy, not a but b
hyewonaloof@gmail.com